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시 모가면 산 아래에 위치한 '조상권 도자문화재단'에서 김현 건축 도예작가를 만났다. 1월이 끝나가는 어느 추운 아침이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작업장에서 흙덩이로 기와집을 빚고 있었다. 흙을 빚어 기와집의 벽을 세우고 기와지붕 두 개를 맞대어 붙이고 작은 망치로 두드렸다. 가느다란 도구로 창문을 섬세하게 깎고 다듬었다. 그의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해 보였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작품 제작에 몰입해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예술이었다. 울림이자 가르침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현 작가가 흙으로 빚은 집, 일명 '건축도예'에 천착한 것은 예순 살이 넘었을 때였단다. 김 작가는, 당시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광주요 도자문화원'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는 도예가들을 보다가 도예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집과 건축'. 전문적인 건축 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수반돼야 하는 건축도예. 조상권 도자문화재단 원장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조 원장은 프랑스 국립미술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1963~1967)한 건축가이자 도예가이다.
하지만 도예는 무엇보다 자신이 몸으로 직접 해보면서 체득해야 하는 분야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좌충우돌했으나 김 작가는 도예를 통해 생활의 활력을 느꼈다. 그의 남다른 안목과 통찰, 열정, 치열한 노력은 작품에 그대로 담겼다. 작품은 탁월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빠르게 알아챘다. 여러 곳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이천시립박물관 기획초대전」, 「SANG갤러리 개인전」, 「하이닉스 행복미술관 초대전」,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리모쥬 한국 초대전」, 「런던 크래프트 위크(London Craft Week)」 참가 작가」, 「아산병원 갤러리 초대전」, 「에드바르트 뭉크 전」 아트 작품(뭉크의 생가) 제작 등이 그것.
김현 작가는 이천에 있는 그의 작품이 서울 나들이를 한다고 했다. 서울시 성수동에 위치한 '갤리리 스테어(Gallery Stair.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76. 서울숲역 1번 출구)'에서다.
"매일이 사랑하기 좋을 때... 복잡한 오늘 사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치유받길"
해서 지난 2월 19일 갤러리 스테어를 찾았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다. 마침 갤러리에는 '더유리아트앤컬쳐'(약칭 트앙크 Tuanc) 이유리 대표와 신필립 이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트앙크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문화예술기업이다. 전시 주제인 '러브 포레스트(Love Forest. 사랑의 숲)' 기획 취지에 대해 좀 더 들어봤다.
"매일이 사랑하기 좋을 때이지요. 그 가운데 2월과 3월은 화이트데이와 발렌타인데이가 있어서 사랑의 시즌이라고 해요. 이때 '집, 그리고 인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수공예 예술작품을 둘러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아울러 사람들은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사랑과 안식, 행복과 아픔 등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느끼죠. 집은 공간이 주는 의미도 크고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줍니다. 인형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복잡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잠시라도 위로받고 치유 받아서 마음 근육이 단단해지셨으면 하는 바람도 담았습니다."
두 분한테 전시 소개를 들은 후 갤러리를 둘러봤다. 갤러리 전시는 총 3층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층이다. "너무 예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강은규(강은) 작가의 양모펠트(니들펠트) 작품과 신송 작가의 발도르프 인형작품, 조상권 도예가 도자작품, 김현 작가의 작품이 조화롭게 전시돼 있다.
양모펠트 작품을 먼저본다. 보송보송한 양털로 만든 옷을 입고 같은 재질로 만든 나무와 새와 토끼와 노는 아이,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 등. 강은 작가는 날카로운 바늘로 부드러운 양털을 수차례 찔러서 서로 엉키게 한 후 원하는 형태의 인형을 완성했다고 한다.
귀엽고 사랑스런 발도르프 인형작품도 놓칠 수 없다. 동화같은 집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아이들, 따듯한 벽난로 앞에서 안온하게 쉬는 아이 등. 이 인형은 신송 작가가 손수 바느질하여 제작했다. 가만히 보니 인형한테서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인형을 좋아하는 이유에 공감이 간다.
2층에 올라가면 김현 작가의 건축 도예작품이 유럽의 이야기 속으로 안내한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쉽지 않던 시절, 김 작가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만나거나 문학책에 등장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과 집, 정원이 작품으로 재탄생 돼 있다. 헨젤과 그레텔이 거닌 유럽의 숲속마을,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올드 아커 교회(Old Aker Church), 브뤼겐의 목조건물을 도자로 입체화한 작품,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억하며 제작한 오스트리아 전통 농가와 아름다운 정원, 윌리엄 모리스의 집, 윌리엄 셰익스피어 부인인 앤 해서웨이가 살았던 농가 작품 등.
작품은 다양한 높이로 설치돼 있다. 서서 봐도 좋고 허리를 숙이고 자세를 낮추거나 앉아서 봐도 좋다. 아이와 함께 보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동화적 상상력과 영감은 덤처럼 찾아올 듯하다.
3층에 가면 놀라움에 감탄사가 나온다. 조선 후기 지방 사대부 가옥(기와집)의 형태를 원형 그대로 재현한 도자한옥이 기다린다. 한옥은 선조의 철학, 생활의 지혜, 전문 건축 지식, 우리나라 자연과 풍토 등이 담긴 종합예술이다.
전시된 한옥작품 내부는 사당, 사랑채, 안채, 행랑채, 정자 등 여러 채의 건물이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배치돼 있다. 여백의 미학과 지혜가 있는 정갈한 마당도 아름답다. 한옥도자 작품은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여 관광상품화 하면 좋겠다.
조상권 원장의 작품도 탐난다. 각진 듯 하나 둥근 주전자, 우리나라 문화유산 가운데 조형미의 정수라 불리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티브로 한, 도자 잔 탑 등.
각 층마다 작가 4명의 작품이 주연과 조연이 되다가 어우러져 사랑의 숲을 이룬다.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서 하나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 등에 대해 생각한다. 예술작품은 치유와 사유하게 하는 힘이 있다.
작품 수는 총 350여 점. 이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판매도 한단다. 전시는 3월 1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