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벌점 15점에 벌금 7만 원. 내 자동차에 대하여 날아든 우편물, 과속범칙금 영수증이 현관 앞에 쫙 펼쳐져 있었다. 카메라에 찍힌 날짜를 찬찬히 살펴보니 90대 노모가 계시는 친정집에 다녀왔던 날이었다. 뭐 그리 시간에 쫓길 만한 일도 없는 백수가 과속을 했으니 헛웃음만 나왔다.
운전경력 33년. 기간만 보면 소위 베테랑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교직 생활 출퇴근에 늘 서두르다 보니 급한 마음이 성격이 되었다. 이번에도 110km가 규정 속도인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130km 이상을 밟았던 것이다.
친정까지 고속도로에 설치된 과속 감지카메라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새로운 장치가 생긴 걸까. 밤길에 숨은 부엉이가 나를 쏘아보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남편과 각자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나름 운전만큼은 남편보다 더 잘한다고 자신했다. 범칙금 우편물이 날아오면 우선 누구 자동차인지 재빨리 용지를 스캔한다. 그러다가 내 차에 대한 내용물이면 얼른 남편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감춰버린다. 남편 자동차에 대한 우편물이면 떡 하니 현관 앞에 펼쳐 놓았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귀가한 남편에게 딱 걸려, 상황이 역전(逆轉)되었다.
저녁 늦게 귀가해 남편의 레이저 눈빛을 피하느라 싱크대 그릇들을 요란하게 닦았다. "그렇게 과속할 때 돈은 아깝고 목숨은 아깝지 않느냐"고 한 마디 들었다. "그러게, 내가 정신이 나갔나 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왜 돈은 아깝고 목숨 아깝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일까.
다음날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에게 운전습관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1년에 평균 10번 정도의 과속 범칙금을 받는다. 그 돈이 모이면 얼마냐. 이 나이에 더 멋진 여행도 하고 싶은데 말이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한 가지 '꿀팁'이라며 차에 있는 크루즈(CRUISE) 기능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은 자동차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정속 주행 장치' 혹은 '자동 속도 조절 장치'를 일컫는 용어이다. 크루즈 컨트롤을 이용하게 되면 속도계를 보지 않고도 제한 속도, 경제속도에 맞추어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단다. 그런 사실을 이제야 알다니!
마침 남편과 광주에 다녀올 일이 있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규정 속도 110km고속도로에서 109km에 크루즈 기능을 설정해 놓고 달렸다. 가속기를 밟지 않아도 109km에 고정된 채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속기(accelerator)를 밟아대느라 수고했던 오른발이 호사를 누렸다. 더구나 광주에서 군산까지 도로가 한적하여 이 기능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109km에 고정되어 있으니 집에 도착한 이후에 범칙금 용지가 날아들까 봐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득 내가 살아오면서 달려왔던 인생길이 생각났다. 규정 속도 대로 천천히 달려가면 되는 길이었는데 앞에 나타난 도로는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았다. 때로는 심한 구불길이 나타나기도 하고, 갑자기 도로 폭이 좁아져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는 길이 보이기도 했다.
어느 때에는 규정 속도보다 더 낮은 속도로 앞차와의 간격을 두고 운행해야 하는데 속도를 낮추지 못하고 과속을 했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대가는 혹독했다. 아파트 집 문서가 날아가고 집안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운전을 했는데, 이제라도 나를 움직여주는 자동차의 기능을 서서히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기의 특성을 알아야 유용하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과속범칙금 영수증이 오늘 따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새해 첫날, '65세 노인'이라는 새로운 명찰을 달아야 하는 마음이 다소 우울했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새롭게 운전습관을 바꿀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제2의 인생을 항해하는데 표준이 되는 설정 하나 세웠으니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