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글쓰기 동네 모임이 있는데 모두들 마음만 있고 글은 전혀 쓰지 않는다. 처음 모임을 만들었을 땐 의욕이 넘쳤고 글을 써서 책도 한번 만들어보자는 계획이 있었지만 동기도 열정도 모두 사라져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그나마 K 회원님이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 채택이 된 것 말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마음은 있으나 진전 없는 성과에 나아가지 못하고 무인도에 조난당한 사람들처럼 무기력했다.
모임 활성화를 위해 독립서점 투어를 제안했다. 투어 소감을 쓰다 보면 글쓰기에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나아가 독립서적을 출간하기에도 수월할 거 같아서였는데 호응이 괜찮았다. 첫 번째로 투어 할 독립서점은 새한서점으로 정했다.
영화 <내부자들> 촬영지로 검사역을 맡은 조승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책방으로 나왔던 곳인데 영화 속에 비친 책방은 꽤나 멋지고 운치 있어 보여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늘 마음만 먹고 있었는데 회원 중 모 님이 두 번이나 갔다 왔음에도 우리를 위해 가이드를 자청해 운전까지 책임져 주기로 했다.
3월 16일 토요일 아침 우리는 단양에 있는 새한서점으로 향했다. 벚꽃이 피었다면 꽤나 예뻤을 단양강변은, 입고 간 패딩이 무색할 정도로 화창한 초봄의 날씨다. 서점은 단양에서도 적성면에 위치해 있어 외진 산길을 한참이나 들어가야 했다. 서점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숲 속이다.
주인을 만나면 왜 이곳에 서점을 만들었는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숲 속의 헌책방'이란 동화 같은 푯말이 보이고 초록이 짙은 여름이라면 더 운치 있을 것 같은 산골짜기에 마침내 허름한 목조건물이 보였다. 자연을 품은 책내음이 비탈에서 올라올 것만 같은 풍경이 프레임 속에 들어왔다.
점점 클로즈업되면 영화 프레임 속에 담긴 질감과는 전혀 다른 현실의 채색이다. 이질감에서 오는 외부와는 다른 내부의 질감은 오래된 책들과 먼지 그리고 바닥 흙내음이 주는 흑백사진 같은 감성에 한참을 서성이게 했다. 손길이 닿지 않아 방치된 책들조차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십만 권의 책들이 겹겹이 쌓여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구조는 '이기적인 본능'의 책제목처럼 굉장히 이기적인 공간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깊숙한 책방 CCTV가 없음이 이상한 건 내가 이곳에 물들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시나요? 주인을 찾지만 고양이 한 마리가 그림처럼 웅크리고 있다. 곳곳에 '이곳은 스튜디오가 아니라 서점입니다. 촬영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도 보인다. 한창 인기가 있을 때 관광객들이 찾아와 몸살을 앓은 모양인데 이젠 그마저도 추억이 돼버린 듯하다.
이색 관광지로서 굿즈도 팔고 독립서점답게 독립서적도 보인다. 주인 없는 책방에서 손님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데 다락같은 곳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모습을 보였다. 서점을 닮은 책방 주인이다. 인사를 건네고 이곳에 서점을 차린 이유를 물었는데 노쇄 해서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회원 모 님의 말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많이 편찮으신 거 같다고 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당신의 말씀만 하셨다. 서울에서 서점을 하다가 고향 근처인 이곳에 왔다는 설명이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더 이상 질문할 수 없었다. 사진 요청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능숙하게 포즈를 취했다. 뉴스에 실어도 되냐는 말씀에 고개도 끄덕였다.
예전엔 커피를 팔았다는데 이젠 아니다. 커피라도 팔면 좋으련만 그마저 없으니 숲 속 책방의 존재가 어쩐지 쓸쓸했다. 조승우와 이병헌이 삼겹살을 먹었던 평상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 보지만 책도 주인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책에도 운명이 있다는데 그 운명은 깊은 산속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내내 직접 마주한 서점의 질감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외롭고 웃긴 묘한 책방. 언제나 프레임 속에 담긴 장면이 더 아름다운 것 같지만 프레임 밖에서 전해오는 들꽃향의 진동을 이길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어느 각도에서 담아도 공간 속 거대한 책이 주는 감동은 그 어느 것과도 대적이 안될 만큼 오싹하다. 당분간 그 어떤 책방도 이 질감을 쉽게 지워내지 못할 것 같다. 시간을 통과한 숲 속의 책방이 다음번엔 어떤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언덕을 넘는다.
사실, 이번 공식투어가 있기 전 K회원과 '안녕, 책'이라는 독립서점을 먼저 다녀오고 계획했던 것이 있었다. 마음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나아가고 성장하기 위해 일을 저지른 것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독립서적 출간을 위해 시청에 1인 출판사 등록을 한 것이다.
15일 처리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목표와 목적이 생긴 글쓰기를 위해 끊임없이 노를 젓고 있는 중이다. 가다 보면 뭐라도 나타나고 뭐라도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정을 같이 하며 함께 꿈꾼다.
그 모든 출발점에 독립서점이 있었다. 독립서점을 투어 하면서 나도 나만의 멋진 독립서점을 갖고 싶은 소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간절히 원하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말이다. 그곳에서 머리가 맑아지는 책으로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