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OO이 전학 간대!"
"어? 그래? 어디로?"
"자긴 잘 모른대. 그런데 거긴 애들도 많고 학원도 많은 동네래."
"어디지? 대치동인가? 그런데 저번에 ㅁㅁ이도 전학 간다 그러지 않았어?"
"응, 단톡방에 사진 올렸는데 찾아보니까 잠실에 있더라. 거긴 학교 엄청 크대!"
지금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 때도 주변에 전학 가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 아이네도 비슷하게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종로에서는 아이들 공부 때문에 이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내의 경우, 다른 지역은 보질 못했고 대체로 서울 반포, 대치, 잠실, 목동이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곳이다. 5반, 4반, 3반. 서울 한복판인 중부 교육청 소속 공립학교들은 출산율 문제가 대두되기 이전부터 이미 소멸 직전이었다.
아이들 수는 줄었지만 사교육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원은 대치동의 유명 수학 학원 커리큘럼과 비슷하게 진행하고 대치동 강사들을 데리고 온 곳들이다. 아이들은 레벨테스트를 보고 심화와 선행 중 수준에 맞는 반에 배정된다. 아이가 학원에서 힘들어하면 부모는 과외를 붙이기도 한다.
공립초등학교에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과목별 점수가 없다. 잘함이나 보통, 노력요함 등으로 표현되고 학습 결과인 성적보다는 학교 생활이나 과목별 수행능력을 과정 중심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학생들끼리 서로 성적을 비교하고 우열을 가리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엄마들 사이에서는, 누구는 수학을 어디까지 배워서 잘하고, 누군 영어를 그렇게 잘한다는 소문이 돌아 늘 궁금했었다. 알고 보니 특정 학원 레벨테스트를 기준으로 좋은 점수를 맞은 아이들을 '잘한다'라 칭하는 것이었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먹고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정작 부모인 나는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것인지 불안했던 적이 있다. 또래 아이들을 둔 엄마들을 만나면 학원 이야기, 강남 이야기만 하니 더 불안해져서 만남을 줄이고 대신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불안할 때마다 김희경 작가(<에이징 솔로>), 유지원(<글자풍경>), 이상헌(<같이 가면 길이 된다>), 정혜승(<정부가 없다>), 박동수(<철학책 독서 모임>) 등의 책을 읽고 저자 북토크에 참여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 시절만의 특권을 아이가 잘 누렸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초4 과정 수학을 하던 아이는, 초4에 중학 수학을 하고 초6부터 고등수학(상), (하)를 공부하는 일반적인 선행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남들보다 빨리 시작해서 남들을 이기는 것이 학생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내 아이들만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미래 아이들에게 정말로 괜찮은 일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에 단 한 번인, 아이들의 꽃봉오리 같은 유년시절. 이 시절을 그저 '성적이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이 연봉을 결정하고, 연봉이 자산 규모를 바꾼다'는 말로 검게 칠하고 싶지 않았다. 일없이 빈둥거려도 되는 시기를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고, 공부나 일은 나중에 하고 싶을 때 해도 괜찮은 미성년의 특권을 누렸으면 했다.
입시를 위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이상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네 반에서는 20명 중 2명이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학교에서 오신 담임 선생님은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을 처음 본다'라고 말씀하셨단다.
학교에선 사회적 연대와 구성원 존중이 중요하다고 배우면서도, 아이들이 일상에서 정작 실천하게 되는 것은 남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국영수 선행과 문제집 풀이다. 나는 배움과 실천이 분리된 청소년기가 아이들 삶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를 고민했다.
지나치게 긴 근무시간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이 절실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선택하는 부모들도 많지만, 유치원생의 '인서울 대학' 진학을 위해 남들보다 빨리 선행학습을 선택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남을 이기지 못하거나 입시에서 실패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팽배한 사회에서 아이들 생존을 모색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이가 또래들과 경쟁하며 앞서기보다는, 다문화 가정 학생이나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진 친구, 그리고 미혼모 돌봄 시설에서 등교하는 친구와도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 그래서 아이를 끌고 가는 대신 아이가 선택한 길을 뒤따라가기로 결심했다. 돈도 덜 쓰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사회를 원한다면, 미래 사회 구성원인 내 아이들부터 그렇게 키워야 하는 거니까.
아이는 무조건적인 선행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 길을 선택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것. 삶을 위해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학교에서 물의 순환을 배우면 집에서 물을 끓여 액체가 기화했다가 차가운 냄비뚜껑에 부딪혀 다시 액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식으로 가정 학습을 진행했다.
가계부로 뺄셈 공부, 돈 모으며 암산 노력을... 일상의 공부
뺄셈을 힘들어하는 아이에겐 규칙적으로 용돈을 주며 가계부를 쓰게 했다. 통장을 만들어주고 돈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 암산 능력을 길러주었다. 학교에서 전통놀이를 배운다고 하면, 실제로 관련 상품을 살펴보고 구입해 놀았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공부할 땐 그와 관련한 놀잇감을 갖고 놀며 아이들이 역사를 생활 속에서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선 문화를 주제로 한 '대한제국 굿즈'를 낸다. 중3인 큰아이가 대한제국 굿즈의 J(흥선대원군), Q(명성황후), K(태황제)를 다 이해하고는, 동생에게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그리고 경운궁을 '황제는 갇혀서 덕이나 쌓으라'는 비아냥이 담긴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꾼 친일파까지 동생에게 설명했다. 다음날 우리는 덕수궁을 찾았고, 석조전 앞에서 대한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3월 중순엔 '세계 신경다양성 축하 주간'(Neurodiversity Celebration Week)이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입시 독서만이 중요시되는 요즘, 신경다양성의 한 형태인 난독증의 두려움과 고통을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보며 다양한 독서 방법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아픈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하나씩 꺼낸다. 키가 또래에 비해 작은 둘째 아이는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내버스 카드 단말기의 위치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모든 사람의 키를 똑같이 만드는 것보다는 단말기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다는 것이 더 쉽지 않겠냐는 아이의 논리에 감탄했다. 교통비를 내는 모든 사람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하는 공공시설은, 공공요금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의 말에도 깊이 공감했다.
입시 중심의 공부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남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그걸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을까. 아이들을 십수 년째 돌보고 있지만 여전히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결정이 아이들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나의 확신대로 미래가 펼쳐지리란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들이 아주 뛰어나진 않더라도, 주변에 다친 사람이 있으면 돕고,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쌀을 나눌 줄 아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우리의 작지만 남다른 결심과 실천이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함께 잘살기 위한 상생 공부를 고민하고 노력한다.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보다 더 고민이 컸던 중학교 3학년 아이의 상생 교육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