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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 등 인기만화를 그린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3월 1일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온라인상에서 어린 시절 그의 만화를 본 추억을 얘기했죠.

<드래곤볼> 연재가 끝난 지 몇 년 뒤인 1997년에 태어난 저도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추억을 넘어 제 삶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처음 본 만화가 바로 <드래곤볼>이었고 제 돈으로 처음 사 본 책도 <드래곤볼>이었습니다. 팬카페에서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작품이 끝난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2013년에 20년 만에 새로운 극장판이 개봉했을 때는 없는 용돈으로 다섯 번 정도 영화를 봤습니다. 시들었던 드래곤볼 팬덤도 영화를 계기로 부흥기에 올랐습니다.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관련 정보들, 팬아트들을 보며 다른 팬들과 여러 이야기꽃을 피우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너희가 이 만화를 어떻게 알아"라는 질문이 멈추지 않을 작품, <드래곤볼>
  
당시 학생들이 하교한 후 그려준 그림.
 당시 학생들이 하교한 후 그려준 그림.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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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와 비슷한 또래의 팬들은 영화 한 편으로 이럴 정도인데, 연재 당시 팬들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원작을 감상했겠냐며 내심 원작을 본 세대를 부러워도 했지요. 그 뒤 또 다른 극장판과 원작을 잇는 후속작이 등장하면서 저보다 어린 세대에서도 <드래곤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재작년에 모교인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 운동회날 어느 반에서 다 같이 입을 옷으로 <드래곤볼>의 도복을 입고 다니길래 놀라서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만화를 어떻게 아냐고 말이죠. 그러더니 후속작을 봤다고 얘길하더군요. 개인적으로 후속작에 여러 부분에 비판적인 저였지만 그날만큼은 후속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됐습니다.

그날 도복을 입은 몇몇 학생들과 함께 점심시간 내내 <드래곤볼> 얘기를 나누면서 참 많이 웃고 행복했습니다. 학생들이 하교한 뒤 도복을 입은 반 칠판에 도복을 입은 손오공의 그림을 그려놓고 다음날 등교하니 해당 반 담임선생님께서 아이들이 칠판 그림을 못 지우게 성화라며 그린 당사자가 지워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이렇듯 고인의 작품은 세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이제 고인은 떠났지만 그럼에도 고인의 작품을 즐기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나겠지요. 제가 그러했듯, 제 모교 후배들이 그러했듯 말입니다. 

"당신의 작품이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만큼은 원작을 초월했다는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GT>는 세상을 떠난 오공을 향해 이렇게 읊조립니다. "오공이 있어서 즐거웠다"고. 저도 고인을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만큼은 원작을 초월했다는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GT>는 세상을 떠난 오공을 향해 이렇게 읊조립니다. "오공이 있어서 즐거웠다"고. 저도 고인을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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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마음이 힘든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날 하루는 마음 한 구석이 계속 허전했습니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스스로 제 인생의 암흑기라고 칭할 정도로 마음이 아픈 나날이었습니다.

당시 그래도 안 좋은 생각을 떠오르지 않게 해 준 거의 유일한 수단이 바로 <드래곤볼>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승리하는 주인공 손오공의 모습은 제게 있어 영웅 그 자체였습니다. 수십 번을 읽으니 원작을 잇는 나만의 후속작을 그려보고 싶어 많이도 따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와 당시를 돌이켜보면 언젠가 내가 드래곤볼 팬픽 만화를 그리겠다는 원동력으로 버텼던 것도 같습니다.

악당 셀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손오공은 승리 이후 자신을 드래곤볼로 살리려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지구에 있어서 계속해서 악당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자신은 저승의 삶을 즐길 테니 살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죠.

많은 이들이 오공의 천진난만함 때문에 놓치고 있는 사실이지만 오공은 애당초 지구의 신이 후계자로 점찍어둔 인물이었죠. 거북선인이라 불리는 스승 무천도사로부터 거북선류를 사사한 만큼 마치 신선과 같이 생사를 초월하고 인간을 넘어선 도인으로서의 오공의 면모를 그때 처음 느꼈습니다. 해당 장면을 그린 고인도 이제는 내세에서 편안히 즐기면서 지내시길 마음 깊이 바랄 뿐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차면서 먹고 살아가는데 바빠 <드래곤볼>의 후속작을 그리겠다는 나름 당찬 각오도 어린 날의 객기로 치부한 채 살아왔습니다. 가끔 후속작을 몰아서 보고 극장판이 나올 때마다 극장을 찾았을 뿐이었죠. 그런데 고인이 떠난 소식을 접하고나서야 얼마나 그의 작품이 제게 큰 영향을 끼쳤고 마음속 한켠에 저를 지탱해주는 뿌리로 남아있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만큼은 원작을 초월했다는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 <드래곤볼 GT>는 세상을 떠난 오공을 향해 이렇게 읊조립니다. "오공이 있어서 즐거웠다"고. 저도 고인을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를 그린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향년 68세. 사진은 도리야마 아키라씨 인스타그램 이미지 캡처.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만화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를 그린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지난 1일 급성 경막하 출혈로 별세했다고 현지 언론이 8일 보도했다. 향년 68세. 사진은 도리야마 아키라씨 인스타그램 이미지 캡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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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드래곤볼, #토리야마아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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