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장사는 괜찮아요?"
맞은편 카페 사장님이 물었다. 자기 장사가 잘 되면 물어보지 않을 질문이다. 그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왔을 뿐인데, 질문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잠깐 망설이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다.
"잘 될 리가요. 이번 겨울에 보증금 까먹을 뻔했어요."
장사꾼 엄살은 믿는 게 아니라지만, 사실이다. 아슬아슬했다. 대개 음식장사는 12월부터 2월까지 비수기다. 날씨에 장사 없다. 추우면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배달 기사들에게 미안해서인지 배달 건수도 급격히 줄어든다.
식당 영업을 시작한 17년 동안 겨울에 흑자를 본 적은 딱 두 번뿐이다. 개미 인생이다. 여름에 소처럼 일해 번 돈으로 겨울에 먹고 산다. 올해도 그러려니 싶었는데 굶어 죽을 뻔했다. 1월 첫째 주 매출이 작년 대비 70% 수준이었다.
2021년 12월의 악몽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을 지배하던 그 시기다. 지금도 가족들은 '거리두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미간을 찌푸린다. 당시 4인 이상 동반입장 금지, 오후 9시 영업제한으로 2천 만 원 손해를 봤다. 하필 정부가 상반기에 유예해 준 종합소득세 납부기간이 그 타이밍에 찾아왔다.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펜데믹 때 매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근데 그때의 매출을 다시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일시적인 흐름이지 싶었다. 둘째 주도, 셋째 주도 반등의 기미는 없었다. 비수기인 걸 감안해도 이번 겨울은 정도가 심했다.
그러다 며칠 전, 동네의 풍경을 보고 이게 우리 가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다. 오후 7시 반에 창밖을 보는데 밤 11시인 줄 알았다. 길가에 사람이라곤 없었다. 다음 날 오후 두 시, 평소라면 맞은편 은행 앞에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들어야 하는데 휑하다. 군데군데 공실인 옆 상가 건물 일층은 벌써 두 달째 비어있다. 이상했다. 평생을 보고 자란 거리가 어딘가 낯설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민정시찰'을 나섰다. 먼저 시내 중심에 있는 대기업 제과 체인. 시내 상권 가장 중심부에 있는 곳이었다. 들어가 보니 직원들이 핸드폰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손님은 단 두 명. 그마저도 가격을 보면서 빵을 들었다 놨다 했다.
우리 가게 바로 옆 중국집 사장님도 표정이 안 좋았다. 오후 두 시에 짜장면을 먹으러 찾아뵀는데 딱 한 테이블뿐이었다. 간짜장을 시키자마자 질문이 날아왔다. "오늘 장사는 괜찮냐?"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미안하다, 사실 아는데도 물어봤다'는 눈빛이었다.
어제는 카페. 오늘은 중국집. 졸지에 '혼자서만 쪽박 차는 게 아니다' '나도 힘들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지역 상권에 퍼트리고 있었다. 사실 나도 그 부질없는 위로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아무리 비용을 아껴도 물거품
사실 장사도 인생과 같다.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도 있다. 대개의 자영업자들은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다. 쟁여놓을 수 있는 재료들은 시세가 저렴할 때 미리 하나씩 사두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휴가도 자주 간다. 우리 식구들도 주로 겨울에 쉬는 편이다.
우리끼리는 '가늘게 먹고 길게 싼다'고 표현한다. 일단 최대한 아끼고 버틴다. 팬데믹을 그렇게 넘겼다. 손해가 컸지만 일단은 보증금을 지키고 살아남았다는 데 위안을 삼았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물가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비용을 아껴도 물가가 오르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2년 전에 20리터짜리 식용유 한 통에 3만 2천 원 하던 게 지금은 6만 2천 원이다. 7만 천 원까지 치솟은 게 진정돼서 저 수준이다. 메밀국수에 쓰는 깐 쪽파는 2월 기준 한 단에 2만 6천 원을 육박했다.
하나가 진정되면 하나가 날뛴다. 식용유가 잠잠하면 양파가, 양파가 잠잠하면 쑥갓이 요동쳤다. 최종적으로 인건비가 뛰고, 음식 가격이 뛴다. 왜 음식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냐고 타박하는 어르신들도 식용유 시세를 털어 놓으면 조용히 계신다.
사실 가격을 올리는 과정도 굉장히 피곤하다. 가격을 인상하면 식당 메뉴판부터 배달앱, 지도앱 매장 정보까지 다 뜯어고쳐야 한다. 밤 10시에 퇴근해서 메뉴판 고치다 새벽 3시에 잠든다. 이런 건 열심히 해 봐야 손님들 지청구만 들을 뿐이다. 내 노력을 들여서 가게를 망가뜨리는 기분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 짓을 세 번이나 했다. 나도 싫다. 음식 가격 인상은 최후의 보루다. 그게 외식업의 상식이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이익은 그렇다치고 손해를 볼 순 없었다. 천 원 올릴 걸 500원 올리는 식으로 뭉개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미 최후의 카드를 세 번이나 썼다. 이제 남은 카드는 없다.
장사가 어떠냐고? 정치는 어떤데요?
상황이 이러니 불안함이 커져갔다. 적자가 두 달 이상 이어지면 가게가 아니라 내 인생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각종 비용들이 굶주린 독수리들처럼 날아와 여기저기 물어뜯는다.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비, 배달비 수수료, 카드 수수료, 손님들에게 나눠 준 서비스 쿠폰까지. 나중엔 내가 먹는 밥도 아깝다. 남이 먹는 밥까지 아까울까 봐 정신을 다잡는다.
사실 나도 다른 사장님들에게 묻고 싶었다. 장사는 괜찮냐고. 오히려 먼저 물어봐 주시니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지금 우리만 힘든 건 아니구나 싶어서. 지금의 불황이 개인이 아닌 환경의 문제라는 게 느껴져서. 부질없는 위안이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 요즘이다.
모두가 이 풍파를 잘 넘겼으면 좋겠다. "장사는 괜찮냐?"를 안부로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만큼. 나보고 착실하게 산다면서 짬뽕에 오징어 몇 점 더 얹어주고,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라면서 비스킷 하나 더 얹어준 분들이니까. 가끔 내가 돈가스에 새우튀김 한 마리씩 더 얹어주는 분들이기도 하고. 말하고 나니 좀 비루하지만, 내게는 이런 게 연대이자 동업자 의식이다.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에게 요즘 장사는 어떠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또 계시다. 선거 유세기간이 되면 많은 정치인들이 지역구 인근 시장과 마트에 찾아와 '장사는 좀 어떻습니까?'하고 묻지 않던가. 누군가는 (눈 씻고 본 적도 없는) 875원짜리 대파를 손에 쥐고, 다른 누군가는 생닭을 사면서.
얄팍한 성질머리 탓인지 자초지종도 맥락도 모르는 이의 뜬금없는 안부는 괜히 고깝게 보인다. 누군가 내게 와서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정치는 좀 할 만하십니까?'라고 물어주리라. 이게 말이야 방귀야, 싶을 테지. 당신들의 안부를 듣는 자영업자들의 심정도 아마 그럴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