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은 대구지역 8개 고교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 시위인 '2.28민주운동'을 벌인 지 64년이 된 날이었다.
2.28민주운동 64주년을 맞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기념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올해 한 총리의 기념사는 지난해와 조금 달랐다. 특히 빠진 내용이 눈에 띄었다. 바로 2.28민주운동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했다'는 부분이다.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가 되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 영화를 관람하고,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다시 이슈가 있는 와중에 정부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에 변화를 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독재 항거' 빠진 2.28민주운동 기념사
올해 기념사와 지난해 기념사 모두 2.28민주운동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향한 첫걸음"(2024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역사의 현장"(2023년)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2.28민주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대전의 3.8민주의거와 마산의 3.15의거로 이어지고, 4.19혁명으로 민주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2024년) "2.28민주운동은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운동으로 3.15의거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2023년)고 동일하게 강조했다.
지난해 기념사의 경우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독재정권의 불의에 항거하는 200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있었다"면서 "정권의 독재와 폭압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학생들의 강력한 의지와 대구시민의 기백을 꺾을 수 없었다"고 2.28민주운동의 성격을 독재정권에 항거한 사건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올해 기념사는 "당시 정권의 탄압에 맞서서 여덟 개 고등학교,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일어섰다.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뜨거운 외침에 수많은 시민이 함께했다"고 서술할 뿐 '독재정권에 항거했다'는 내용이 빠졌다. 또한 2.28민주운동 자체에 대한 설명도 이것이 전부였다. 반면 지난해 기념사는 2.28민주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했다.
결국,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일요일 등교'에 맞서,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항거했다. 학생들은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할 것'을 밝히며, 부당한 탄압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많은 시민이 함께하면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유와 정의의 바람이 되었다.
또한 2.28 정신에 대해서도 올해 기념사는 "정부도 2.28 정신을 이어받아 공정과 상식에 기반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온 힘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했을 뿐 그 의미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기념사에서는 "2.28은 바로 '대구·경북의 정신'이다. 그것은 불의와 폭력에 굴하지 않으면서 자유와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도 "독재에 항거하며 분연히 일어섰다"
민주화 이후 2.28 민주운동에 '독재 항거' 언급 안 한 대통령은 박근혜뿐
2.28민주운동은 2018년 법정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기념식 취소를 제외하고 매년 대통령 혹은 총리가 기념사를 발표해왔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대구의 자랑스러운 2.28 민주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처음 치러지는 기념식"이라며 2.28민주운동에 대해 "대한민국이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첫 번째 역사를 쓰는 순간"이라고 평했다.
2022년 김부겸 전 국무총리, 2021년 정세균 전 국무총리, 2019년 이낙연 전 국무총리 또한 기념사에서 2.28민주운동을 두고 각각 "독재와 불의에 항거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운동'" "독재와 부정부패에 맨몸으로 맞서며 항거했다" "그렇게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등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한 점을 명확히 했다.
법정 국가기념일 지정 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기념사에서 "2.28 민주 의거는 당시 어린 학생들이 대구시민들의 지지 속에 독재와 불의에 온몸으로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하였던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민주화운동"(2000년) "43년 전 오늘, 대구는 자유당 정권의 독재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다"(2003년)고 하며 독재에 맞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당 정부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2010년 기념사에서 "1960년 당시 독재에 항거하며 분연히 일어선 모든 분의 의기와 희생에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꼭 50년 전 오늘, 대구는 반독재 운동의 중심이었다"면서 "50년 전 대구에서 뿌려진 반독재의 씨앗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의 거목으로 우뚝섰다"고 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2.28민주운동 기념사를 발표했으나 한 번도 2.28민주운동에 대해 독재정권에 항거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기념사에서 2.28민주운동에 대해 "55년 전 뜨거운 열정으로 정의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2.28 민주정신"(2015년) "우리 역사의 자랑스러운 의거"(2016년)라고만 언급했다. 2013년과 2014년 기념사에서는 2.28민주운동이 어떤 사건이었는지 자체를 거론하지 않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