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보며 걷는 탐조 산책을 시작한 이후 나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관련기사 :
동물 좋아하세요? 올해는 '새 구경 걷기' 어떠세요 https://omn.kr/271go). 내게는 새소리가 유튜브 영상에 붙은 광고처럼 느껴진다. 어서 산으로, 숲으로 놀러 오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이 중요하다고 절감하면서도 막상 집을 나서는 게 쉽지 않은데, 새소리는 이런 게으름을 잠재워준다. 헬스장 퍼스널 트레이너가 따로 없다.
기쁜 마음에 새소리를 따라가도 늘 행복한 운동 시간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산책로에는 거의 항상 쓰레기가 있다. 산책 왕복 코스를 오가며 휴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로또 당첨'이라 불러도 좋다. 쓰레기가 있는 길은 일상이다.
사방에 널린 게 쓰레기
그냥 눈으로 안타까워하고 끝내기에는 쓰레기의 양이 많다. 대로변은 환경미화원 분들이 정기적으로 치워주시지만 동네 뒷산 안쪽까지는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이따금씩 시니어 활동가 분들이 쓰레기를 줍기도 하지만, 행정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우리의 기분과 안녕을 위하여 짧은 산책로 구간 만이라도 치워보기로 결심했다. 겨우내 플로깅이 뜸했는데 입춘도 지났으니 새 마음 새 뜻으로 집게를 들었다.
쓰레기의 시작은 산책로 초입의 담배꽁초다. 나는 비흡연자라 잘 모르겠지만 흡연자 분들은 독특한 루틴이 있는 것 같다. 처음과 끝 단계에서 한 대씩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산책 시작 전 한 대, 끝나고 한 대. 모든 흡연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상하게도 코스 중간보다도 양쪽 끝 지점에 담배꽁초가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예전에 다른 곳에서 플로깅을 할 적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모습이다.
꽁초와 짝꿍을 이루는 오물은 침과 가래다. 나뭇가지에 앉은 직박구리 사진을 찍으려다 타인의 지저분한 타액을 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드물게 침을 가려 뱉고, 꽁초를 개인 재떨이에 보관하는 매너 흡연자도 있지만 다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담배꽁초 필터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새들이 먹이로 오인하고 삼키면 분해되기까지 짧게는 18개월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봉지와 사탕껍질을 주으며 산길을 오르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휘이잇! 휘이잇!" 하는 동고비 울음소리였다. 최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서도 동고비를 관찰하고 소리를 녹음했었기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동고비는 특이하게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리를 낼 수 있다. 대표적인 소리가 "휘이잇! 휘이잇!"이다. 문자로는 고유의 음색과 청량함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다. 딱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 좋은 소리다.
몸 윗면이 청회색으로 덮인 귀여운 동고비는 나무 타기의 명수다. 크기는 박새만 해서 눈을 크게 뜨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동고비는 나무 기둥을 위아래로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굵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움직이기도 한다. 발톱에 초강력 찍찍이라도 달려있는 걸까. 통통거리듯 나무 표면을 뫼비우스 띠처럼 내달린다. 동고비는 사람을 별로 겁내지 않는 듯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동고비를 보기 위해서라도 플로깅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에 쓰레기 줍기를 게을리했더니 덤불 곳곳에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비타민 껍질, 광고지, 테이크 아웃 컵이 수시로 등장했다. 버려진 채 꽤 방치되었는지 햇빛에 외관이 바래있었다. 전단지는 집게로 들어 올리자 작은 조각들로 분해되어 떨어졌다. 할 수 없이 손으로 재차 주웠다. 플로깅 할 때는 집게뿐 아니라 목장갑을 준비하면 편하다.
최근 운동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오십 분 남짓한 플로깅 시간 동안 제법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우리 부부를 향해 시청에서 나왔냐고 묻는 분도 있고, 감사하게도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는 분도 있었다. 대부분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시비를 걸거나 훼방을 놓는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때때로 플로깅을 하다 보면 불쾌한 일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쓰레기봉투에 개인 쓰레기를 한 움큼 버리고 가기도 한다. 어차피 길에 버렸다면 쓰레기일 것인데, 우리 수고를 미리 덜어주는 건가? 상상과는 달리 막상 현실에서 이런 '쓰레기 빌런'을 만나면 당황스러워서 뭐라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게 된다. 세상에는 산책로에 버려진 각양각색의 쓰레기만큼이나 다양한 개성과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플로깅에서 발견한 놀라운 쓰레기는 개똥 봉지였다. 개똥을 치우는 것은 반려견 산책인의 기본 에티켓이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분들은 배변 봉투를 지참해서 알아서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신다. 똥이 담긴 봉투를 꼼꼼하게 묶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감정마저 든다. 그렇지만 경악스럽게도 개똥이 든 봉투를 엉뚱한 곳에 무단 투기한 현장을 종종 발견한다.
도대체 어떤 심리일까.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반려견 배변 처리를 잘하는 선진 시민이었다가, 주변의 눈이 사라지면 덜렁거리는 봉투를 휙 던져버리는 것일까. 알지 못하는 특수한 사정이 발생해 부지부식 간에 배변 봉투를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개똥 봉투를 주워 담았다. 모든 쓰레기에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플로깅을 지속할 수 없다.
좋은 의도였을 거라고 상상하기
플로깅을 할 때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AGI'이다. 'Assume Good Intension'을 약간 비틀어 조합한 약자로, 좋은 의도였음에도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령 길에 휴지뭉치가 흉측하게 뭉쳐져 있다고 하자. 가장 안 좋은 방법은 저주다. '누가 자기 코 푼 휴지도 못 챙겨? 콧구멍에 다시 넣어주고 싶네.' 이런 저주를 내리면 나의 하루만 망친다. 대신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기', AGI를 가동한다.
갑자기 강풍이 불어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가 코를 풀다가 휴지가 바람에 날아가버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라 휴지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쓰레기로 남게 되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가벼운 심정으로 집게질을 할 수 있다. 이제야 휴지 주인의 찜찜한 마음이 풀어지게 되겠구나, 하고 덕담도 좀 해주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산을 내려오는데 "까까까" 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까치였다. 음색이 공격적으로는 안 느껴져서 배웅을 해주는가 보다 하고 여겼다. 하도 흔해서 그렇지 까치는 매우 영리한 새다.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낼 줄도 알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기도 한다. 까치를 괴롭히면 그 사람 얼굴을 몇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고 반격하기도 한단다. 까치에게 밉보이지 않도록 집게가 무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온이 올라가며 눈에 덮여 있던 쓰레기들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는 곧장 집으로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 떨어진 꽁초를 연신 주워댔다. 산책길만 플로깅해도 충분한데,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타박을 주니 그러면 쓰레기봉투가 남는다며 도리어 지청구를 들었다.
남의 집 부부 말다툼 구경이 재미있는지 직박구리가 근처 나무에서 울어댔다. 그래, 이 녀석들이 먹이로 오인하고 삼킬 수 있었을 쓰레기들을 아주 일부라도 주웠으니 오늘 산책은 보람 있었다.
쌍안경을 들고 나무 위와 호수의 새들을 평화로이 구경하는 탐조 산책도 좋지만, 때로는 새들이 사는 보금자리 주변을 청소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집게와 목장갑은 쌍안경만큼이나 중요한 탐조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