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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사회, 문화, 역사, 설화와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스토리텔링으로 간략히 엮어갑니다. [기자말]
인화초중고등학교 교실 풍경
 인화초중고등학교 교실 풍경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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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산리에 '할머니 학교'로 불리는 평생교육시설 학력인정 인화초중고등학교(교장 김태수)에서 지난 27일 특별한 졸업식이 있었다. 초등학교(14회) 8명, 중학교(16회) 18명과 고등학교(16회) 19명의 총 45명(남 9명, 여 36명) 졸업생이 자랑스러운 졸업장을 받았다. 어린 시절 학교로 향하지 못했던 갖가지 사연들과 아쉬움을 삭여내고 각급 학교의 교육 과정을 마친 당당한 졸업생들이었다. 

학사모를 쓰고 졸업 가운을 입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한 분씩 느린 거동으로 주인공의 자리로 나와서, 교장 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여느 학교의 졸업식에는 학부모들이 꽃다발을 들고 자애롭게 축하해 주는데, 이곳 졸업식은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주들이 밝은 표정으로 어르신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이 학교는 평생교육법에 근거한 평생교육시설로서 1년에 3학기를 이수하는 학사과정으로 초등학교가 4년제로 2학급, 중학교가 2년제로 2학급, 고등학교가 2년제로 2학급인 학교이다. 이 학교 초중고 전체 재학생(2월 26일 현재)은 121명(남 20명, 여 101명)이며, 재학생의 평균 연령은 70세이다. 

이 학교는 진안, 장수, 임실, 남원, 순창, 곡성과 구례 등 지역에서 유일한 평생교육시설 학력인정 실버 학교이다. 50여 년 전 시골 마을에서 편지나 민원서류 등을 도맡아서 대필해 주던 한 초등학교 교사의 꿈은 야학당 운영이었다. 그 아버지의 꿈을 꼭 이루겠다는 그의 어린 아들(현재 인화초중고등학교 이사장 이진로)의 다짐이 만학도 학업의 요람인 이 학교의 초석이 되었다.

구부정한 허리와 더딘 걸음, 그럼에도 학교선 모두 소년과 소녀
 
인화초중고등학교 졸업식장
 인화초중고등학교 졸업식장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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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풍경은 농촌의 들녘에 오래전 초등학교였던 추억의 운동장, 시간과 세월이 멈춘 듯한 건물로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만학도들이 이 학교로 오는 길이 그렇게 멀었구나 싶다. 학교 갈 나이를 놓치기를 반백 년, 청춘을 다 보내고서야 만학도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길인 학교 가는 길을 찾아서 구부정한 허리와 더딘 걸음으로 학교 문을 열며 입학한다. 

졸업생들은 몇십 년의 흘러간 세월 탓에 기억력과 몸의 기력도 젊은 시절 같지 않았지만, 이 학교에서 다들 고맙고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입을 모은다. 한 교실에서 동급생인 수십 년의 나이 차이가 났으나 함께 웃으며 또래처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학교에서는 꿈 많던 시절의 소년과 소녀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들은 함께 손잡고 소풍도 가고 졸업 여행도 다녀왔단다. 웃음을 잃고 살아왔던 평생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공부하며 교실에서 마음껏 웃어도 보았다고. 

이제 졸업장을 받으면서, 깨끗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친구를 보며 골목에 숨어서 뜨거운 눈물을 훔치던 수십 년 전 옛날의 자신을 졸업생들은 회상하였다. 졸업생들은 언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겨울을 이겨내고 새싹이 돋는 푸른 냉이처럼 자기 자신이 대견스러웠을 것이다.

눈물 겨운 인생 이야기, 일만 하다 60년 만에 처음 간 졸업식
 
인화중학교 졸업생 졸업장 수여 후 감사의 인사
 인화중학교 졸업생 졸업장 수여 후 감사의 인사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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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성일선(73세)씨는 어린 시절에 6남매의 맏딸로서 나이 차가 있는 동생들을 업어서 키우다 보니 학교 다닐 나이를 넘겼다. 결혼해서는 아들 셋을 키우며 어려운 살림에 전주에서 가게를 평생 운영하였는데, 하루라도 가게 문을 닫으면 큰일나는 줄 알았단다.

성일선씨는 아들 셋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10번이 넘는 여러 학교 졸업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세 아들이 차례로 군대를 갈 때도 식당 앞에서 잘 다녀오라며 배웅만 했을 뿐이었다고. 그렇게 일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 이제 처음으로 참여한 졸업식이 60년 늦은 자기 자신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고, 중학교에 진학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이임순(80세)씨는 8남매 중에 넷째였다. 당시 가정 형편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학교에 못 간 것은 '아들은 오래 가르쳐도 딸은 스스로 이름만 쓸 줄 알면 된다'는 어른들의 논리였단다. 어린 임순씨는 울며불며 학교 길로 내달렸지만, 책 보따리가 부엌 아궁이에 몇 번이고 던져넣어졌다고. 집에서 동생들 키우면서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았고 초등학교마저 어렵게 졸업하였다. 

이후 결혼하여 두 아들과 두 딸을 키우면서 생계를 도맡았고, 부산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청춘을 다 보내고 남원으로 귀촌하였다. 그 뒤 60년 만에 이곳 중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남편분이 고향을 그리워하여 경남 양산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임순씨는 홀로 남원 시내에 거처를 마련하여 학교를 다녔고 전학년 개근으로 졸업하였으며, 전남과학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하여 오는 3월부터는 대학생이 된다.
 
인화고등학교 졸업생 이임순 씨와 가족 기념사진
 인화고등학교 졸업생 이임순 씨와 가족 기념사진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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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의 졸업식은 단지 졸업생들 한 명 한 명만의 졸업이 아니다. 우리나라 현대 역사의 한 장면에서 가족에 헌신하며 살아온 어머니 세대의 졸업식이며, 한국 사회의 교육과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의 졸업생들은 학령 아동의 의무교육 시기를 놓쳐가며, 가정에서 가족을 뒷받침하면서 한국 사회의 오늘이 있게 한 주인공들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아직도 스스로 경제적 안정으로 취업 등이 필요하여, 이 학교에 재학하다가도 일하느라 학업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사랑과 헌신으로 공헌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에 우리 사회의 관심과 교육 예산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이 학교에는 전설 같은 등굣길의 일화가 전해오는데, 과거에 학교 가고 싶었던 평생의 간절한 마음과 현재 학교 가는 길의 당당함이 잘 드러나 있다. 논어 이인편의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고사성어처럼 언젠가 들은 이 짧은 일화가 마음에 절실히 다가온다. 

동네 할머니들이 나더러 묻는다. 
그 나이에 학교는 무엇하러 다니느냐?
졸업장이 없어 이력서 쓸 용기가 없어서, 평생 취직 한 번 못 해 봤다. 
저승 가면 이력서 내고 취직하려 학교 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7년 전에 처음 이곳 초등학교에 입학(70년 늦은 입학)하여 중학교를 거쳐서 현재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경순(85세)씨이다. 하루 5교시의 학교 수업 시간마다 두 번의 "차려! 선생님께 경례!" 구호는 언제나 김경순씨의 역할인데, 그 씩씩한 목소리는 교실을 생동감으로 가득 채운다. 내년 2월에 이 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학교 역사의 한 편이 될 듯하다.
 
만학도 학업의 요람, 인화초중고등학교
 만학도 학업의 요람, 인화초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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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력인정인화초중고등학교, #만학도졸업식, #평생교육시설학력인정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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