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이후 10년이 지났다. 이 말 앞에서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희망적인 사실은 십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는 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함께 경험했거나 지켜보았기 때문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내고 다른 누군가는 들으려 할 때 사회는 더디더라도 나아질 것이다.
보상을 해줄 테니 국가의 결정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눈물이 흐르는 뺨을 살피고 가제 수건을 모아 건네는 마음이 세상을 더 안전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동심원처럼 이어지고 퍼지는 이야기의 힘을 믿으며 오늘도 재난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만드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우리함께' 유해정 센터장을 만나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한 아이를 키우며 충북 옥천에 거주하고 있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 유해정입니다. 센터가 서울에 있다 보니 3년 동안은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겠다고 해서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는데요. 매일 아침 남편이 보내준 아이 사진 보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웃음).
- 옥천에 살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서울에는 마흔까지만 사는 게 결혼 당시 저와 남편의 목표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상임 활동을 오래 했는데요. 인권운동의 많은 의제는 인식을 바꿔야 가능한 것인데 인식 변화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주로 제도를 바꾸는 쪽으로 진행해왔어요. 소수의 인권운동이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건 제도 개선 운동이니까요.
하지만 정권에 따라 법이 소용없어지는 문제도 생겼고 사회적 인식이나 문화가 바뀌지 않는 느낌도 받았어요. 제도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지는 서울에서 벗어나 좀 더 작은 규모의 도시에서 구체적인 풀뿌리 의제들로 사람들과 만나서 변화를 일굴 수 있는 곳으로 가자는 얘기를 한 것이죠.
사실 모든 인적, 물적 관계가 다 서울에 있으니까 한 번에 옮기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건강한 시민사회 움직임이 있고 기차로 이동이 가능한 대전, 청주, 전주 정도 범위에서 일을 구해보려고 했는데 생존 자체가 쉽지 않더라고요. 남편과 저 둘 다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글을 쓰는 일을 하는데 지역 자체의 인구가 서울에 비해 훨씬 적으니 당연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죠. 1년에 교통비만 천만 원에 달할 정도로 서울을 오가야 생활할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렇게 옥천에서 몇 년 살고 어느 정도는 포기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환경에서 지역 활동만으로 생계를 보장받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서울에서 맺었던 관계들이나 요청을 생각했을 때도 옥천에서만 활동하는 게 과연 바람직할지, 하고 싶은 일에 적합한 판단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삶의 정주는 옥천에 두고 남들이 지역으로 여행 가듯 서울로 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여러 측면에서 재난피해자 권리에 대한 질적 도약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이 애도하고 실천하고 잊지 않겠다는 행동을 이어갔죠. 참사 피해자를 지지하고 이들과 연대했던 활동가들 중심으로 나왔던 가장 큰 목소리는 애도가 다양한 재난참사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 말은 두 가지 측면을 가져요. 세월호 참사가 이런 도약을 이끌어내기 전에도 많은 재난이 있었거든요. 이를테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와 2013년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등이 있죠. 모두 참여연대가 앞서서 도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에는 재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세월호와 연결되지 못해서 얼핏 세월호 참사가 모든 도약을 이끌어낸 최초의 시도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세월호를 통해 재난을 들여다본 사람이나 다양한 참사 피해 생존자를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전 참사의 경험을 통해 우리의 잘못이나 권리 향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수많은 연대와 애도, 조력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참사에도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추모, 기억 사업을 주도적으로 할 416재단이 만들어졌는데요. 재단이 만들어져야 장기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이어갈 수 있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참사 피해자를 조력하며 416이 세월호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끝나지 않고 다양한 참사의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 과정에서 계속 재난피해자를 옹호하는 센터를 세우는 목표를 3년 전부터 세웠고 그 결과로 올해 1월에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개소했습니다.
- '우리함께'라는 이름에서 우리를 이루는 주체는 재난피해자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센터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센터는 인권운동가, 법조인, 행정학자, 연구자, 심리상담사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만들어졌어요. 2024년 1월 개소를 목표로 정하고 이름을 공모했어요. 센터의 시작이 더 의미 있으려면 센터 이름을 시민과 함께 짓는 것부터라고 생각했죠.
두 달 정도 공모를 통해 나온 이름 중 '우리함께'가 압도적인 투표율로 선정되었습니다. 다들 어떤 의미로 뽑으셨는지 궁금했는데 이유는 안 적으셔서 잘 모르겠네요(웃음). 아마 두 가지 맥락일 것 같아요.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지 않고 평등한 존재로서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첫 번째 맥락이에요.
보통 피해자라고 하면 피해 당사자,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 가족 정도로 피해자 범주를 상상하게 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직도 세월호를 얘기하면 매일 텔레비전 앞에서 울었던 기억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잠수병을 앓고 있는 잠수부나 구조활동 이후로 생업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이태원 참사의 현장 목격자, CPR을 도왔던 시민들도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내가 피해받았으니 지원해줘"가 아니라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이 재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해 문제해결을 요청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두번째 맥락에서 '우리함께'라는 이름을 지은 것 같아요. 수동적이고 나약한 피해자 범주가 아니라 사회를 바꿔 가는 데에 목소리를 내는 권리를 확장하는 것으로 이 이름을 선택해주신 것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 센터를 열며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사로 사람책 '재난을 담는 마음'(김일란 영상감독, 홍은 전 기록활동가, 김승섭 교수), 사진전 '너의 기억이 나에게 닿는다면'을 진행하셨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 진행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기획했어요. 이미 발기인 대회를 했는데 한 달만에 개소식도 꼭 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무자 입장에서 고민이 많았죠. 늘 모이는 이들만 또 모이는 개소식은 큰 의미가 없다고 느꼈어요. 그 대신 시민들이 올 수 있는 행사를 하고 싶었어요. 재난 피해자가 누군가와 연대하고 싶을 때, 일상적으로 궁금한 게 생길 때 물어볼 수 있는 센터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어요.
이를 위해서는 고립되지 않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가장 중요하죠. 시민들이 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했어요. 중앙에 있던 사무실을 안쪽 회의실로 옮기고 가볍게 왔다가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전시회를 열면 적어도 활동가라도 들러서 차라도 마시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행사가 없더라도 전시회를 보러 오시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공간을 구성했어요.
그런데 전시는 보통 감상이 자기에게만 남잖아요.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 큐레이터, 관람객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그들의 기록물, 재난과 참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실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어요. 그래서 김승섭, 홍은전, 김일란 감독에게 부탁드렸습니다. 참석자 규모는 15~20명 정도를 바랐어요. 규모가 작으면서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은 채로 용이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그 과정에서 강연자와 참석자 모두 힘을 얻거든요.
김일란 감독의 행사 날이 기억에 남아요. 한 시간 정도 도란도란 참석자들이 사연을 나눴어요. 한 분께서 혼자 오셨는데 "누군가랑 같이 오고 싶었다. 혼자 오는 게 외로웠고 이런 이야기를 같이 나눌 친구가 없는 게 아쉬웠는데, 자리가 아담하게 구성돼 있어서 맘이 편했다"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이어서 함께 온 다섯 분 중 한 분이 "이런 자리에 누가 올까?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열심히 기록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아무도 안 오면 슬프니까 나라도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시는 거예요. 혼자 갈까 며칠을 고심하다 페이스북에 같이 갈 사람을 찾는 글을 올렸는데 친구들이 같이 가자는 댓글을 달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오신 친구분께서 "쟤가 저런 글을 올릴 애가 아닌데 올린 걸 보니까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혼자 보내지 말아야지" 이런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셨어요.
저는 이렇게 사연이 이어지는 흐름이 참 좋았어요. 혼자 온 사람이 서걱거리는 맘을 고백하고 그 뒤에 혼자 가려고 했던 사람이 친구를 모았던 마음을 이야기하고, 그 친구와 함께 온 애잔한 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이어졌죠. 이렇게 다들 각자의 사연을 이어갔어요.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서로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 옆자리를 살피고 맘을 보탰다는 것이 느껴졌죠.
또 다른 분은 석사 논문을 막 마무리하고 오신 클래식 전공 대학원생이었어요.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비슷한 나이인데 참사 이후에 마음이 좋지 않아 세월호 추모곡을 분석하셨대요. 150여 곡 정도를 모아서 분석하고 어떤 시기에 어떤 노래가 나왔고 어떤 경향성이 있었는지를 분석했다고 해요. 재난을 다른 측면에서 기록하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버텨왔는지 궁금했다고 하셨어요.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게 많이 기억나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저는 구술 기록을 많이 했던 활동가여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과분하지만 대체로 비슷한 위로들을 받게 돼요. 예컨대 "제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셔서 감사해요." 같은 위로요.
이번 개소식에서 들었던 얘기들은 다른 결의 위로처럼 느껴졌고 기록하는 사람들을 살펴주려는 위로라는 점에서 좋았어요.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온다는 게 불편함과 낯섦에 대한 용기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되면서 큰 위로를 받았어요.
- 센터 소개에 '재난 피해자들의 사회적 치유에 힘을 보태겠다'라고 되어 있어요. 피해자에게는 어떤 사회적 치유 과정이 필요할까요?
재난 피해자가 겪는 고통은 개인 삶의 실존적 고통이 아니거든요. 국가가 안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거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일상이 파괴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회적 고통을 개인에게 쉽게 전가하곤 하는데, 사회가 만들어낸 고통이니 사회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치유'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요. 모든 재난 피해 가족은 같은 말씀을 하세요. 왜 이 참사가 일어났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알고 싶다고. 진상이 무엇인지 알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알아야 어디서 뭘 고칠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시스템의 결함과 공백을 찾기 위해서는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해요.
다음으로 피해 회복에 관해 말하자면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그 직접적인 고통을 해결할 방식은 없잖아요. 그러니 우선 경제적으로나마 배·보상을 하고, 적합한 형태의 치유를 받게 도와야죠. 교육이나 직업의 단절도 보완해야 하고요. 돌봄에서 공백이 생기면 보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2차 침해를 회복하기 위해 구조적, 문화적 개선이 필요하고 피해자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하는 일 역시 너무 기본인 것 같아요.
피해자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힘든데 왜 매번 다른 참사를 마주해야 하고, 이미 피해받은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을 도우려 나서야 하는지 종종 의문이 생기기도 해요. 피해자들에게 너무 중요한 건 떠나보낸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잘 보내는 것인데 말이죠. 떠나보냄으로써 발생한 삶의 공백과 균열을 다른 관계로 메우는 것이 중요한데도 지금 사회는 피해자들이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밟을 수 없게 하고 있어요.
피해자들이 기존의 일상으로 못 돌아가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죠. 네 명이 매일 둘러앉던 식탁에 한 명이 없는데 어떻게 이전으로 돌아가요. 대신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해야 합니다. 참사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가장 먼저 잃는 것이 자기결정권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문제해결을 얘기했을 때 회복의 수준까지도 국가가 결정하니까요. 피해자가 회복의 정도와 애도의 시간을 결정하고 사회는 지원 방법을 논의하면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적 치유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충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해요. 듣는 사람도 그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지금은 재난으로 일상이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귀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듣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건 모두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회가 아픔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근본적인 문제해결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듣는 건 너무 중요합니다.
애도의 시간을 국가가 너무 짧게 결정해버리니 회복이 더 어렵죠. 죽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이 애도할 시간마저 속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회를 바꾸고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피해자가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내고 그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후에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이어가도 괜찮지 않을까요.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듣는 사람에게도 질문과 이야기가 생겨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센터를 만든 이유도 재난피해자의 이야기를 꾸준히 듣기 위해서예요. 유가족 열 명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게 아니고, 피해자 스무 명을 인터뷰해도 참사를 다 아는 게 아니니까요.
사실 세월호 유가족만 해도 어림잡아 천명 정도는 될 텐데 그분들을 만나보면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본 적이 없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매뉴얼 제작 과정에서 말씀을 나눴는데 어떤 분께서 아직 아이가 집에 있는 것처럼 환청과 환시를 느낀다고 하셨어요. 이 증상을 얘기하니까 사람들은 병원에 가라고 하고, 상담사는 약을 처방했대요. 그래서 그 얘기를 그 후로 제대로 한 번도 못 하셨대요.
이태원 가족들도 매일 투쟁하느라고 서로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유가족들이 진짜 하고 싶은 자기 얘기를 못 했다는 사실이 느껴져서 슬펐어요. 사회적 치유는 이 사람들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와 시간, 진심으로 들으려는 태도,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사회가 노력할 때 도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한겨레 인터뷰 기사를 보니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매뉴얼 대신 재난 피해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은 '권리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으신가요?
416재단에서 만들었던 피해자 권리 매뉴얼이 있어요. 다만 그 매뉴얼에는 선언적인 문구들이 많아서 피해자는 참사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은 질문이 많이 남았죠. 당시 매뉴얼을 썼던 분들과 사람들을 더 모아서 보다 구체적인 형식으로 제작하려고 합니다. 올해 8월 발행이 목표예요.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시민단체 수도 줄어요. 그래서 참사가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이후 과정이 달라지는데요.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는 주로 수도권 지역 사람들이죠.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는 그래도 충북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서 대책위를 만들었잖아요. 제천 화재 참사에서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지역 시민단체가 없다보니, 피해자분들은 어떤 시민단체로부터도 조력을 받지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피해자들은 처음 경험한 재난이니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죠. 그래서 7년이나 지난 지금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슈화도 잘 안 되죠. 지역단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도 담길 수 있도록 Q&A가 담긴 사례집 형태가 될 것 같아요.
또 조력이라고 하면 보통 법적 조력만 떠올리는데 그게 다는 아니거든요. 국가와의 합의 문서가 권한이나 효력이 있는지, 어느 정도 수준의 합의인지 알아보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그런데 핸드폰 하나 열어보는 것도 법률적 절차가 필요한데 피해자는 황망한 와중에 그런 절차를 알기 어려우니 법적 지원이 필요하죠. 이럴 때 변호사들이 조력할 수 있는 내용도 한 부분으로 들어가고 피해자가 어떻게 법적 조력자에게 요청할 수 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내용도 들어가요. 즉 조력을 하는 사람과 조력이 필요한 사람 모두를 위한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죠.
저는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들려주는 참사 초기에서의 대응 부분을 맡아 정리하고 있어요. 죽은 아이의 첫 생일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아이의 부고를 어떻게 알릴지와 같은 내용이 들어갈 것 같아요. 애도에 정답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읽는 분들이 좀 안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꼭 매뉴얼이 아니라 사례집처럼 만들어지고 있는데(웃음), 책에 담기지 않은 내용도 내부적으로는 아카이빙 해두려고 합니다.
- 사회적 재난·참사와 그에 대한 국가의 대처는 피해자와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느껴요. 참사는 피해자와 그 가족만의 일이 아니니까요. 참사 발생 후 시민들이 잃어버린 권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함께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9.11테러 이후 학문적, 공식적으로 참사를 지켜본 시민도 피해자라는 내용이 확립됐어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외상이 남을 수 있고, 실제로 아직까지도 9.11참사로 힘들어하는 시민분들의 상담요청 전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이렇게 꾸준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구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해요.
물론 모두가 트라우마와 외상 피해자라고 하면서 피해자의 경계를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세월호 희생자의 생일날 목숨을 끊은 희생자의 친구처럼 고통과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거든요. 이분들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이분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요.
사회적 참사로 사람들이 잃은 두 가지 권리가 있어요. 첫 번째는 안전할 권리에요. 7·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 때 친구를 잃었는데 이태원 참사 때도 친구를 잃은 청년이 있어요. 10대, 20대를 모두 참사로 힘들어하며 보내는 거죠. 그분이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게 20대가 하기에는 너무 묵직한 말이라 맘이 아프더라고요. 이렇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당연하다는 듯 일어나지만 사회는 빠르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가요. 안전에 대한 감각도 없고 안전하지 않은 게 정상처럼 자리 잡은 사회가 돼버린 거죠.
잃어버린 두 번째 권리는 애도할 권리예요. 사회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니까 좀 더 오래 슬퍼하고 머무르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소외되는 것처럼 느낄 수밖에 없어요. 감정이입이 심하다고 슬퍼하는 사람을 탓하기도 하죠. 우리는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요. 마음을 잘 추스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간을 빼앗긴 채 묻고 가니까 어느 순간 터져도 이상할 게 없죠. 서럽고 불편한 감정을 계속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모두가 함께 애도할 시간, 공간,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은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올해 초 센터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 연계해서 참사와 서사라는 수업을 열었어요. 재난참사 피해자가 꾸준히 특강을 하는데요. 수강생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과제가 있어요. 센터는 학생들의 과제물을 받아서 카드뉴스를 만들고 전시해 알리려고 해요. 10대, 20대의 감성과 시선으로 재난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새로운 기록의 방식을 만드는 것도 좋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노력일 것 같아요.
-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꿈꾸는 변화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재난을 예비하고 정부 시스템에도 대응하겠지만 시민과 재난피해자의 접점이 많아지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요. 얼굴과 목소리가 있어 온기를 전하는 '구체적인 시민'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혐오 댓글을 다 읽는 부모님들이 계세요. 뭐라고 하는지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읽으시는 거예요. 오히려 분노와 억울함으로 활동할 힘을 내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렇게 험한 말들을 보고 듣다가 애도하는 시민의 포옹에 온갖 험한 말이 싹 녹는 경험을 하신대요.
혐오하는 사람은 얼굴과 목소리를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않잖아요. 저는 얼굴을 내보이고 애도하며 사람의 온기를 전하는 구체적인 시민들을 많이 발견하고 싶어요. 제가 센터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그런 구체적인 학생, 시민, 연구자를 만들고자 합니다. 실무적인 완비가 되면 젊은 재난피해자들, 또는 피해자의 형제자매들이 센터에서 일하게 되어도 좋겠어요.
-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알려주세요.
앞서 말했듯 '구체적인 시민을 만들자'라는 의지로 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에요. 지금 재난피해자권리센터에서 진행하는 전시에도 많이 와주시면 좋겠어요. 전시장 벽면에 8개의 재난참사에 관련한 내용이 붙어있어요. 작년 말에 재난참사피해자연대도 발족했어요. 서로의 활동을 지켜보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어요.
지난해 생명안전버스 활동을 통해 참사 피해자들과 시민이 추모일에 참사 장소를 방문하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올해도 대구지하철참사 21주기 때 다른 피해자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시민 문화제를 열고 추모식을 진행했어요. 세월호참사 관련해서는 작가기록단 이름으로 가족협의회랑 함께 책을 냈습니다. 두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도 계획 중입니다. 서로 동심원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저희는 매달 재난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고 기금을 지원하는 긴급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월 8일까지 모집해서 25일이면 지원해드리고 있어요. 연속성 있는 사업을 하고자 하니 주변에도 널리 알려주세요.
- 마지막으로 복지동향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도움이 정말 필요합니다. 많은 사회복지 전공자분들이 재난 피해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복지서비스의 원칙과 절차, 제도, 더 나아가 제공된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까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참여한 416 세월호 작가기록단이 발간한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세월호 생존자와 형제자매, 그 곁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요. 이런 책도 많이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열 명이 전부 다른 시간과 속도, 과정을 거치며 참사 이후의 시간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저도 새삼 놀랐고, 모르는 게 아직 많이 남았음을 다시 깨달았어요. 이런 책을 같이 읽는 자리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피해자를 문서로만 만나지 않고, 제가 만난 피해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늘 생각하려고 해요. 앞서 말했던 사회적 치유에 관한 얘기와 우리가 지금 나누고 있는 얘기 모두 사실 편향적일 수 있어요. 말하기 싫은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고 계신 분들도 많거든요.
다만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른 입장과 관계에서는 어떤 일을 같이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모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회복지 영역의 이야기도 보탤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좋겠어요. 그것만 해도 시야는 넓어지고 서로 서로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아요. 사회복지를 포함한 다양한 의제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함께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지원, 박가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가 인터뷰 및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