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처참했다.
24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을 찾았다. 경찰은 시장 접근을 통제했고, 사고 현장에선 안국전기안정공사와 소방청 등의 사고조사반이 분주하게 오갔다.
화재 피해를 입은 상인들은 먹거리동에 모여 회의를 거듭하며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피해를 입은 상인들 중에는 코로나19때 받은 대출금도 갚지 못한 이도 있었다.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준비 중인 신혼부부도 있었다. 설 대목을 앞두고 화재 피해를 입은 시장상인들은 "참담하다"는 말을 연신 쏟아냈다.
피해 상인 A(76)씨는 "집에 있기가 답답해서 나왔다. 피해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막막하다"라며 "어쨌거나 하루 빨리 장사했으면 좋겠다. 임시로라도 가게를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피해 상인 B(54)씨는 "22일 밤에 불길이 번지는 것을 보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신이 멍했다. 지금도 가슴 아프다. 오늘 아침에도 무의식적으로 시장에 출근하려고 했다"며 "딸아이가 '엄마 혹시 시장가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14년 동안 수산물을 판매했다. 상인마다 피해액이 다르다. 코로나19때 대출 받은 7000만 원도 아직 다 갚지 못했다. 한 달에 약 1500만 원 비용이 들어가는데 막막하다. 당장 생활비가 문제다.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20대 신혼 부부도 화재 피해를 입었다. C(28)씨는 "두 달 전에 결혼했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건어물을 팔았다"며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대략 5000만 원의 피해를 입었다. 시장 말고는 딱히 수입원이 없다. 심정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이번 일이 전화위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씨의 어머니는 "설 명절이 코앞이다. 다시 장사하고 싶어 하는 상인들도 많다. 어쨌든 문제를 하나씩 풀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서천 특화시장 화재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서 금방 잊혀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라고 했다.
"화재 이후 윤석열-한동훈 온 것만 집중... 상인 지원책 더 필요한 상황"
지역 정치인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강선 서천군의원은 "설 대목을 앞두고 화재가 발생했다"며 "명절에 장사를 못하는 것은 상인들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천에 사는 양금봉 전 충남도의원도 "화재 발생 이후 언론은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온 것만 집중 조명했다"라며 "하지만 당장 상인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가를 다시 건축하기까지는 2~3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그 사이 가설 건물이라도 지어서 생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임시) 가설시장에 대한 수요를 파악해서 다시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상인들을 지원해야 한다. 또 코로나19 때 받은 대출을 받지 못한 상인들도 적지 않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몇 개월이라도 상환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충남경찰청 과학수사대와 충남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이날 합동 감식에 착수했다. 감식반은 CCTV 등을 근거로 수산물동 1층 점포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발화 추정 지점 인근 전선 시설과 소화설비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앞서 지난 22일 밤 11시 8분께 서천특화시장에 큰불이 나 292개 점포 중 수산물 시장과 점포동 등 227개 점포가 불에 탔다. 전국에서 10위 안에 꼽힐 정도로 유명했던 시장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