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SPO(학교전담경찰관) 확대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오는 3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되는 학교폭력(학폭) 전담조사관제에 대해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이 '교사 업무는 줄어들지 않고, 학폭 상황을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취지로 전망했다. 심지어 한 교육청 담당자는 "6개월 이상 시범실시를 통해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사법적 해결에 과잉 의존, 잘못된 결과로 악화될 수도"
지난 2일 오후 3시부터 국회에서 진행된 '학폭전담조사관제 방안과 과제' 토론회 발제를 맡은 조성백 서울시교육청 학폭담당 장학사는 "지난 해 서울 초중고 학폭 9000여 건 가운데 60% 정도가 학교장 자체해결이고, 80% 정도가 경미한 조치에 그쳤다"면서 "조사관제도로 인해 이러한 학교장 자체해결 사안까지 모두 외부의 '조사관'에 의해 사안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법적 해결에 과(잉) 의존하게 되어 학교장 자체해결이 가능한 사안도 심의위원회 개최라는 잘못된 결과로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토론회는 교육희망네트워크와 국회 교육위 강민정 의원실이 주최했다.
이어 조 장학사는 "조사관제도가 시행돼도 학폭 사안 접수와 1차 확인서, 접수보고서 작성은 여전히 학교의 역할이다. 조사관의 사안조사 시 학생 보호 와 심리 안정 등을 위해 교원 배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일련의 절차는 사안처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교원의 업무가 오히려 더 늘어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조 장학사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조사관제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당사자다.
또한 조 장학사는 "서울의 경우 330명의 조사관 수당 지급에만 연간 약 36억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이러한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학교폭력 예방과 갈등 조정과 화해를 위한 정책에 투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조 장학사는 "충분히 제도를 검토하고 6개월 이상 시범 실시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어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실상 올해 3월부터 전면 시행되는 조사관제를 연기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학폭담당 변호사도 발제에서 "대부분의 시도는 위촉직인 조사관들에게 '건'당 수당을 지급한다. 학폭 사안 1회의 조사를 하든지 5회의 조사를 하든지 하나의 건으로 수당이 지급되는 것"이라면서 "조사관은 신속한 업무 종결을 위해 무리하게 사안조사를 마무리 짓거나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행위가 이전보다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국 2700명 규모인 위촉직 조사관에는 퇴직 경찰과 퇴직 교사 등이 응모할 수 있다. 상당수 시도교육청의 경우 퇴직 경찰이 절반 이상 응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변 변호사는 "경기도의 경우 조사관 지원자 가운데 실제 퇴직경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개인적으로 이들이 학폭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와 학생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실관계만 따진다면 엄청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교사의 업무경감 기대에 대해서도 변 변호사는 "학교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학폭) 업무를 모두 덜어낼 수 있겠느냐"면서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혹여 있을지 모르는 강압적인 조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조사관 조사 시에 교원의 동석은 필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학생들이 '학교폭력 조사'를 이유로 난생처음 보는 어른과 독립된 공간에서 마주해야 한다. 얼마나 무섭겠느냐"면서 "조사관 제도가 조금 더 천천히 도입됐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강균석 따돌림사회연구모임 학교평화연구단 교사도 "정부는 조사관을 채용하여 학교에 신고된 모든 학폭 조사를 맡기겠다고 하지만 과연 교사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고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나는 교사 업무가 더 늘어날 것을 각오하고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강 교사는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핵심은 화해와 중재이다. 화해, 중재의 전문성은 교사에게 있으며, 따라서 학폭 전문가는 교사"라면서 "외부 전문가들이 교사를 도와주는 형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전문성 없는 조사관들의 조사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교사들이 학폭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 의견도
이런 의견에 반해 김상일 서울강덕초 교사는 "이번 조사관제도는 학교폭력 업무개선을 요구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면서 "조사관의 도입은 일선의 교사들이 학폭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 교사는 "사안 조사 과정에서 교사가 참여하거나 동석할 경우 조사관 제도는 교사의 업무 경감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허울뿐인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조사관 제도가 교원의 업무경감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조사과정에서 교원이 배제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가해학생 상담을 오랜 기간 해온 김옥성 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 상임대표는 토론에서 "교사업무경감도 좋은 얘기지만, 퇴직 경찰이 학생을 조사한다면 학생들은 죄를 진 것이 없어도 겁을 낼 것"이라면서 "이런 것이 과연 교육적인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최창의 교육희망네트워크 운영위 공동대표는 3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조사관제에 대해 대부분의 교사단체에서 환영성명을 냈고 교육부의 선물처럼 받아들이려는 의견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것이 선물이 아니라 폭탄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희생당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교육언론창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