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보험 없는 주부들이 쓰는 '점을 찍는 여자들'은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그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꾼다. 시간의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찾아 창업에 도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 각종 SNS에는 창업 성공담이 넘쳐난다. '내 돈 하나 안 들이고 창업하는 법', '창업 한 달 만에 월 수입 1천 찍는 법' 등 이들의 메시지를 하나로 모으면 '창업이 가장 쉬웠어요'다. 하지만 핑크빛 환상만 갖고 접근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난 1년간 내가 겪어본 창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글은 창업을 겪으며 느꼈던 현실적인 문제와 창업하기 전에 고민하면 좋았을 사항들에 대한 정리다. 우리 부부가그랬듯 머릿속 생각만 가지고 호기롭게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퇴사가 먼저는 아니다
창업을 경험하기 전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라 믿었다. 하지만 창업을 경험한 이후의 나는 '잘 버티는 것' 또한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것, 그렇게 자리매김해서 자신의 브랜드와 정체성을 알리는 과정이 초기 창업 단계이기 때문이다.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노하우를 쌓는 거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내가 팔 수 있는 상품인지, 고객들이 반응하는 제품은 무엇인지, 더 잘 팔기 위해 어떤 것을 고민하고 개선해야 하는지 등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은 절대 머리로 생각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실전을 통해 경험해야 한다. 그러니 무조건 '잘' 버텨야 한다. 버텨서 무엇을 보태고 더해야 할지 찾아내서 발전시켜야 한다.
잘 버틸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속물처럼 들리겠지만 현실적으로 답하겠다. 바로 '돈'에서 나온다. 자본력,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수입 등이다. 창업 하자마자 수입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걸 모르고 남편은 2022년 퇴사했다.
잘 다니던 회사였고, 나름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래서 자신이 넘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업을 해야겠어. 지금의 수입으론 모자라. 사업을 해서 더 많은 돈을 벌 거야. 모든 프로세스를 알고 있고, 할 수 있는데 회사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잖아. 내 것, 내 사업을 시작할 거야."
남편은 확신에 넘쳤다. 사업자금은 퇴직금과 우리 사주 받은 것으로 시작할 거라 했다. 일 년 정도 버틸 생활비도 충당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충분하진 않지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했다.
꿈 많고 재능 많던 남자였는데, 외벌이가 되면서 생계를 책임지는 건 오롯이 남편 몫이 되었다.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은 먹고사는 문제 해결과 못 다 핀 그의 재능을 꽃피워 보겠다는 일타쌍피의 전략이었다.
"그래 여보. 해보자. 우리 해보자. 설마 길바닥에 나 앉기야 하겠어? 최악의 경우, 우리 가진 아파트 전세를 주든 매도하든 우리 살 길은 또 있을 거야. 해봐. 당신 잘 할 수 있을 거야. "
선 퇴사, 후 창업.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실수였다. 사업체를 운영, 유지할 체력은 자금 순환력에서 생긴다. 빨간 날이 듬성듬성 끼어 있어도, 일주일치 연차를 소진한 휴가철에도 깎이지 않고 들어오는 월급, 월급의 위대함을 퇴사한 후에야 알았다. 이게 바로 사업 밑천이자 체력임을 말이다.
고정수입 없이 창업하면 시간과 돈에 쫓기게 된다. 마음은 급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러니 창업을 위해 회사부터 때려치우는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부부 중 한 명은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일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외벌이었던 우리 가정에서 남편의 퇴사는 허약 체질의 마라토너가 출발선에 선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작게 시작해라
두 번째 실수는 사업 스케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는 것이다. 남편의 사업 아이템은 밀키트였다. 상품 기획과 마케팅, 거래처와 홈쇼핑 등 방송 매체들을 모두 다룰 수 있던 남편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유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성 제품에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걸쳐 제품 기획을 마쳤다.
대표이사는 내가 맡았다. 여성 창업의 경우 공공기관 입찰 시 우대받을 수 있고, 금리 우대 및 창업지원 혜택을 받는 데 유리하다. 여성기업 확인서를 받기 위해 사업장 실사와 대표 인터뷰가 있는데 당연히 대표자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나 또한 남편의 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저 자본과 아이템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게 사업인 줄 알았다. 여기에 남편은 실무 경험을 통해 소위 '먹히는 아이템'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상품은 기존 아이템의 단점을 개선한 상품이 아니던가?(너무 우리 입장에서만 생각했다). 까다로운 제조업 등록도 무사히 마쳤다.
"제조업 등록까지 하셨으면 이제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았네요."
제조업을 크게 하시는 지인의 한 마디가 우리 부부의 가슴을 뛰게 했다(제조업은 창업 생존율이 가장 높은 업종이고, 산업 특성상 고용증대 효과가 큰 업종이라 정부지원 사업에서도 유리하다). 남편의 꿈은 작지 않았다. 지금은 OEM 방식으로 제조를 하지만 나중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갖추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우리 사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돈 문제'였다. 제조업은 재고 확보가 필요한 분야이다. 판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건부터 만든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제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줄었다. 마치 고속 열차를 탄 것처럼 말이다.
회사와 밖은 다르다
세 번째 실수는 마케팅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거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만 하면 판매가 그냥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소비자는 우리의 브랜드가 낯설다. 이들의 눈에 비슷한 제품은 넘쳐난다. 굳이 돈 주고 모험하고 싶지 않다. 좋을지 나쁠지 확신이 없는 상품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많은 기업이 마케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이유다. 광고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친숙하게 만든다.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팬심과 동일시를 자극한다. 회사에 몸 담고 있었을 때는 가능했지만 개인사업자로서는 엄두도 못 내는 광고 스케일이었다.
대기업의 상품과 마케팅을 개인사업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우리의 생각은 완전한 실수였다. 규모가 달라지면 마케팅 접근 방법도 달라야 했다. 다른 전략이 필요했지만 기존 회사에서 익혔던 프로세스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1차, 2차, 3차 총 3종의 상품을 출시했다. 재고는 쌓이고 판로를 찾기 위해 라이브 커머스, 공동구매 등도 시도해 봤지만 판매로 전환되는 확률은 1%대였다. 기운이 빠질 수밖에... 남편은 일인다역을 하느라 하루 종일 책상을 떠나지 못했고 밥도 거르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여유 시간이 생길 것이라는 환상도 깨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남편은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23년 2월 회사에 들어갔다. 남편의 입사 통보가 내려지던 날, 기쁨 대신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전장에서 폐한 장군의 마음이랄까?
회사를 만들고 사이트를 구축하고 자사 브랜드를 딴 상품을 출시하고 유명 홈쇼핑에도 입점하고 라이브커머스와 스토어 운영까지 남편과 해온 지난 1년의 과정들이 스쳤다. 짧은 기간에 참 많은 걸 해냈다. 단지 이게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았을 뿐.
창업 1년 그리고 재취업까지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편이 만든 회사는 2년차 기업이 되었다. 아직 우리의 창업 도전기는 끝나지 않았다. 버틸 체력을 만들어 가면서 도전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그룹 <점을찍는여자들>에 연재할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