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은 전두환이다. 작년 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보안사령관 전두광(전두환을 모티브)과 그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장태완을 모티브)의 극한 대립을 다뤘다. 흥행 돌풍을 이어간 <서울의 봄>은 관객 수 13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흥행 순위 6위에 빛나는 기록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뀐 그날, 일촉즉발의 9시간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의 탐욕과 악의(惡意)에 분개했다. MZ세대를 필두로 '심박수 인증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졌다. 영화를 보는 동안 치솟은 심박수 수치를 소셜 미디어에 올려 자신이 얼마만큼 '빡쳤는지' 인증하는 것이다. 그만큼 전두광의, 아니 전두환의 군사반란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열불나는 일이었다.
영화관을 나선 후 일부 관객들의 심박수는 서서히 안정을 찾았겠지만, 쿠데타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이 저지른 '국가 폭력'과 그로 인해 얼룩진 우리네 헌대사를 떠올린 이들의 심박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영화의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아 전두환에 대해 좀더 공부해보길 원한다면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이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저자 정아은은 이렇게 묻는다.
"국민을 살상하고 불법적으로 집권한 전두환이 어떻게 7년 동안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권좌에서 내려온 뒤에도 제대로 된 단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까?" (p. 13)
2021년 11월 23일, 매우 찜찜한 점 하나가 찍혔다. 그날 아흔 한 살의 나이의 전두환이 자택에서 사망했다. 어떻게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칼을 휘둘렀던 그가 그토록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삶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마침표였겠으나, 그가 남긴 상흔이 너무 크고 깊어서 쉼표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았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저자가 "왜 (전두환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끌어안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답이다. 정아은은 이 책을 "전두환이라는 특별한 개인의 내재적 관점과 그가 속해 있던 시대적 상황이라는 외재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려는 시도의 산물"(p. 14)이라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전두환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소설가라는 것이다. 소설가는 본래 인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야기꾼이다. 그들이 인물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캐릭터를 잘 이해하는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전두환을 다룬 책들이 여럿 있었지만, 소설가의 언어로 분해되고, 분석된 경우는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모던하트>로 한겨레문학상(제18회)을 수상한 정아은은 몰입력 있는 문체로 '전두환이라는 특별한 개인'을 철저히 해부한다. 전두환이 박정희 사후 불안정한 정국에서 어떻게 최고 지도자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설명하고, 그의 영광과 모순, 몰락의 과정을 규명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설득력을 갖춘 입증에 감탄을 하게 된다. 역시 소설가답게 치밀하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거의 인생 전반기의 세속적 영광, 정통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냈던 대통령 재임 기간의 모순적인 상황, 사과하지 않은 채 끝없이 국민에게 지탄받았던 33년간의 길고 기나긴 몰락은 모두 그의 일정한 기질에서 연유했다고. 전두환의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 특별한 가벼움이라고. (p. 101)
책의 1부 '영광(1931-1980)'에는 "전두환의 기질적인 씨앗이 싹튼 그의 성장기부터" 전두환이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로 집권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정아은은 전두환이 쓴 회고록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전두환의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본질은 그 특별한 가벼움"이라는 통찰력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깃털보다 가벼운 전두환!
책의 2부 '모순(1981-1987)'은 '대통령' 전두환의 집권기, 1980년대에 대한 종합적 분석이다. 1980년대는 누군가에겐 '단군 이래 최대 호황'으로 추억되는 시기이기도 하고, 혹자에겐 고문과 억압, 비민주적 통치의 시기로 기억되기도 한다. 또, 전두환 개인을 놓고 봐도 '좋은 남편'과 '잔혹한 학살자'라는 이중성이 포착된다. 정아은은 이 모순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3부 '몰락(1988-2021)'은 전두환이 대통령직을 내려놓은 후부터 사망한 날까지의 삶을 되짚는다. 정아은은 대한민국 사회가 왜 퇴임 이후에도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했는지, 전두환이 권좌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정원이 딸린 광활한 저택에서 자유롭게, 여유롭게, 평온하게 살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물론 처벌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단편적이고 자의적"이었다고 통탄한다.
"반성 없이 살다 간 전두환의 33년이 남긴 후과는 그러나 후손에게만 돌아간 것이 아니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전두환이 반성하지 않은 채 삼십여 년을 살다 갔기에, 국가 공동체 곳곳에 그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았다." (p. 313)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한 수많은 이유
정아은은 전두환을 무릎 꿇리지 못한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지정학적, 개인적 이유를 추적했고, 그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전두환이라는 명확한 '악'을 단죄하는 일에, 누구도 사익을 희생하며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라 쓰고 있다. 뼈아픈 말이다. 정아은과 함께 현대사의 중요 지점을 차분히 짚어가다보면 저 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두환의 33년이 남긴 후과는 무엇일까.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한 여파는 대한민국 사회에 어떤 상흔을 남겼을까. 혹자는 '이제 전두환이 죽었으니 끝난 거 아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그의 육신은 소멸했지만, '전두환'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정아은은 전두환이 끼친 치명적인 불행은 "국가 공동체 전체에 끼친 영향"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정아은은 "범죄자가 받아 마땅한 죄가를 받았다면 걷혀서 사라졌을 검은 천이 사회 전체에 묵직하게 드러워"졌다며, "제대로 단죄되지 않은 악은 결국 사회에 유령처럼 맴돌며 양극단에서 강력한 흑백논리가 먹히게 만든다"(p. 313)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뉘우치지 않고 간 거악의 존재"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고 통탄함을 내비친다.
도대체 그것들은 무엇인가. 이를테면 "상황을 있었던 그대로 들여다보고 정확하고도 면밀하게 각각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 "과거를 현재와 구분해 과거를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갈 토대로 삼을 수 있게끔 방향을 설정하는 법", "누군가를 '절대 악'으로 설정해 희생양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법"(p. 313) 같은 것 말이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이 양극단으로 나뉘어 격렬히 갈등하고, 그로부터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 채 부유하고, 도돌이표처럼 같은 우를 계속해서 범하는 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모두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두환을 다시 읽어야 한다. 망령처럼 떠도는 전두환을 완전히 떠나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