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선택이 된 시대, 출산율의 극감과 달리 사람들의 애완동물 양육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대한민국의 애완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7.7%, 말하자면 4가구당 한 집 꼴로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2020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기준).
매일 아침 공원 산책길을 걷다 보면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달라진 시대를 실감한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애완견과 걷는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도 한다.
지난주 공원길을 걷던 아침, 멀리 사냥개 종류로 보이는 애완견 한 마리가 달리기 경주를 하듯 무섭게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줄이 풀어진 그 개 뒤로 견주로 보이는 사람이 잰걸음으로 개를 따라갔지만 목줄을 매려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 개는 달리다 서다를 반복하며 공원 산책길을 넘나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도로변으로 미친 듯이 뛰어드는 것이었다. 마침 도로변을 달리던 차는 갑자기 달려든 그 개를 본 뒤 급정거했고 주변을 울리는 '끼이이익' 소리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놀라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날뛰던 개는 도로 반대편으로 신난 듯 달려가버렸고 놀란 운전자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견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를 따라 달려가버리는 것이었다. 순간 벌어진 이 상황에 내 심장이 두 방망이질을 했으니 운전자는 오죽할까 싶었다. 도로변 인도에 서서 계속 바라보는 나를 의식해서였는지 놀란 운전자가 창문을 열었고 우리는 말을 잃은 채 눈을 마주쳤다. "많이 놀라셨죠"라고 묻는 내게, 운전자가 반문했다. "그 개는 안 다친 거죠"라고.
오늘 아침도 호수공원을 걷기 위해 아파트 입구를 지나 공원 쪽으로 들어섰을 때 앞서가는 두 마리의 애완견이 보였다. 견주로 보이는 사람은 한 마리에만 목줄을 맨 채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가는 다른 애완견은 줄 없이 그저 따라가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내심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이 상황이 불편했다.
뒤에서 따라가자니 운동을 위해 걷는 내 걸음이 빨랐고, 빠르게 앞서자니 목줄 없는 그 녀석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뒤따르던 나는 결국 앞서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목줄 없이 걷던 강아지가 갑자기 옆으로 오더니 내 뒤를 빠르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몸집이 크지 않은 강아지였지만 순간 무섭기도 해 견주옆으로 얼른 붙으며 말했다.
"제가 좀 놀랐어요, 죄송하지만 목줄을 해주시겠어요?"
내 말을 듣고 난 견주는 바로 무심한 표정과 함께 날카로운 반응으로 답했다.
"알고 있어요!"
견주의 반응에 나는 순간 어이없었고 기가 막혔다. 제대로 묻지도 않고 무엇을 이해했다는 말인가. 내가 놀랐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지, 아니면 목줄을 매달라는 요청을 안다는 건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견주의 행동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는 미안한 표정도 없없다. 개에게 목줄은 매려는 움직임 또한 없이 그냥 가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이었다.
시민의식을 발휘해 사진 촬영을 한 후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가던 산책길이 아닌 도로변 샛길을 지나 공원 쪽으로 걸어가는 코스변경을 선택했다. 걷는 동안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시대 흐름에 맞춰 늘어나는 애완견 양육, 중년과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완동물과의 동거가 시대의 흐름이다. 반려동물이란 이름처럼 가족으로 대하는 시대를 이해하고 싶다. 공중도덕이 필요한 장소에서 자녀의 교육이 필요하듯, 반려동물이란 이름의 또 다른 가족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으로 인정받게 하려면 그들을 돌보는 견주들의 기본상식이 필수일 것이다.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로 입양하고 키우는 반려동물들이 명절과 휴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무분별하게 유기된다는 소식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이 또 다른 생명을 얼마나 잔인하게 다루는가를 보여주는 시대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 가족으로 여긴다면, 서로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들에게도 반려동물로 인한 불편이 없도록 먼저 반려동물을 교육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꽃이 피는 봄, 자연을 즐기는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반려동물 가족들의 올바른 인식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