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0년 2월 22일 창간한 <오마이뉴스>가 올해로 창간 24주년을 맞았습니다. 부자지간이나 사제지간 또는 글 쓰는 활동을 통해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은 시민기자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6년간 페이스북에 매일 한 편 이상의 완성도 높은 에세이를 꾸준히 올리는 사람, 그래서 쓰는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이가 있다. 정지우 작가다. '글쓰는 변호사'로도 알려진 그는 <분노사회>,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등 20여 권의 책을 낸 작가이다. 뒤늦게 변호사가 돼 어느덧 4년차지만, 그 와중에도 글쓰기 수업을 놓지 않았다.

그는 수업에서 만난 '쓰는 사람'들을 차곡차곡 모아 느슨하지만 연대가 확실한 '글쓰기 네트워크'를 만드는 중이다. 그 안에서 뉴스레터 발행, 공저 프로젝트 진행,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배출 등 글쓰기의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다. 정 작가를 지난 6일 줌 비대면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정지우 작가(자료사진).
정지우 작가(자료사진). ⓒ 정지우
 
2021년 봄, 나는 정지우 작가를 만나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처음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 글쓰기의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럴 때마다 내 메일함에는 독서모임 초대장, 필진 모집글, 단톡방 링크 등 정 작가가 보내는 네트워크로의 초대가 가뭄의 단비처럼 도착했다. 원하는 이는 모두 오픈채팅방에 들어와 함께 글쓰기를 고민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그가 만든 무형의 '글쓰기 네트워크'에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함께 글을 쓰다 어느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뿌듯했다. 그러다 책 출간 계약까지 했다(관련 기사: 투고한 지 하루 만에 "책 내시죠"... 비결이 궁금하면). 그때 문득 누군가 잘 닦아놓은 고속도로 덕에 내가 너무 수월하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궁금했다. 정 작가 본인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스무 살 때부터 혼자 글을 썼어요.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어떻게 쓰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 맨땅에 헤딩하듯 고민했죠.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에, 여러모로 외로운 여정이었죠. 그래서인지 글 쓰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굉장히 값진 일처럼 느껴져요. 글 쓰는 사람들을 서로 잇고, 글쓰기 장을 여는 일이 제가 큰 노력 안 들이고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서 계속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글쓰기 동료들을 보면 브런치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도 '좋아요' 10개가 전부인 시절을 오래 보낸다. 그러다보면 내 글은 열 명에만 가닿는 별로인 글인가 좌절도 한다. 그런데 '글쓰기 네트워크'에서는 달랐다. 서로가 영향을 끼쳤다.

동료 글이 <오마이뉴스>에 발행되는 걸 보며 용기를 낸다. 별 기대 없이 투고를 했는데 메인에 기사로 채택되고, 조회수가 수 천이 넘고, 포털에도 걸리고, 오마이갓! 원고료까지 입금되면서 비로소 글쓰기에 자신감과 재미가 생긴 동료들도 많다. 정 작가는 말한다.

"글쓰기가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하나의 관계 맺는 방식이잖아요. 저는 글쓰기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언어를 쓰고 글 쓴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라는 거잖아요. (...) 요즘은 모든 사람이 매체인 시대가 됐고, <오마이뉴스>에서처럼 누구나 자기 글을 써서 발행할 수 있고요."

서로의 필요가 만나 충족되는 순간
     
  정지우 작가와의 줌 인터뷰 장면
정지우 작가와의 줌 인터뷰 장면 ⓒ 화면갈무리
 
쓰도록 돕는 일이 '쓰는 사람'을 살리는 일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정 작가는 이걸 '윈윈'이라고 표현한다.

"저와 같이 글 쓰시는 분들이 다들 완성도 있게 쓰신다는 확신이 제겐 있어요. 잘 쓴 글을 그냥 두면 아깝잖아요. 기존 플랫폼은 항상 좋은 글을 찾고 있고, 우리 글쓰기 모임원들은 항상 좋은 글을 갖고 계시니 서로의 니즈가 충족되는 부분이 있죠.

특히 <오마이뉴스>가 상당히 괜찮은 게, 주요 뉴스로 선택을 해주면 네이버에도 발행이 되거든요. 포털 뉴스에 자기 글이 발행된 경험을 한 번 가지면 굉장히 뿌듯함을 느끼게 되죠. 더불어 소정의 원고료도 받아 보면서 글쓰기의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속한 글 합평 모임 참석자들 대부분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가입해 글을 써봤다. 채택되니까 너무 뿌듯하더라는 후기가 잇따르자, 합평 때 들고오는 글 중에 '시의성' 있는 글이 한 편이라도 나올라 치면 모임원 사이에서는 "이번 글 꼭 투고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게 유행일 정도다.

혼자서는 못 했을 도전도 같이 하면 용기가 나는 법이다. 최근에도 같이 공부하는 동료 중 두 명이나 메인에 글이 채택돼 포털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관련 기사] 
2020년 코로나 신부, 드디어 결혼식 합니다(서나연 기자) https://omn.kr/278op
출근길에서 시작된 나의 불안을 잠재운 것(김아람 기자) https://omn.kr/26s5o
  
검색해보면 정 작가의 기사도 <오마이뉴스>에서 여러 건 찾아볼 수 있다. 처음 투고했을 때 작가도 우리처럼 긴장됐는지 궁금했다. 재미있는 건, 정 작가에게도 글을 올리면 조회수가 '10' 뿐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재처도 여러 군데 있고 페이스북에만 올려도 1만~2만 명씩 봐주시지만, 7~8년 전만 해도 글은 매일 쓰는데 책 말고는 글 실을 데가 없는 거예요. 고민 끝에 언론사들에 투고를 해봤어요. 글이 실리는 경험을 해보면서 느꼈죠. 글은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도 모르지만 투고해 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요."

글을 아까워하는 마음, 아껴주는 마음

요즘 글쓰기 수업은 코로나19 이후 거의 줌으로 진행된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지자 글쓰기 네트워크도 확장되고 있다. 정 작가는 줌으로 시도한 글쓰기 모임이 여러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글쓰기를 신청해주세요. 또 줌 모임은, 마음은 아주 깊이 나누는데 서로 시기 질투, 뒷담화는 할 일이 없는 거예요. 글쓰기로 맺어진 관계는 굉장히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고 서로를 지지하는, 아주 건전하고 신기한 관계란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합평을 하며 모임원들과 매번 감탄하게 되는 지점도 정확히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데 담백한 관계가 가능할까. 가족에게도 못다한 속내를 글로 써서 보여주고 때로는 함께 울고 응원도 받는데, 돌아서면 상대의 개인사는 전혀 모르는 관계. 늘 궁금했던 그 이유를 정 작가도 역시 고민한 적이 있었다.
 
"글은 자기가 자기이고 싶은 이야기를 해서일 거예요.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를 맺다 보면 그때그때 나를 취사 선택하기가 힘들잖아요.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강제로 노출되기도 하고, 싫은데 맞춰야 되는 부분도 생기죠.

글쓰기는 자아를 계속 걸러내면서 자기가 자기이고 싶은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작업 같아요. 그러니까 필요 없는 감정 소모 없이 자기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만 나누면서 관계가 담백해지는 거죠. 저는 글쓰기에서 그런 과정들이 좋은 것 같아요."

 
2021년 봄,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함께한 우리들  줌으로 진행된 글쓰기 수업을 마친 밤에 글 얘기로 행복했던 그날의 기분을 남기고 싶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1년 봄,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함께한 우리들 줌으로 진행된 글쓰기 수업을 마친 밤에 글 얘기로 행복했던 그날의 기분을 남기고 싶어 기념사진을 찍었다. ⓒ 화면갈무리
 
지난 2018년 로스쿨에 들어갔을 때, 정 작가는 페이스북으로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글'을 매일매일 쓰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런 '글쓰기 특급 비법'을 알아내려던 내 계획은 그의 답 몇 마디에 보기 좋게 무너졌다.
  
"매일 글쓰기를 무슨 운동처럼, 강박처럼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 같아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설을 썼고, 대학생 때는 블로그에 글을 썼고, 일기는 언제나 매일 썼고... 글쓰기가 습관화 되어 있었어요. 매일 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에요. 

저는 하루가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까워요. 그날의 기억과 일들을 그날 쓰지 않으면 병을 앓듯 다 사라지는 것 같거든요. 매일의 소중한 추억, 웃긴 일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 보며 느낀 감상들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에게는 글로 연결되는 일이 꽤나 중요했던 것 같다. 나는 정 작가가 글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경이로운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실제 인터뷰 내내 정 작가는 글이 '아깝다', 추억이 '아깝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저는 항상 뭔가 아까워요. 내가 쓴 글도 아깝고 인생도 아깝고 사람도 아깝고 다 아깝잖아요. 여러분이 공들여 열심히 쓰신 글들, 거기에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글쓰기를 도와드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글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 글들을 어떻게 하면 세상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계속하게 돼요."


나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 글을 대신 아까워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한없이 고마워지는 인터뷰였다. 정 작가의 글이 따뜻한 이유는, 쓰는 사람들이 그를 자꾸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생면부지의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정 작가에게 글쓰기는 인생 그 자체인 듯하다. 그는 '네이버 카페' 커뮤니티를 또 새롭게 시도 중이다. 왜 새로 시작하려는지 이제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아마 더 많은 쓰는 이들이 더 혜택 받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겠지. 그의 시도는 과거에도 그랬듯, 쓰는 이들을 아끼는 쪽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정지우#투고#글쓰기네트워크#세상의모든문화#매일글쓰기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