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찾아가는 생활
딱 만 보를 걸었습니다. 다른 건 그러지 못하면서 몸을 위한 일인데 왜 이토록 계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추워서, 눈비가 내려서' 따위의 말이 통하지 않는 날씨였습니다. 핑계와 게으름으로 꾸덕꾸덕해진 몸뚱이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서며 더 이상 머뭇거리면 질식할 수도 있다고 나를 윽박질렀습니다.
시골이 아니더라도 혼자 살며 유념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죠. 생활 리듬이 깨지면 감정과 건강도 함께 흐트러지는 것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겨울 들어 갑작스레 줄어든 활동량으로 인해 생활이 불규칙해지더니 언젠가부터 밤낮이 바뀌면서 기분도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변명이라도 하자면 초겨울까지는 꽤 바지런히 움직였더랬습니다. 추위가 찾아오고 바깥일이 없어지며 집안에만 있다 보니 움직임이 둔해졌습니다. 게다가 소소한 시골살이를 글로 쓰는 시간이 길어지며 책상물림이 된 것인데요. 그러다가 밤과 낮이 바뀌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서서히 지루한 생활에 멀미가 났습니다.
왕복 7km, 데크 산책로를 걷는 내내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데크에 오일스테인을 칠하는 작업자 몇 분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렇게 호젓한 길을 그동안 찾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졌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 호수는 잔잔하고 바람은 시원해서 자꾸 옷깃을 풀었다가 여미길 여러 번, 기분 좋게 몸이 떨렸습니다.
가까이에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데도 스스로 갇혀 지냈습니다. 내 안의 틀을 깨기 위해 은퇴하고 시골로 온 것인데 다시 옛날 버릇이 나오네요. 다행히 전환된 기분은 계획을 세웁니다. 당분간 산책로에서 다리 힘을 키운 후, 산길을 도전해 보기로 합니다. 데크길로 가는 중간에 등산로가 있고 안내도에는 계곡을 따라 암자도 두 개나 있네요. 한번 들러 봐야겠습니다.
어떤 겨울을 보낼지는 내가 정한다
사실 요 며칠, 머릿속으로만 여행을 하다가 말았습니다. 책과 지도로 말이죠.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오려 했다가 몇 가지 걸림돌에 쓰러졌습니다. 일단 번거롭습니다. 이동하는 과정도, 숙소를 구하는 것도, 집을 비워두어야 하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난방비를 아껴서 여행 경비에 충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비수기인 겨울인데도 숙박 비용은 왜 그리 비싼 것인지,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호수를 따라 만 보를 걷고 나니 몸에 열이 나고 의욕이 충만해지네요. 몸과 마음이 식기 전에 시청 민원실에 데크길을 연장할 수 없는지 문의하는 글을 보냈습니다. 산책로 데크까지 가려면 집에서 나와 약 1km 정도 인도가 없는 도로를 지나야 합니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도로 옆으로 피신할 공간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형 차량을 만나면 살짝 두렵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간의 150m가량 되는 교량 위에선 공포에 가까이 갑니다.
집 앞 도로에 인도가 없어 불편해도 동네 노인 분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몰라서 그냥 참고 지냅니다. 불편을 하소연하는 방법이 바뀐 때문이죠. 무심했던 나는, 그냥 참고 지냈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목소리를 냈어야 했는데 말이죠.
산책을 다녀와 땀 흘린 몸을 씻고 나니 한결 개운합니다. 밋밋하기만 했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니 뭔가 하루를 잘 보냈다는 느낌도 들고요. 새삼 느낍니다. 시골살이는 누군가가 정해준 삶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정해 가는 삶이란 걸 말이죠. 당분간 산책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