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3월 30일), 미국 한 경찰관의 장례식이 가까운 곳에서 있었다. 그런데 장례식 준비 과정, 온 전체 마을의 애도 분위기를 보며 느낀 점이 많았다.
숨진 경찰은 조나단 딜러. 그는 한 살 아들을 둔 31세 젊은 경찰이었다. 동료와 함께 불법 정차된 차량을 검문하다가 총을 맞았단다.
차에서 내리라는 명령에 불복하며 방탄조끼 아래로 총을 쏜 범인은, 알고 보니 21차례나 체포된 적이 있는 전과자였다. 그는 총을 쏜 뒤 현장에서 체포돼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딜러는 총을 맞고도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범인의 총을 강탈하고 무장해제 시켰다고 한다. 이후 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지고 말았다.
온 마을이 함께 하는 애도의 방법들
미국 성조기는 50개 주를 상징하는 50개의 별과 미국 초기 역사에서 연방을 이루었던 13개 주를 뜻하는 흰색과 붉은색 줄무늬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성조기를 바탕으로 조금 남다르게 디자인된 깃발이 있다. 흑백의 성조기 가운데 파란 줄 하나가 들어간 'The Thin Blue Flag (가느다란 파란 줄의 기)'라 한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명 '제복의 공무 수행자' 깃발이지만 경찰관과 관련된 일에 자주 사용되다 보니 흔히 경찰 깃발이라고 알고 있다. 순직한 경찰 장례 기간엔 관공서에 조기가 게양되지만, 마을 곳곳에서 성조기를 걸거나 이 파란 줄의 깃발을 걸어 조의를 표하는 집들을 보게 된다.
파란 줄은 50개의 별 바로 아래에 배치되어 있다. 50개 주로 구성된 미국과 미국인을 악으로부터 방어하고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파란 줄 위는 질서와 법, 안녕을 뜻하고 파란 줄 아래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과 시민을 해하려는 공격을 뜻한다고 한다. 순직한 분을 알아도 몰라도, 연대의 뜻으로 파란 줄 깃발을 걸고, 또 해외에 파병된 가족이나 친구를 위해 파란 줄 깃발을 걸어두는 이웃도 보았다.
이번에 순직한 딜러 경찰의 장례기간에도 이 파란 줄 기를 걸어둔 이웃집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가로수에 파란 리본을 묶어 두거나, 집 앞에 파란 리본을 장식해 조의를 표하는 이웃도 있다.
뉴욕 메츠 야구팀은 경기 식전 행사에 고 조나단 딜러 경관을 전광판에 띄우고 잠시 추도 시간을 가졌다. 타임스퀘어 전광판에도 추모 화면이 올라왔다. 관련 뉴스와 호응하는 댓글을 읽고 있자니 공무를 수행하는 군인과 소방관, 경찰을 존경하는 문화에 새삼 감동을 받게 된다.
순직 경찰의 장례식엔 뉴욕시장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는 뉴욕 주지사와 트럼프 전 대통령도 참석을 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참석보다 더 뭉클한 광경은 장례식장에 모여든 수천 명의 전현직 경찰분들이었다.
수년 전에 이웃 학교 졸업생이 순직한 적이 있어 가까이에서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파란 제복을 말끔히 입은 수천 명의 경찰이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골목마다 슬픔의 바다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다.
딜러 경관의 장례식이 있는 교회에서 공원묘지로 이동하는 고속도로에는 3개의 교량이 교차한다. 이른 시간, 일부러 그 교량 근처를 지나가 보았다. 역시 소방차가 벌써부터 와 준비 중이었다. 사다리 차를 이용해 대형 성조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딜러 경관은 마지막으로 동료들이 준비한 세 개의 대형 성조기를 지나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도 소방차에 걸린 성조기를 보며 순직한 이를 다시금 떠올릴 것이고.
경찰관의 장례식은 백파이프 연주로 시작이 된다. 구슬프면서도 단단한 악기의 소리가 슬픔과 다짐이 오가는 장례 분위기에 잘 맞는다.
앵글로-색슨계에 비해 뒤늦게 미국으로 이주해 온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온 농부들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거친 노동판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일랜드계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심했단다. 그들 중 일부가 위험한 직업군인 소방관과 경찰관에 뛰어들면서 아일랜드계의 제복 공무직 비율이 늘어가 1900년대에는 경찰 공무원의 80% 이상이 아일랜드계라는 통계 조사도 있었다.
지금도 소방, 경찰 공무원 가운데에선 아일랜드계 가족의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래서 소방관과 경찰관의 장례식이 백파이프 연주로 시작된 계기라고도 하고, 점차 사회 국가적인 추모 행사에서도 백파이프 연주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 사회에서 영웅을 대하는 법
미국 ABC나 CNN 같은 전국구 주요 언론뿐 아니라 장례 기간 내내 지역 뉴스 채널은 딜러 경관과 가족, 이웃들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 또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멀리서 레모네이드 스탠드를 보았다. 집에서 만든 레모네이드를 아이들에게 직접 팔아보게 하는 일종의 음료 가판대이다. 주로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가판대를 연다.
집 앞 안전한 인도 위에 테이블을 두고 만들며 1컵에 1~2달러 정도를 받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주로 기부금을 모아 후원하는 용도이다. 지나면서 본 레모네이드 스탠드가 지역 뉴스에 나온다. 딜러 경관의 유가족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라 한다. 거금은 아니라 해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방식으로, 유가족에겐 따뜻한 위로의 봉투가 되지 않을까.
'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던가. 온 마을이 한 분의 순직 경찰을 어떻게 보내고 어떻게 애도하는지 아이들은 보며 자랄 것이다. 하루 종일 레모네이드를 팔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웃을 위한 마음도 키울 것이다. 미국의 순직 경찰이나 소방관에 대한 예우, 유가족을 돌보기 위한 기관과 지원은 어쩌면 어릴 때부터 키워진 마음이 제도로 세워진 것은 아닐지.
과거 2022년 '미스 어스'라는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 대표 최미나수 씨가 대회 인터뷰 심사 중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라 답한 것이다. 기후 변화 대응도, 세상의 다른 문제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공감에서 해법이 나온다는 현명한 답이었다.
뉴스로만 전해 듣는 소식이 아니라 한 순직 경관을 떠나보내며 아이들이 겪고 눈여겨보는 '사회적 공감과 애도'가 귀하게 여겨지는 기간이었다. '영웅'의 장례식은 그런 공감과 애도 속에 잘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