지난 2021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꿀벌들이 집단 실종되는 벌집군집붕괴현상(CCD)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경남 함양군 양봉농가들의 고충이 늘어나고 있다.
함양군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꿀벌 실종 피해는 2021년 194농가 중 104(7703군집)농가, 2022년 189농가 중 180(1만3357군집)농가에서 붕괴현상 피해가 보고됐다. 올해 또한 높은 꿀벌실종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농가들의 한숨이 깊어질 전망이다.
벌집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통칭 CCD는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군집붕괴현상으로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면서 영양공급 제한을 받아 몰살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붕괴현상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원인으로는 바이러스, 농약, 전자파, 살충제 등 다양한 주장이 언급되고 있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지난해 함양군 서상면 정영록씨 농가에서 피해사례가 접수된 직후 농업기술센터는 정씨 농가를 방문해 시료를 채취하고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뢰를 맡겼다. 그 결과 응애가 전파하는 바이러스 중 하나인 날개변형바이러스에 양성 판정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기존 응애 방제제인 플루발리네이트 성분의 내성으로 응애가 증가했을 것으로 보고 다른 성분의 약제를 보급했으나 또 다시 벌들이 사라지며 농민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지곡면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박동열씨는 2021년부터 시작된 꿀벌피해 중 올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 올해 벌 실종, 가장 심각"
박씨는 "지난해 12월28일 벌통을 열어보니 또 벌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2022년부터 꿀벌 피해가 점차 심각했고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 꿀벌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에서 보급하고 있는 약이 듣질 않으니 계속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 빨리 신약이 개발되어 벌들이 실종되는 상황을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양읍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표정옥씨도 상황은 비슷하다. 특히 최근에는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표씨 농가의 시료를 채취하여 세 가지 노제마균, 날개불구바이러스, 이스라엘급성마비바이러스를 검출하기도 했다.
표씨 양봉농가에서 발견된 노제마병(nosema diesase)은 노제마 병원균(병원체: Nosema apis zander)에 의한 것으로 모든 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다. 노제마병은 1909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발견된 병으로 온도 10~37°에서 발병해 최대 4개월까지 병원성이 유지된다. 주로 도봉(꽃에서 직접 꿀을 얻지 못하고 남의 벌통에서 꿀을 도둑질 해가는 꿀벌)과 오염기구에 의해 전염되며 그밖에도 야외에서 운반해 들인 물에 의해서도 전염된다. 증상으로는 꿀벌이 정상적으로 날지 못하고 봉세가 크게 약화되며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났을 경우 약제처리를 하여도 효과가 미비하다.
다음으로 2022년 정영록씨 농가에서 발생한 바로아 응애(Varroa destructor)에 의한 날개불구바이러스(DWV- Defor med wing virus)이다. 바로아 응애의 문제점은 꿀벌들에게 변형날개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매개체라는 점이다. 응애에 기생당한 꿀벌의 유충 및 번데기는 한번 흡즙 당하면 탈피 과정에서 날개가 제대로 생성되지 않고 축소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이스라엘급성마비바이러스(IAPV)는 2006년 최초 미국에서 CCD 현상이 보고된 직후 붕괴봉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 바이러스다. IAPV에 감염된 꿀벌은 날개의 경련을 일으키면서 벌통 밖으로 나가 최후를 맞이한다. 이 병은 최초로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국양봉학회 회장 정철의 안동대 교수는 "미국에서 보고된 CCD 집단에서 가장 많이 연관된 바이러스가 이스라엘급성마비바이러스이며 바이러스가 대부분 응애가 발생한 곳에서 나와 응애를 핵심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며 꿀벌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 속 시원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해 농가들은 더욱 힘든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함양읍 양봉농가 표정옥씨는 "꿀벌이 병에 걸려서 검사 결과가 나오면 어떤 약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며 "중국의 경우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꿀벌 연구소가 있어 신약 개발 등과 같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양봉농가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대부분 유튜브를 비롯한 '카더라'(정확한 근거가 부족한 추측)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곡면 박동일씨는 "지난해 꿀벌을 깨우기(꿀벌은 온도가 낮으면 산란하지 않아 벌통 주변 온도를 높여 산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시작할 무렵 벌통에 살아있는 꿀벌은 30% 정도였다"라며 "벌통 20통 중 벌들이 살아있는 벌통은 4~5통 밖에 없었다. 재작년에 약을 격월로 1월, 3월, 5월 순으로 20회 가량 쳤는데도 효과가 없어 지난해는 50회 가량 살포했지만 역시 꿀벌 피해가 늘었다"고 한탄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꿀벌들의 월동도 잇따라 빨라졌고 벌을 깨우는 시간도 앞당겨 졌다. 박씨는 "예전에는 벌을 깨우는 날짜가 늦어지면 2월 초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1월, 12월 등 앞당겨 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10월이면 양봉농가들이 꿀벌 월동을 위해 월동 사양(겨울을 위해 물과 설탕을 조합한 먹이를 미리 주는 것)을 꿀과 반반 사용했지만 지금은 꿀벌들이 꿀을 제대로 먹지를 못해 사양을 100% 주고 있다. 그러니 꿀벌들이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박씨는 온도에 예민한 꿀벌들이 급격하게 변하는 날씨로 인해 점점 감당하기 힘든 환경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봄에 잠깐 추웠을 당시 아카시아 꽃 피는 시기가 변하면서 전체적으로 꿀의 수요가 떨어졌다. 당연히 꿀을 먹고 사는 꿀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씨는 "얼마 전 국내 양봉협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에는 양봉과가 따로 개설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나라 중국, 호주를 비롯해 하물며 베트남에도 양봉 연구센터가 건립되어 있는데 국내에 이런 연구 센터가 없는 것은 큰일"이라며 "해를 거듭하며 꿀벌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양봉과 관련된 연구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연구기관을 신설하여 현 상황과 더불어 추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대비해야 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