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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옷을사지않기로했습니다
책 옷을사지않기로했습니다 ⓒ 돌고래

 사실 젊을 때부터 패션에 큰 관심이 없는 나였다. 만약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시지 옷을 살 사람이 아니었다. 20대 때의 나는 우선순위가 여행과 술이었기 때문에 이 둘 외의 것을 위해 돈을 쓰는 건 정말 너무 아까웠다. 

당시 모친께서는 하나 있는 딸인 내가 화장도 이쁘게 하고, 옷도 세련되게 입고 다니기를 늘 원하셨지만 그렇게 살려면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옷과 화장품을 사는데 써야 하고, 그러면 술을 마실 돈이 줄어드니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른바 '패스트패션'의 흐름을 거스르고 살았던 것은 술 덕분이었으리라.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작가 이소연이 기후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의 의생활을 위해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고, 현재 패스트패션을 필두로 하는 패션산업의 문제점, 의류 폐기물의 문제 제3국 노동자들의 문제, 환경보호의 문제 등을 함께 아우르는 책이다.

옷이 날개라지만... '꺾인 날개'가 되고 있는 옷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옷을 사는 것이 잘못됐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며, 우리 모두에게 책임과 소망이 있으니 작은 노력부터 함께 시작해 보자고 제안한다. 가령, 모두가 열 벌씩 사던 옷을 한 벌이라도 줄이거나, 중고품을 사용해보기 등 거창한 제안이 아닌 우리가 살면서 현실에서 충분히 지킬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한다.(p. 22-23) 
 
 '패스트패션'은 말 그대로 빠르게 소비되는 패션을 말한다. 그렇게 빠르게 버려진 옷들은 어디로 갈까.(자료사진)
'패스트패션'은 말 그대로 빠르게 소비되는 패션을 말한다. 그렇게 빠르게 버려진 옷들은 어디로 갈까.(자료사진) ⓒ 픽사베이
 
'패스트패션'은 말 그대로 빠르게 소비되는 패션이다. 빠르게 생산되어, 빠르게 판매되고, 빠르게 버려지고, 다시 빠르게 생산된다. 우리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누구의 손을 거쳐 빠르게 생산되는 건지, 그리고 빠르게 버려진 옷들은 어디로 가는지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 물 소비량의 20%가 옷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매년 의류 제조에 물 93조 리터가 쓰이는데, 이는 무려 500만 명이 생존에 쓸 수 있는 양이다.(p36) 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이다. 또 목화를 통한 면화 재배를 위해서 전 세계에서 쓰는 농약의 10%, 살충제의 25%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p.65 참조) 

저자는 유행의 속도만큼 쓰레기가 나오니, 섬유 쓰레기가 곧 패스트패션의 그림자라는 표현은 더 이상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말한다. 특히 더 절망적인 것은 '오늘 생기는 쓰레기가 앞으로 생길 쓰레기 중 가장 적은 양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섬유 쓰레기들은 어디에 있을까? 불로 태워버리면 간단할 것 같지만 발생하는 오염물질 때문에 그럴 수 없다. 대부분의 섬유쓰레기들은 가난한 나라로 흘러간다. 자국에서 헌 옷을 처리하는 비용보다 배에 실어 수출하는 비용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글라데시, 가나, 필리핀 등 개발도상국으로 흘러간 헌 옷들은 그중 극히 일부만 소비되고 나머지는 쓰레기로 방치된다. 
 
 과거 KBS에서 방영됐던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다큐멘터리 갈무리 화면(유튜브 캡쳐)
과거 KBS에서 방영됐던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다큐멘터리 갈무리 화면(유튜브 캡쳐) ⓒ KBS
 
그렇게 쌓이고 쌓인 헌 옷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고 하는데, 당장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섬유 쓰레기산 탄생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한편 이렇게 빠르게 버려지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옷들은 누가 만드는 걸까. 예전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면, 이제는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가 제일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방글라데시나 미얀마 등의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은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청계천 봉제공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돈에만 눈이 먼 사례는 많다.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8층짜리 라나플라자 건물이 무너져서 노동자 최소 1145명이 사망하고, 2500여 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어 의류공장 노동자들을 제외하고 건물 이용자들은 대피를 했고, 경찰도 건물을 비우라고 명령을 했던 터였다.

하지만 공장장들과 건물주는 당장 들어가 일을 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협박에 못 이겨 공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은 한 시간 뒤 결국 무너져버린 건물더미에 깔리고 만 것이다. 하루에 옷 1000여 벌을 만들어내던 의류 봉제 노동자들의 당시 시급은 260원이었다 한다.

유명 SPA 브랜드에서 1+1 옷을 고르며 얻은 '득템'의 기쁨은 철근도 제대로 박혀 있지 않던 건물더미에 깔린 시급 260원 노동자들의 피눈물, 목숨과 맞바꾼 것이었다.

의류 산업 망하라는 건가? 저자 답은 'NO'

책에서 저자는 패스트패션을 비판하면 등장하는 역비판들, 가령 '의류 산업이 망해야 한다는 소리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 방식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새 옷을 사지 말라는 거냐?'라는 질문에도 '아니'라고 답한다.

저자는 '새 옷을 사지 말자는 것은 멋을 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옷을 단순한 물건 이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친밀하고 직관적인 수단으로 여기고 존중하자는 말이다'라며 옷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의 변화 또한 필요함을 역설한다.

패스트패션은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 착취의 국적만 바뀌고 있을 뿐이다. 과거 노동자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였던 우리나라의 청계천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중국에서 방글라데시나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그리고 또 지구 어딘가 인건비가 더 싼 곳을 향해 착취의 국적을 바꾸고 있다. 

저자도 말했듯 패스트패션에 딸려오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옷을 사지 않는 것만이 해답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100명이 10벌 살 옷을 한 벌씩만이라도 덜 산다면 조금씩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일렁일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며칠 전에도 옷 여러 벌을 구매했다. 매일매일 최고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는 이 몸뚱이는 슬프게도 기존에 입었던 옷을 입을 수가 없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이어트가 우선일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여러 번 해봤으나, 다이어트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그럼에도 여전히 옷에 대한 물욕은 많이 없는 편이라 옷을 최소한으로만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바야흐로 봄이다. 나무마다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새로운 옷들을 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나처럼 부득이한 이유로 옷을 새로 사야 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저자의 제안처럼 딱 한 벌만 덜 구매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의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 커다란 혁명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배여진씨는 사단법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입니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소식지 교회와인권에도 실립니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 기후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

이소연 (지은이), 이지선 (북디자이너), 돌고래(2023)


#옷을사지않기로했습니다#제로웨이스트#이소연#쓰레기산#의류폐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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