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직원들은 밤 12시까지,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일만 했죠. 어렵게 공사를 마무리했는데…"
A사 조아무개 전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지난 18년 동안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시설 공사를 해왔다"면서 "이미 작년 3월에 끝난 공사에 대해 물가상승이나 돌발적인 공사 등에 대한 공사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와 함께 나온 서아무개 사업전략 자문위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재벌 대기업과 대형 건설사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 위원은 "대기업의 횡포와 갑질로 견실하게 성장해 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파산위기로 내몰리면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에 설립된 A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의 핵심설비인 클린룸 설계를 비롯한 각종 시설을 전문적으로 맡아온 업체다. 관련 특허 기술도 갖고 있다. 지난 2022년 매출 1200여억원에 영업이익 32여억원, 당기 순이익도 17여억원을 기록했다. 창사이래 사상 최대의 매출과 이익을 올렸다.
파산 위기 몰린 중견건설업체
하지만 지난해부터 회사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영업환경도 급격히 악화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포스코 포항공장의 침수 등으로 원자재 값이 폭등했다. 각종 자재 뿐 아니라 인건비 등 물가 상승과 고금리 등은 이들에게 직격탄으로 돌아왔다.
조 전무는 "원자재 값을 비롯해 물가가 크게 올랐지만 이미 진행되고 있는 대부분 공사를 기한에 맞춰 완료했다"면서 "특히 스테인리스 배관 자재의 경우 공사 계약 시점인 2021년에 비해 100%나 올랐다"고 설명했다.
A사의 주요 고객은 LG디스플레이와 GS건설 등이다. 특히 지난 2005년 경기도 파주에 국내 최대규모의 LCD 산업단지에 LG 디스플레이가 입주하면서, 주요 공장의 시설공사를 도맡아 해왔다. 실제 A사의 주요 공사실적을 보면, LG디스플레이 구미사업장뿐 아니라 파주 공장 설립 때부터 참여했고 지난 2015년에는 중국 광저우 공장 시설공사도 맡았다.
A사는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여 걸쳐 LG디스플레이의 신 공장 P9과 P10의 시설공사를 진행했으며, 작년 상반기에 마무리 했다. P10 공장은 LG디스플레이의 단일 패널공장으로는 사상최대 규모로, 10조 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며, 대형 TV뿐 아니라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모바일용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서 위원은 "P9과 P10 현장의 경우 작년 7월경에 공사가 마무리돼 정상 가동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미 작년 3월에 시공사에 물가상승과 공사 기간중에 발생한 추가 공사비에 대한 정산을 요청했으나, 각종 자료요구 등으로 시간만 끌다가 뒤늦게 비용 지급을 사실상 거부했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 "공정위 조정 결과 보고 판단"
LG디스플레이쪽은 시공사와의 정상적인 계약에 따라 파주 신공장 건설 비용을 지급처리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소비부진 등으로 당초 계획했던 수준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공장 건설 과정에서 시공사와 하도급업체 사이의 공사비 분쟁에 우리가 직접 개입할 여지는 크게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현재 공정위에서 관련 내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정 결과에 따라 향후 시공사와 협의할 부분이 발생한다면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라고 전했다.
A사가 물가상승과 추가 공사비로 요구하고 있는 금액은 모두 107여억원. 조아무개 부사장은 지난달 29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시공사쪽에선 'LG디스플레이로부터 정산을 받으려면 제3자의 객관적인 비용 점검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면서 "내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외부 기관에 비용을 들여가며, 정산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뒤늦게 시공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정을 받아보자고 요구해, 작년 8월에 공정거래조정원에 (조정) 신청을 했다"면서 "그 사이 양쪽 입장만 확인한 채 다시 6개월이 지났다"고 토로했다.
시공사인 B사도 LG디스플레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사비를 지급했다는 것. B사가 공정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사 기간동안 매월 A사의 신청에 따라 비용을 지급했고, 물가변동에 따른 대금 조정 신청을 하지 않는 한 공사 완료 및 최종 정산까지 입찰 때 확정된 단가는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A사가 물가 상승 분에 대한 조정 신청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것.
대신 경영난을 호소하는 A사가 지원금을 요구해 와, 지난해 9월 '동반성장' 취지로 약 20억 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B사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조정과정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GS건설의 계열사로 LG쪽도 40% 지분을 갖고 있다. B사는 주로 플랜트 건설을 하고 있으며, 지난 2022년 매출액 만 2조740억원, 영업이익도 1366억원을 기록했다. LG디스플레이와 LG 화학 등의 LG 계열사 일감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GS건설 계열사인 B사 "적접하게 공사비 지급" 밝혔지만...
이에 A사 서 위원은 "처음 입찰 때의 물량별 단가의 경우 확정된 것이 아니다"면서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설계 변경이 진행됐고, 아직까지 공사에 대한 최종 정산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시공사에서 공사비 관련 내용을 취합하고, LG 디스플레이 쪽에서 해당 물량과 시공 검증을 마치는 데까지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린다"면서 "이번 공사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실제 공사가 끝난 지 1년여 다 돼 간다"면서 "시공사와 발주회사인 LG디스플레이가 비용을 지급했다고 하면, 무슨 이유로 계약 만료를 1년씩 미루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위원은 "디스플레이 공장과 같은 특수한 현장의 경우, 여러가지 설계변경에 따른 물량 변화와 추가 공사비 발생 여지가 있어 공사를 진행하면서 확정하기 어렵다"면서, "최종 준공 단계에서 전체 공사에 대한 최종 검증을 (하기) 위해 실제 공사 완료일과 상관없이 부득이하게 준공일이 늘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같은 회사 조 부사장은 "18년동안 디스플레이 공장 설립과정에서 자금운용에서 힘든때도 있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견뎌왔다"면서 "이번엔 대내외 악재가 겹친 측면도 있지만, 대기업들이 너무 자신들만의 이익만 생각하다보니 정작 협력업체들만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과 2시간여 넘게 이야기를 마치고 난후, 자리를 일어나는 기자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작년 하반기 이후로 임원들은 연봉 50%를 삭감하고, 직원들도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00여명에 달하던 직원도 60여명으로 줄었고요.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미래먹거리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대규모 투자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소업체들은 아직도 대기업의 갑질에 힘겹게 버팁니다. 우리처럼 기술력있는 업체들도 이 정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