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저 가격 미친 거 아니야."
함께 장을 보던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가리키는 애호박 가격표를 보고 나도 놀라고 말았다. 애호박 하나 가격이 3590원이다. 내가 평소 보는 코너의 애호박이 맞는지 내 눈을 의심했다.
내가 비싸게 준 애호박 가격은 2천 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두 배 가까이 오른 것이다. 내가 은퇴 이후 몇 년간 장을 보면서 애호박 가격이 이처럼 비싼 건 처음이다. 설 연휴 여파를 감안해도 애호박이 너무 올랐다. 눈길만 주고 돌아섰다.
대파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포항초 시금치는 6천 원 가격표가 붙었다. 10개들이 두릅은 5890원이다. 손가락만 한 두릅 한 개가 6백 원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7천 원이 넘는 아기 손바닥 만한 고사리와 도라지 포장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정말 채소 코너 보기가 겁났다. 버섯만이 내게 윙크를 보내는 것 같다. 가격대가 설 전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설이 지난 13일 동네 하나로 마트에 갔다가 놀랐다. 비빔밥 재료를 사러 온 것인데 장보기가 겁난다. 정말 식재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오른 것 같다. 인플레 공포 속에 사는 기분이다. 전업주부들 심정은 오죽하겠나 싶었다. 야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아내도 물건을 한참 들여다보며 심드렁했다. 마트 관계자도 높은 가격에 대해 자기들도 모른다며 고개를 돌렸다.
고물가는 이제 대세인 거 같다. 사과 가격은 이제 한 개가 5천 원으로 고착됐다. 바나나 한송이 맞먹는 가격이다. 항간에 우리나라 사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말도 들린다.
아내가 말했다. 이럴 바엔 돈 더 주고 비빔밥을 사 먹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아끼려다 되레 고생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식값도 장난이 아니다. 서울 시내보다 가성비가 좋은 우리 동네에서도 9천 원 이하 식당은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식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노후준비를 거의 하지 못한 우리 집에서 생계비 중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다. 사실 극빈층 수준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마트에서 필요한 것만 사고 비빔밥 재료를 사기 위해 인근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포항초 시금치 한 단을 마트 반값인 3천 원에 샀다. 무와 콩나물도 구입했다. 무를 볶아 무나물을 만들었다.
장을 보면서 시장상인들과 소상공인들이 힘들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인심 좋게 반찬을 더 내주는 것도 이제는 좀체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복잡한 유통과정은 논외로 하고 식자재가 이렇게 오르면 정말 서민들은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
아내와 나는 비빔밥 흉내를 내기로 했다. 더 많은 재료를 넣고 싶지만 무나물, 콩나물, 시금치로 만든 비빔밥을 그런대로 맛있게 먹었다. 비빔밥을 먹으면서 물가 이야기는 계속됐다. 푸념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러다 하루에 두 끼만 먹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물론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물가와 체감하는 물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내 생각에 식재료 물가만 잡아도 성공하는 정부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