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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여러분들 마음 가는 대로 사세요."
(국민대학교 홈페이지 KMU 소식, 2024년 2월 14일, <국민대,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 개최>).
 
이효리가 국민대에서 한 졸업식 축사가 화제다. 2022년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뉴욕대에서 한 축사도 소환됐다(관련기사: "인생은 독고다이" 이효리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통점 https://omn.kr/27fzj). 뒤늦게 두 가수의 말을 읽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22년 뉴욕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한 실수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로 이어졌다"라며 대학 졸업생들에게 '실패'의 중요함을 강조했다(2022년 5월 18일 빌보드 뮤직 뉴스 테일러 스위프트의 뉴욕대 축사 전문). 또한, 그 자신도 앞으로 "본능과 직관, 욕망과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생은 물론 확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이는 유명 가수들에게도 유효한 '실패할 권리'가 중·고등학생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니 애초부터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런 권리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코칭'이 우리말처럼 사용되는 시대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몇 명이나 '실패 경험'과 '다름'을 말했을까?

이효리가 국민대 졸업식에서 불렀다는 '치티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은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로 시작한다. 2010년에 나온 노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생(先生)이라는 이유로,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남의 삶에 쉽게 끼어든다. 자신이 살지도 않을 다른 사람의 '진로'와 '미래'를 자신 있게 설계하고 조언하는 무모함을 보인다. 교육 당국과 학교는 '진로', '진학'을 앞세워 '무례한 개입'을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에게 요구하기까지 한다.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네 번 반복)
그 누구도 내게 간섭 마
다 똑같은 말도 하지 마
여긴 나만의 것 It's my world …"
(이효리, 2010년, <치티치티 뱅뱅> 가사 일부)
   
 가수 이효리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공연을 마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가수 이효리가 14일 오전 서울 성북구 국민대학교에서 열린 2023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에서 공연을 마치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0년 전인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실 이데아>에서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쳤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다"라는 학교와 기성세대의 '속임수'가 '이제' 지겹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1994년에도, 2010년에도 <교실 이데아>와 <치티치티뱅뱅>을 당시 기성세대들은 따라 불렀다. 하지만, 가수 개인들만 쳐다보고 열광했다. 자신들이 감옥 같은 교실을 만들고 귀에 피가 나도록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매운 가사 내용은 마음에 담지 않았다. 2024년 2월 이효리의 졸업식 축사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귀를 막은 어른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2023년 8월에 발표된 AKMU(악뮤)의 <후라이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 AKMU는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단물 빼먹으려고 혈안이 돼 찾는 바로 20대 '청년들'이다. 그들이 "너의 구겨진 꿈"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한다. 40, 50대, 아니 퇴직 후에도 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학교와 사회는 고등학생이 꿈이 없다고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도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어서 남의 꿈을 빌려 꾸기라도 해
나에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 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
(AKMU, 2023, <후라이의 꿈> 일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매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이를 무시한다. '하고 싶은 것이 없다'라고 하면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취급한다. 사람마다 '흐름'과 '리듬'이 다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틀'에 가두려고 한다. 그 틀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묻지도 않는다.

<후라이의 꿈>은 옆에 있는 사람을 밟고, 다른 누군가보다 높은 곳으로 가라고 계속 강요한다면 '계란 후라이'처럼 "차라리", "밥 위에", "꽉 눌러" 붙겠다고 선언한다. 재치 넘치는 표현이 더 처절하게 느껴진다.
 
"…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ly fry 같이 …"
(AKMU, 2023, <후라이의 꿈> 일부)
 
왜 흘러가도록 가만두지 못하는 걸까? 듀이는 1916년에 펴낸 책 <민주주의와 교육>을 다음 문장으로 시작했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이 말을 우리 사회는 왜 100년이 지나서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까? 스스로 변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물과 무생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전자가 갱신에 의하여 스스로를 존속시켜 나간다는 데 있다." (듀이, 이홍우 옮김, 2007, <민주주의와 교육>, 39쪽)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한참 띄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공부와 진학 강요하는 구시대 교육의 세련된 반복"이라고 썼다(관련기사: 고교학점제를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하는 이들에게 https://omn.kr/1sbcv). 3년이 흐른 지금, 안타깝게도 내가 뱉었던 말을 거둬들일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학교 현장과 교육계에서 '진로'를 빙자한 '진학' 요구가 더 거세지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만들어 놓은 꿈을 가지기를 강요하고 재촉하는 어른들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다, 특히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을 위한. <교실 이데아>, <치티치티 뱅뱅>, <후라이의 꿈>.

#이효리#졸업식축사#AKMU#후라이의꿈#테일러스위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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