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나고 농부의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다음 달 파종할 벼 품종들을 확인하고 겨울을 견뎌낸 논의 상태를 살피며 올해 농사를 머릿속에 부지런히 그려본다.
올해도 지금까지 고수해 온 원칙을 지키며 제초제 한 방울 뿌리지 않는 유기농 벼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달라진 점이라면 큰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 년 농사의 전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동지가 생긴다는 일은 참 기쁜 일이다.
농사를 짓는 것이 단순한 반복이 아님을 깨닫고 유기농 농사를 지켜가는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지난달 27일 농부시장 마르쉐가 주최하고 파타고니아가 후원하는 '지구농부포럼' 행사에 참석했었다.
지구 환경과 생태다양성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소농들의 이야기와 깊은 고민이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가기를 회고해본다.
큰 아들은 몇 년 전부터 환경을 위해 비즈니스를 한다는 파타고니아의 방식에 깊이 감명 받고 파타고니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큐, 도서 등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다. 아버지인 내가 19년째 유기농으로 쌀농사를 짓는 철학을 곁에서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파타고니아의 철학을 담고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면서 유기농, 친환경 농업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이 기업의 철학과 활동 사례를 짧게나마 지구농부포럼 행사 개회식에서 들으며 나 또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건강한 기업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애쓰는 소농과 사회혁신 커뮤니티를 후원하는 파타고니아가 이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개회식 후 포럼의 1부에서는 국제적으로 농생태학을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는 미겔 알티에리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농생태학의 이론적 배경과 개념을 설명한 후 '생태적 부채와 기후 불평등의 위기 앞에서 기후변화, 식량산업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그는 전통 농부의 지식을 기반으로 환경 친화적인 농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규모 농업을 일구는 소농의 생태계가 활성화 되면 식량 주권과 지속가능성을 지켜질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소농들과 함께 연대하는 건강한 소비자들의 커뮤니티,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생태학 육성을 뒷받침해준 제도 등의 정보를 통해 우리나라의 유기농업을 비롯한 친환경 생태농업 방향성과 정부 정책의 개선점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발표는 이시도르 지속가능연구소의 유병덕 소장이 '생태농업실천농가의 온실가스 배출 및 생물다양성 실태조사'에 관해 발표를 했다. '기후 변화 대응과 생물 다양성을 위해 어떤 농업 방식이 적합한가?'라는 가설에서 시작된 이번 연구의 종합적인 결과는 생태농가의 경우 생물다양성에서는 우월하나 온실가스 배출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태농업의 실천이 탄소, 메탄가스 배출과 같은 대한 정량적인 데이터 정보를 넘어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생태계 수호자로서의 역할과 선순환의 효과까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과 보다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남긴 연구였다.
지역별 토양의 특성, 유기물 함량, 날씨, 친환경 생태농업을 실천한 현장 기간과 농사법 등을 좀 더 오랜 기간 비교 분석하며, 긴 호흡으로 데이터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연구로 발전해야 이 연구의 결과가 더 유의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농업 연구 방식이 현장의 농민들과 함께 연대하고 소통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수행될 있길, 그래서 더 많은 농민들이 생태농업을 실천하고 소비자들이 그 당위성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길 꿈꿔본다.
점심 식사 후 2부에서는 농촌진흥청 유기농업과에서 한국재생유기농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발표와 지구농부로서 삶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 <농사가 재미있어서>라는 책으로 알고 있었던 김신범∙안정화 농부의 '무경운 농사 7년 기록을 통해 보는 소규모 자연농 텃밭운영'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이고 흥미로웠다.
도시인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이 농촌이라는 낯선 환경에 천천히 적응하며, 다양한 작물들의 특징과 토양 환경을 배우고 기록한 과정이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젊은 시절 나도 수첩 가득 빼곡하게 일기를 쓰고, 연구 노트를 작성했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익숙함에 놓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반성해 볼 수 있었다.
계절에 맞는 작물을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다시 씨앗을 받고 농사를 이어가는 자연농을 실천하는 두 사람이야말로 오늘 1부 발표에서 소개한 농생태학을 삶으로 보여주는 농부였다. 좋은 소농들의 사례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소개되길 그래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그 길을 동행할 수 있길 응원한다.
하루 종일 포럼에서 빛나는 눈빛으로 강연 발표자들의 내용을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젊은 날 심포지움과 학회를 부지런히 다니며 고군분투했던 나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유익한 미생물을 연구하기 위해 전국의 농장을 쫓아다니며 농부들의 노하우를 열심히 듣고, 농장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농작물을 채취해와 연구실에서 원인을 찾으며 밤을 새는 것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생태농업을 지향하는 우리 회사의 철학을 세우고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다. 지구농부포럼에서 듣고 배운 것들이 아들에게도 좋은 자양분이 되었으리라.
행사장을 나오기 전, 아들은 파타고니아 김광현 부장님께 달려가 직접 챙겨온 파타고니아 책에 사인도 받고 인사를 나누며 행복해했다. 지향점이 같은 사람을 만날 때 얻게 되는 힘과 에너지가 큰 성장 동력이 되어 지구의 회복력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농부의 고단한 여정을 위로해 줄 것이다. 귀한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신 농부시장 마르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다음에 더 반가울 만남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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