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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녹즙 배달원 강정민> 앞표지
책 <녹즙 배달원 강정민> 앞표지 ⓒ 한겨레출판

<녹즙 배달원 강정민>은 17살에 <네 멋대로 해라>를 시작으로 에세이스트로 활동해온 김현진 작가가 쓴 소설이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일러스트레이터 강정민이 퇴사 후 녹즙 배달원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내용의 이 소설은 주인공 강정민뿐 아니라 현실적인 주변 인물들이 등장해 몰입감을 높인다.

강정민은 미술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여성 캐릭터를 "더 섹시하게" 그리라는 스타트업 게임업체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나온다. 그 동안 일하며 어머니에게 맡겨놓은 월급은 오빠의 결혼자금으로 이미 다 없어지고 난 뒤다.

정민은 우연히 녹즙 배달원 구인 전단지를 발견하고  최초의 "주부가 아닌 녹즙 배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녹즙 배달원이라는 일만 빼면 정민은 특이할 것 없는 이 시대의 청춘이다. 야근수당 없이 일 하는 스타트업의 직원이었고, 아들있는 집의 "살림 밑천"인 딸이며 지금은 무엇하나 보장되지 않는 배달 노동자이다.

녹즙 배달원은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배달이 2, 판촉이 8이라고 할 정도로 스스로 신규 고객을 유치해야만 하는 일이다. 정민이 주로 배달하는 대기업 건물은 정민의 녹즙을 포함해 총 3개 회사의 배달원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다른 회사의 고객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어린 정민은 다른 녹즙 여사님에게 고객을 빼앗기기 일쑤다. 녹즙 배달원인 정민에게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기도 하고 젊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한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민은 고객들의 하대나 집적거림, 성희롱까지 참아가며 꿋꿋이 녹즙을 배달한다.

강정민에게 술이란

대학 때 술을 시작한 이후로 술은 줄곧 정민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모두 술이 정민을 위로해주었다. 그 결과 알콜의존증에 걸려 치료를 위해 스스로 병원을 다니고 있다.

술을 끊기 위해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술이 아니면 일상을 견뎌내기가 어려운 정민은 날이 갈수록 술이 세진다. 가족과도 연을 끊고 혼자 살아가는 정민에게 친한 친구 민주와 술이 유일한 행복이다. 하지만 정민이 의지하고 있는 친구 '술'이 알고보면 정민을 좀먹고 있다. 술 먹을 일이 자꾸만 생기는 삶은 지속되고 국밥집 할머니 말처럼 "술이 안먹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술은 의지해야 할 친구가 아니라 정민의 현실과 꿈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도 같다. 또 다른 친구 준희의 말처럼 "삶은 유예기간을 주지 않는다." 녹즙 배달을 하며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믿는 정민의 진짜 인생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 된 것이다. 

방황하는 청년의 성장기는 오래 전부터 꾸준히 쓰여 온 문학 소재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청년이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이 시대의 사회적 요인들을 소설 속에 현실적으로 잘 녹여냈다. 몇 해 전 유행했던 "흙수저"라는 신조어 뒤에 숨겨진 노동환경, 성차별, 계급차이 등의 문제들이 청년들이 꿈을 향해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소설 속에서 결국 상황을 타개하고 나아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정민 자신이다. 술을 끊고 웹툰을 그리기 시작하며 스스로의 상황을 헤쳐 나간다. 부디 현실 속 강정민들에게도 그런 힘이 생기기를, 힘낼 수 있는 사회적 제도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은이), 한겨레출판(2021)


#녹즙배달원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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