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살기 힘들잖아요. 제가 누굴 뽑는다고 해서 사회가 개선될 거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점점 정치에 관심을 잃어가요", "마지막까지 고민할 것 같아요."
<오마이뉴스>가 나이, 성별, 직업, 거주 지역, 투표 경험, 선거 정보를 접하는 통로가 모두 다른 1990년대생 6명을 만났다. 6명 모두 뚜렷하게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몇 차례의 선거에서 각기 다른 정당을 찍어왔으며,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스윙보터(Swing Voter)'들이다.
이들은 모두 선거에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오는 4월 10일 치러질 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만큼은 투표하러 갈 생각이라고 했다. "권리"라는 생각에서다.
"정책이 뭔지 모르겠다"
이번 총선 정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대표 조국)은 다른 세대와는 달리 18~29세에서는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3월 15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0%를 기록하기도 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정진우(29, 가명)씨는 최근 부모님이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으나 정작 본인은 크게 관심이 없다. "부모님이 지지한다고 말하니 비판하기 조심스럽지만, 정당을 만들 정도로 정치인으로서 보여준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최재현(28, 가명)씨 또한 "정당을 만드는 건 본인의 자유이지만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랍다. 그런데 주변 또래들 중에서는 지지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라며 "조국 대표의 자녀와 비슷한 해에 입시를 치러서 그런지 뉴스에서 접한 '조국 사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최씨는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 뉴스에서 많이 회자되는 15명 내외의 국회의원들 페이스북(SNS)을 팔로우해놓고 총선 관련 소식을 접한다. 그는 "여야 관계 없이 구독한다. 아무래도 정치인들이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니 보고 (나도) 배우려고 한다"라면서도 "그런데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았으니 도와주라고 하고, 민주당은 심판해야 한다고만 한다. 정작 정책을 모르겠다"라고 토로했다.
작년 말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개혁신당 대표로 총선에 나선 이준석 후보를 두고는 "이준석을 좋아했던 친구들이 많은데, 지금은 단톡방에서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는다. 매일 뉴스에 나오다가 탈당하니 이제는 뉴스에도 잘 나오지도 않는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임태훈 컷오프, 민주당에 절망"
부산에 사는 프리랜서 김지영(32, 가명)씨는 '총선과 관련해 표 행사를 결정할 만한 가장 인상적인 정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민주당 비례위성정당 공천 심사에서 지난 13일 '병역기피' 사유로 컷오프된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을 언급했다. 김씨는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후진적인 결정"이라며 "사실상 일부 개신교 측의 압박에 굴복하여 성적 지향을 문제삼는 차별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절망적"이라고 전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김씨는 "2017년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시 계엄령을 선포하겠다는 문건이 공개됐기 때문"이라면서 "아직도 대한민국의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하다 싶었는데, 윤석열 대통령 임기 이후 그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런데 민주당이 (컷오프로) 모욕을 주니까 회의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역시나 같은 질문에 행정 사무직으로 부산 동래구에 거주하는 한민준(30, 가명)씨 또한 임태훈 전 소장 컷오프를 언급했다. 한씨는 자신을 "지지 정당은 없으나 '반 국민의힘' 성향으로, 비례대표도 다양하게 찍었지만 '국민의힘'만큼은 찍지 않았다"라고 소개했다. 한씨는 "세 살 때부터 부산 동래구에 살았는데, 보수 표심이 워낙 강한 지역이라 민주당이 아닌 다른 진보 정당이 나오면 다행인 수준"이지만, 최근까지도 비례대표(정당) 투표를 망설이고 있다. 그는 "군 생활을 하면서 군인권센터에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는데 임태훈 소장이 탈락돼서"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만드는 소위 '위성정당'에도 회의감을 드러냈다. 한씨는 "새로 생긴 정당이 오래 갈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철 지나면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 흡수되겠지"라면서 "위성정당 같은 장난을 치지 말고 평소에도 철학이나 강령에 따라 국회의원 몇 십 명씩 따로 정당을 꾸리다가 필요에 따라 묶이는 '다당제'로 갔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지역에 쏟아내는 일자리 공약, 믿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5일 부산을 찾아 윤석열 정부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해 언급하면서 민주당의 지지를 호소했다. 한씨는 여기에 대해 "의외로 주변에서 엑스포에 대해 비판 여론은 크지 않았다"라며 "엑스포를 유치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지가 없고 유치하면 외국인들이 돈 싸들고 부산에 찾아온다는 말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엑스포에 떨어져도 타격이 없었던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워낙 보수 정당이 강세인 지역이라 지역의 유력 인사들 역시 보수 정당에서 정치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납득 가능한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 구의원은 국민의힘 소속인데 페이스북 스크롤을 몇 번 넘기면 조국 수호 집회에 참석했던 사진이 나온다"라고 의아함을 표시했다.
충청북도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은정(33, 가명)씨는 그간 집으로 배송돼오는 선거 공보물에 나오는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해왔다. 매번 꾸준히 투표해왔다는 박씨는 "거부감 드는 후보는 빼고 차악을 골라온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누굴 뽑는다고 해서 정치가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투표를 한 번도 빠진 적은 없다"라며 "그게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그 한 표를 행사하지 않고 정치에 대해 불평하는 것만큼 한심스러운 일도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계속 투표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충청북도에서는 아무래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이 많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 일자리가 고정적으로 만족스러운 소득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인지 의문이 든다"라며 "사실 지방에 괜찮은 일자리가 없을 뿐더러 국회의원이 홀로 추진할 수 있는 공약인지 또한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정치 이야기는 더는 하지 않는다"
1990년대생 '스윙보터'들은 공통적으로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더는 정치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조금 더 상황 변화를 지켜보고 투표를 결정할 것"이라는 대기업 직장인 이수지(32, 가명)씨는 "대화를 나눌 경우에도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총선 이후 금리가 어떻게 달라질지, 부동산 가격의 변동은 어떻게 될지' 등 경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지영씨 또한 "총선 관련 이야기는 피한다"라면서도 "다만 찍을 데가 없다는 정서적인 합의를 암묵적으로 공유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당은 많은데, 찍을 데가 없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박은정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투표할 때만 해도 친구들과 말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각자 나이가 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투표 성향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언급된 갤럽 여론 조사 개요>
- 조사기간: 2024년 3월 12~14일
- 조사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
-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 주요 지표 표준오차·신뢰구간·상대표준오차 제시
- 응답률: 14.7%(총 통화 6,829명 중 1,002명 응답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