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 : 30일 오후 4시 2분]
정부 대책에 유가족 반발 "언론에 일방적 발표, 모욕적"
"정부 대책은 단 한줌의 진정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진정성 있게 유가족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언론에 대고 얘기할 게 아니고, 유가족들을 찾아와서, 왜 우리가 이렇게 하는가, 그런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진정성 하나 없이, 그냥 언론에다가, 마치 많은 것을 해준 것마냥 얘기하고 던지는 것은, 우리 가족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입니다.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30일 오후 2시, 윤석열 정부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대신 내놓은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에 대해 이정민(62)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꾹꾹 눌러 토한 말이다.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 한 켠에 설치된 천막 분향소, 159명의 영정 앞에서였다.
앞서 정부가 오전 11시에 '피해지원 대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하자, 가족들은 곧장 오후 1시에 이곳 합동분향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종로구 정부종합청사에서 거부권 행사 반대 목소리를 낸 뒤 걸어서 시청까지 이동한 유가족들은 합동분향소에 놓인 영정 속 자식들 얼굴을 마주하자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점심시간에 몰려나온 직장인 인파 속에 가족들만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닦았다.
"특별법은 거부하면서 무슨 근거로 지원하겠다는 건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부의 피해지원 대책 발표에 대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한가" "유가족들을 보상에나 관심 있는 사람들로 매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유가족협의회는 공식성명을 통해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나"라며 "우리가 오직 바라는 건 진상규명"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 때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범정부적으로 수립·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즉각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까지 저희가 1년 3개월 동안 무수히 호소하고 우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했건만, 이제 와서 피해자를 위하는 척 언론에 호도하는 것이냐"고 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대책 발표에 대해 정부 측으로부터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며 황당해했다.
유가족들과 시민대책위원회는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한 정부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이번 정부안이 특별법의 핵심인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구(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부분을 뺀 나머지를 끌어모은 것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생활지원금이나 심리상담 지원, 추모공원 등은 특별법에 있는 내용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인영 변호사는 "정부가 실제 지원을 하려고 했다면 특별법을 통과시켜 예산을 확보할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어야 한다"라며 "특별법은 거부권으로 막아놓고 어떤 법률에 근거해 지원을 하겠다는 건지 기본적인 것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법률안의 주목적인 참사의 진상규명은 검·경 수사, 국정조사 등을 거쳐 정상적으로 진행돼왔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서도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꼬리 자르기로 끝난 경찰 특수본 수사, 거짓증언과 자료 미제출 등으로 퇴색된 국회 국정조사에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소재는 따져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가족들 말대로 참사가 벌어진 지 458일이 지난 현재까지 행정안전부·경찰·소방·용산구청 등 관계 당국 중 그 어떤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1신 : 30일 오전 11시 39분]
거리에 쓰러져 울부짖는 이태원 유가족들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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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 그렇게 애원하고 호소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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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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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부권 통과됐대요."
"아, 진짜... 흑흑흑..."
30일 오전 10시 4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잠깐의 정적 끝에 나온 곡소리가 광화문 거리에 울려 퍼졌다. 저혈압이 있는 박영수(57, 희생자 고 이남훈씨 어머니)씨는 결국 길가에 쓰러졌다.
"차라리 우리도 죽이고 우리도 거부하라고..."
박씨는 쓰러지기 직전에 이렇게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12명은 경찰들이 검은색 질서유지선으로 가둬놓은 2평 남짓한 공간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상태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일제히 고개를 떨구고 오열했다.
희생자 고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62)씨가 손을 크게 떨며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라고 했다. 이씨는 "1년 동안 부탁하고 사정했는데 우리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을 했다"고 했다. 이씨가 말미에 "제발 우리를 죽여주십시오"라고 절규하자 가족들은 정부서울청사 문에 몸을 던졌다. 가족들은 정부청사 문을 부여잡고 "말도 안 돼"라고 울부짖었다.
경찰들은 10분여 만에 가족들을 모두 떼어냈다. 쓰러졌던 박씨는 119구급대에 실려 갔다.
쓰러진 가족들, 바리케이드로 가둔 경찰
"오지 마세요... 제발! 우리 좁은 공간에 트라우마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가족들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였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12명이 '특별법 공포', '윤석열 대통령, 유가족들 만나보고 결정하십시오'라는 피켓을 들자 100여 명 넘는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앞세워 밀어가며 가족들을 비좁은 구역에 고립시켰다. 가족들이 "토끼몰이 하지 마, 가두지 마"라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움직임이 없었다. "제발 우리를 자극하지 마세요"라고 울부짖은 가족들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이 굳게 닫힌 정부청사 너머에선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을 논의하는 국무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족들은 찬 바닥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종로 경찰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가족들의 발언을 방해하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의진 어머니 임현주(58)씨가 소리쳤다.
"차OO 경찰관님, 최OO 경찰관님, 이OO 경찰관님, 모두 각자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자리 오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하급자입니다. 특수본이 수사를 했는데, 거기서 책임을 물은 건 결국 여러분 같은 하급자들뿐이었습니다. 꼬리 자르기 뿐이었으니까요. 여러분들을 여기 오게 한 지휘자들은 어디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왜 진실 규명을 하겠다고 모인 가족들을 대적해 서있는 겁니까."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을 거부하는 대신 정부가 '유가족 지원책'을 거론하고 나선 데 대해 가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가 언제 배·보상 얘기했나, 정부는 왜 우리를 호도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