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아니,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잡고 매일 쓰는 여정을 시작한다면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워진다.
최근에 읽었던 어떤 한 권의 책을 떠올려보자. 200페이지의 책이라면, 그 책은 1페이지부터 200페이지까지 다 좋았단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줄로 꿰듯 붉은 밑줄로 물들일 수 있었던가. 그래서 '이 책 참 좋다'라고 말했던가.
그렇지 않다. 그런 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 몇 개의 챕터가 좋았다면, 더 줄인다면 몇 개의 문장이라도 좋았다면, 기억 속에 그 책은 좋은 책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좋은 글을 매일 쓸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이야말로 지독한 오만과 편견이다. 그럴 수도 없고,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매일 쓰지 못한다면, 무엇에서 기쁨을 얻을까. 좋은 글은 매일 쓰지 못하지만, 매일 쓰는 나는 점점 좋은 존재가 되어간다. 매 순간 존재의 진심을 담아서 쓴다는 것이 전제된다면 거의 의심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기준이 되면 매일 글쓰기의 코어는 무지막지하게 단단해진다.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좋은 존재가 될 확률이 높다. 아니, 확률의 문제를 떠나 믿음의 문제라고 까지 말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매일 쓰려고 한다.
매일 쓰는 내가 점점 좋은 존재가 되어가면서 덤과 같이 따라오는 것이 있으니, 바로 그 매일 쓰는 나를 좋아하게 되는 일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쓰고 뱉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쓰면 쓸수록 나 자신을 더 알아가고, 용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쓰면 쓸수록 사랑은 가속되고 증폭된다.
여기까지 오면 무려 한 가지가 더 덤과 같이 따라오게 되는데, 그건 매일 쓰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작가의 글이 좋으면 독자가 되고, 존재가 좋으면 팬이 된다. 매일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존재가 투영될 수밖에 없다.
글감이 바닥나는 순간이야말로, 존재가 발휘된다. 그 존재의 끝자락에서 나는 향취로 말미암아 독자는 팬이 되는 신비가 발생한다. 글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힘껏 부지런히 사랑해주는 존재들이 생긴다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기쁨이란 분명히 이 지구별에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쓴다. 매일 좋은 글을 쓸 수 없어도, 매일 쓰는 나는 점점 좋은 존재가 되어 가기에, 그런 나를 좋아하기에, 그리고 그런 나를 좋아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