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도. 오랫동안 내 고향은 그렇게 불렸다. 돌 굴러가는 사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돌 굴러가유~"를 느릿하게 말하는 충청도인 이야기도 유명하다.
그밖에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사도우미의 고향은 대부분 충청도였다. 대중매체가 각인시킨 것일 수도 있지만 어리숙한 하층민의 대표로 충청도 사람이 언급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내 고향이 충청도라는 게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았다. 뭔가 미지근하다고 해야 할까.
사투리도 별로였다. 모름지기 사투리라면 전라도나 경상도 같이 표준어와는 확연히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충청도 사투리는 사투리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말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무척 멋이 없는 말투 말이다.
물론 외지인과 교류하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중학교 때 강원도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은영이 있어요?" "제가 긴데요." "긴데요가 누군데요?"라는 식의 대화를 하고서야 '기다'라는 말을 충청도 사람만 쓴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대전 사람인 남편조차 "겟말을 올린다"(바지춤을 추스르다)라는 나의 표현을 처음 들어봤다며 놀라워 한 적도 있다.
<소년시대>로 화제가 된 충청도식 화법
그런데 최근 나에게 네이티브 말투를 들려달라는 사람이 간혹 있다. 고향에서 쓰는 어조로 대충 아무 말이나 해도 웃겨 죽겠다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한다. <소년시대>라고, 얼마 전 한참 인기를 얻었던 충청도 배경의 드라마 때문이다.
친구들이 자꾸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궁금해졌다. 모든 등장 인물이 충청도 사람이면서 인기를 얻은 영화나 드라마가 별로 없었기에 살짝 신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드라마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충청도 사투리가 어색해서 듣기에 거북했고, 인물들이 써 먹는 돌려까기식 농담들도 낯설었다.
아주 없는 모습은 아니지만 과장된 면이 많았다. 인기가 있든 없든 대중매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라는 것에는 한계가 크다는 걸 새삼 느꼈다. 지역이 어디든 원래의 삶은 그리 요란하지 않으니 호들갑 떨며 재밌게 하려고 만든 것은 결국 인위적일 수밖에 없나 보다.
<소년시대> 이 장면이 그렇다. 쌀집 아저씨가 주인공을 처음 본다고 말하자 "사람 얼굴을 그렇게 다 외울 정도로 똑똑하시면 서울대 가시지 왜 이러고 있냐"는 식의 농담을 해서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내가 평생 만났던 충청도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말투인 것은 맞지만, 이 정도로 심한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내 고향의 말들
대신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향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면서 내가 충청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과하게 포장된 이미지와 달리 그냥 평범할 뿐이라고 설명하면서도, 그 특유의 느긋함이나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는 화법을 옹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예전과 달리 충청도식의 미지근함이 나쁘지 않다.
아마도 내 삶이 그런 식으로 바뀐 것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20대, 아니 30대 초반만 해도 뭔가 끝장을 볼 것처럼 덤비곤 했다. 말투도 더 직설적이었고 쌈닭같은 이미지도 있었다. 나를 두고 '아줌마'라고 표현한 동료 교사에게 공개 사과를 받아냈고 교무실에서 설전을 벌이다 "너 몇 살이야!"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무뎌지고 포기해서일까. 지금은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은근히 섞여 있는 걸 선호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도, 이 사회도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그래서 비교적 직설적이지 않은, 소위 충청도식 화법이 주목받는 건 아닐까. 아니, 따뜻하고 부드러운 우리 고향의 말투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 아닐까.
강한 것만이 미덕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시대보다는 부드러운 것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보다 앞서는 것만이 높은 가치로 인정받던 시대도 있었지만, 서로를 토닥이고 감싸주는 것도 높은 가치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우리 모두 살아가기에 팍팍한가 보다.
아이 아빠는 평소에도 구수하게 "그려~"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아이가 사투리를 배울까 봐 내가 그러지 말라고 타박하곤 했다. 이제는 그냥 놔둬야겠다. 아이가 어느 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더라도 함께 즐겁게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려, 안 그려?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