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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노동 강도와 빠른 속도 강요 등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 사용자와 정부는 그 판단을 수용해야 하고 불이익을 가하면 안 된다. 작업중지권은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기도 하고, 현장의 위험을 드러내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곳에서 생산량은 정언명령으로 작동하고 있고, 자본은 노동자 작업중지에 대해 해고와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다양한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은 어떻게 인식, 발휘되고 있을까. 권리 행사에 무엇이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고,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까. 강규형 화섬식품노조 SPL지회장, 강찬구 건설노조 충남지부 정책국장,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안규백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장, 정경숙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 최효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분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들어보았다.

다양하게 발휘될 수 있는 노동자 작업중지

작업중지권은 위험에서 기인한 산업재해(중대재해가 아니다) 발생 이전에 발휘될 수 있는, 사전적이고 예방적인 권리다. 그렇기에 시설의 문제를 포함, 높은 노동 강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도, 위험작업 거부의 의미로도 활용될 수 있다.

안규백 : "일상적 현장 지배력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3~4년 전 회사가 라인 속도를 높였어요. 당시 저는 대의원이었고, 회사의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판단해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안돈 줄(비상 정지줄)을 당겨서 2시간 정도 멈추게 한 적이 있어요. 작업자들이 대소변 등 생리 현상이 급할 때 라인을 정지해 놓고 화장실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강찬구 : "'야기리 작업'이라고, 대형으로 조립된 거푸집을 꽂는 작업이 있는데 바람이 불면 위험해요. 노조가 힘이 있을 때는 '바람이 부니까 다음에 합시다'라고 할 수 있었어요. 타워크레인 기사도 작업을 멈추고 내려오기도 했어요. 현장 안전 통로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정비하기 전까지 작업하지 않겠다고 거부하기도 했고요
."
 
 위험상황 시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지만, 끊임없는 생산압박 속 작업중지는 그림의 떡으로 보이게 만든다.
위험상황 시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다지만, 끊임없는 생산압박 속 작업중지는 그림의 떡으로 보이게 만든다. ⓒ 안전보건공단/쿠팡물류센터지부인천분회
 
여전히 많은 현장에서 작업중지는 재해 발생 후 시행되고 있다. 그럴 때 작업중지 해제 시점이나 그 판단의 주체가 쟁점이 되기도 한다. 정경숙 부본부장은 사고 바로 다음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급식을 재개하려는 학교를 막은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정경숙 : "한 학교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있었어요. 그날은 간편식으로 했는데, 다음날 물어보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 다쳤으니 급식을 재개한다더라고요. 이렇게 큰 사고인데 어떻게 급식을 할 수 있냐고 노조에서 항의했고, 3일 정도 급식 안 하고 심리치료 등을 하며 안정된 다음에 급식을 재개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이처럼 사고 후 작업중지는 몇 번 해봤지만 예방 차원에서 작업중지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한편, 지난한 분쟁을 거친 콘티넨탈지회 작업중지는, 근처 사업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회장이 대피권을 행사한 경우였다. 유해물질 등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굳이 지회장이나 노안부장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대피할 수 있어야 한다. 안규백 지부장은 창원공장 사례를 소개하며, 자발적 대피권을 행사하는 걸 처음 봤다고 말한다.

안규백 : "창원공장 사례인데, 페인트칠이 잘 되었는지 검사하고 이물질이 묻어 있으면 연삭하는 공정이 있었어요. 굉장히 폐쇄적인 공정이고, 회사가 공기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지만 제대로 안 해서, 정화되지 않은 공기가 작업장 밖에서 유입될 때가 종종 있어요. 공장 주변 소각장에서 발생한 냄새가 유입되는 예도 있는데, 그러면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냄새가 나요.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라인을 정지하고 다 밖으로 나가요, 자발적으로. 그 냄새에 대해 뭔가 기준이 있거나 이러진 않았어요. 그냥 한 공간에 있는 30~40명의 작업자가 한 번에 밖으로 다 나갑니다. 한참 있다가 냄새가 사라졌다 싶으면 다시 가동해요. 제가 제 눈으로 확인한, 노동자들 스스로 자발적 대피권을 행사하는 첫 사례였어요."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속, 옥외·이동·야외노동자들의 경우 예측 불가능해지고 많아질 기후재난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기상악화 시 자기 보호를 위해 작업 중지를 하더라도 소득을 보존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기후 실업급여'를 라이더들이 요구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구교현 : "폭설이나 폭우 등 기상악화 상황에서 작업 중지를 할 수 있어야 해요. 다만 라이더들은 낮은 건당 수수료 체계에 묶여있기에 일시적인 실업급여의 방식으로라도 수익 보전이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작업중지가 실질적으로 보장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윤만을 위한 생산성의 강요, 요원해지는 작업중지

아직 많은 곳에서, 노동자 판단으로 작업중지를 하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위험이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 작업을 중지할지 판단하기 모호하다. 또 특정 공정을 멈추었을 때 모두가 멈추도록 설계되었다면, 그것이 작업중지 행사에 방해로 작동하기도 한다.

정경숙 : "급식실은 전체가 하나로 이뤄지다 보니 이걸 작업중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어디까지 작업 중지를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거부했을 때 '나한테 불이익은 없을까' 하는 생각들도 많이 하고요."

강규형 : "박스 포장 공정은 거기가 서면 모든 라인이 다 서야 해요. 그걸 세울 수 있겠습니까? 거기는 비상 정지버튼도 없어요. 뒤집히건 찌그러지건 깨지건 손으로 다 빼야 해요. 그러다 절단 같은 사고가 많이 발생하기도 했고요."


몇 년간 쿠팡을 포함해 여러 물류센터에서 일한 최효 분회장은 한 번도 작업 중지를 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SPC그룹 노동자들도 그렇다는 게 강규형 분회장의 주장이다. 이들은 공통으로, 생산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지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강규형 : "회사가 라인 운영하면서 중점을 두는 게 생산성이거든요. 일을 잘하는 사람, 가장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라인장으로 뽑는 것 같아요. 빵을 만들다 보면 기계 불량도 많이 나와요. 저희가 '이거 고치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관리자들은 라인을 세우면 안 된다는 식이에요. 그런 게 노동자들 몸에 배면, 라인을 세울 생각을 할 수 있겠냐는 거죠."

최효 : "관리자는 중앙에서 생산량을 다 측정하고 있어요. (이런 압박에) 사람들이 진짜 무리해서 일합니다. 건강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생산성 추구, 그리고 안전과 관련한 설비나 교육에 전혀 투자하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를 징계하겠다는 압박, 작업중지 때 노동자의 책임을 묻겠다는 폭언은 노동자를 더욱 옥죈다.

강규형 : "예전에는 불량이 나면 혼자 처리했거든요. 그 많은 라인을 혼자 왔다 갔다 하면 마음이 얼마나 바쁘겠어요. 노동자들도 여유가 없어요."

노동자가 직접, 노동조합이 집단으로 발휘하는 작업중지를 위해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집단적/개별적 노동자 참여의 권리로써 작업중지권의 보장은, 그것이 위험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것이든 예방을 위한 것이든, 노동자의 현장 통제권 확보의 의미를 지닌다. 노동자들이 직접 시행하는 작업중지가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교육공무직본부는 노조 차원에서 작업중지를 실제로 발휘하여, 현장 개선의 무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급식노동자에게 맞춘 작업중지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배포를 준비하고 있다.

정경숙 : "노조 차원에서 학교에 맞는 작업중지를 고민했고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었어요.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실제로 가동되게 하는 것이 올해의 계획입니다. 환기 시설이 심각하게 안 좋은 현장들을 발굴해서 정말 한 번 정도는 작업중지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뷰이들은 노동자들이 작업중지를 행사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하는 장치를 강조했다. 노동조합의 힘은 더 크게, 단체협약과 법 제도적 장치는 더 촘촘히, 법적 문턱은 더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강찬구 : "건설 현장은 불법하도급 금지와 적정 공사 금액, 공사 기간이죠. 노조 차원에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안전 시공을 해왔어요. 건설안전특별법 등 법 개정 사업도 해왔는데, 노동조합이 힘이 있어야 현장 안전을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구교현 : "사회보험 차원에서의 대책도 필요하고, 단체협약을 통해 명문화하는 것도 필요해요. 그리고 기상 악화같이 위험 상황에서는 플랫폼이 주문 자체를 안 받아야 해요."

정경숙 : "모든 사업장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아직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리를 좀 더 명확히 규정하고 법의 테두리도 낮춰서,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정말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이들은 또한 현장에서 건강과 안전을 이야기했을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것, 노동자 누구나 위험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회사의 논리에 계속 의문을 제기하며, 생산 속도와 방식을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춰나가는 싸움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강규형 : "불만을 얘기하면 라인이 이동되고 진급이 안 되는 것, 생산성이 좋은 사람들이 성과급 받고 진급하게 되는 이 틀을 싹 바꿔야죠. 아프면 쉬게 하고 인원이 모자라면 추가해 주는 게 관리자의 일이잖아요."

최효 : "생산성이 떨어지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불이익을 준다거나 하지 말아야겠죠. 그리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안규백 : "누구나 위험을 인지했을 때 작업중지를 행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은 굉장히 어려운, 법적 권한으로만 해석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어요.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도 그 권리를 행사할 주체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서, '작업중지'가 노동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 그냥 어려운 걸로 인식되고 있는데, 정말 그런지를 따져 묻고 적극적으로 우리 논리를 만들어 가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노동자작업중지권#위험거부할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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