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세월호 참사 10주기 방송-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의 4월 18일 방송이 무산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 이인건 PD가 2월 15일 KBS PD협회 협회원들에게 "(이제원 KBS 제작1본부장이 4월 방송 예정이던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를) 6월 이후에 다른 재난과 엮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시리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이 사태가 알려졌습니다.
'세월호 참사 다큐 불방' 경향·한겨레·한국 외엔 무보도
이제원 KBS 제작1본부장이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의 제작 일정 변경을 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인건 PD 입장문에 따르면, 이제원 본부장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제작 일정 변경을 지시했습니다. 이인건 PD가 "총선은 4월 10일이고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송은 8일 뒤인 4월 18일이니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이제원 본부장은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4.16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가 '세월호참사 10주기, D-100 기억 다짐 기자회견'(1월 10일)에서 밝힌 것처럼 "진실과 책임,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향한 재난참사 피해자와 시민의 연대를 '재난의 정치화'로 낙인찍고, 혐오정치의 사냥감으로 내던지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인건 PD 입장문이 경향신문 온라인 기사 <단독/KBS "총선 영향 준다"며 '세월호 다큐' 4월 방송 무산>(2월 15일 고희진 기자)을 통해 처음 알려진 2월 15일부터 19일까지 지상파3사와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 입장문이 나온 다음 날인 16일부터 20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을 살펴봤습니다.
KBS에서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의 4월 방송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언론보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향신문 3건, 한겨레 4건, 한국일보 1건의 기사에서 해당 사안을 전했습니다.
방송시간과 신문지면이 한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온라인 기사로 범위를 넓혀 2월 15일부터 19일까지 살펴봤지만 온라인에서 해당 사안을 전한 곳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MBC 2건, 경향신문 5건, 한겨레 1건이 전부입니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언론현업단체까지 문제의식을 느끼고 2월 19일 KBS 부산총국과 KBS 본관 등에서 KBS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4월 불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정작 해당 사안은 온라인에서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경향 "세월호 참사 다큐 예정대로 방영해야"
경향신문은 <KBS 제작본부 세월호 다큐 방송 미뤄라>(2월 16일 고희진 기자)에서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4월 방송 무산 위기를 전하며 "박민 사장 부임 이후 친정부 성향 방송이 됐다"는 KBS에 대한 비판, 박민 KBS 사장 부임 이후 임명된 이제원 제작본부장으로 인해 "제작자율성 침해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평가를 함께 실었습니다.
<사설/KBS '세월호 다큐 4월 불방' 지시, '총선 개입' 아닌가>(2월 16일)에서는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한국사회에서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으로 "언론이 그후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KBS에서 총선을 이유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에) 4월 불방 지시가 내려"진 것은 "다분히 '총선 개입' 시비를 부를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KBS에 "공영방송으로서 책임감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방송을 예정대로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방송 여부는 한국사회의 언론 자유가 얼마나 후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공영방송은 관영매체가 아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미디어세상/미래가 현실을 좌우?>(2월 19일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에서는 KBS가 "대통령에게 변명의 기회만 제공했다고 비판받는 프로그램(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함에도 재방송을 결정"했는데, "미래의 방송(4월 18일 세월호 특집 다큐멘터리)이 현재의 사건(4월 10일 총선)에 영향을 비칠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월호라는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고 극복하려는 프로그램은 막았다"며 "정작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주체는 누구"냐고 비판했습니다.
침묵과 외면, 세월호에 '정치' 낙인찍는 행태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언론은 제대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오보를 속보 경쟁하듯 내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4년 4월 말,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 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KBS 사장의 세월호 참사 보도 개입을 폭로했습니다. 길환영 사장은 해임된 이후에도 "세월호 사건 당시 국내 언론 대부분이 국민적 불신을 받았으므로 (부실한 재난보도는) KBS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KBS 세월호 참사 보도의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KBS를 비롯한 언론의 잘못된 세월호 참사 보도로 상처를 입고도 언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2017년 9월 공영방송 KBS와 MBC를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려놓기 위한 파업 지지발언에 나섰습니다. "파업이 성공하고 공정언론을 따낸 뒤"에도 "공부하고 분석하고 비판해야 한다"며 "기계적 중립성 뒤에 더는 숨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공영방송 KBS에서 세월호 참사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의 총선 유불리 차원에서 바라보고 '정치 문제'로 낙인찍어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 일정을 변경한 일은 보도하고 비판해야 마땅합니다.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재난의 정치화'라는 낙인을 찍는 행태일 뿐입니다.
* 모니터 대상
① 방송 : 2024년 2월 15일~19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7>
② 신문 : 2024년 2월 16일~20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③ 신문‧방송 : 2024년 2월 15일~19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세월호 KBS'로 검색된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온라인 기사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