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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라는 표현 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제 별명은 '별헤'입니다. 언젠가 저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지어주고 싶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것의 의미는 그가 살아갈 모습에 대한 기원일 텐데, 그 근본은 결국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을 아이에게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사용해도 되겠다고 말입니다."

"벼레? 별해? 레예요? 해에요? 헤에요?"
"어이 헤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혹은 삶이 무너질 것 같은 힘든 일이 닥쳐도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자는 뜻입니다."
"오오~ 자기랑 딱 어울리네."

   
우리는 별명으로 소통합니다

2월 워크숍 때 교무부장으로서 처음으로 동료 교사분들께 별명 짓기를 요청했다. 신학기가 시작되면 고교학점제 관련 협의를 격주로 진행할 텐데 가장 먼저 별명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장내가 술렁였다. 별명으로 소통하기를 원하는 이유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대신 과제로 밀어붙였다.

신학기 일감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수업이라는 옷깃을 여미기에도 벅찼던 시기를 겨우 흘려보낸 후, 연이어 2025학년도 교육과정을 짜기 위한 협의회를 시작했다. 잊었을까 하여 중간에 몇 차례나 별명 짓기 활동에 대해 광고를 하고 드디어 3월 29일 금요일 오후에 실제적인 회의에 돌입했다. 예고했던 대로 가장 먼저 별명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협의회 시작 전달하고 토의할 것이 많았지만 우선 별명을 함께 나눴다.
협의회 시작전달하고 토의할 것이 많았지만 우선 별명을 함께 나눴다. ⓒ 안사을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여 귀찮은 요구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할 만도 하건만, 정말 고맙게도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별명과 작명 이유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다. '별헤'라는 별명을 말한 나를 처음으로 하여 반시계 방향으로 발언권이 돌아갔고, 교장 선생님께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제 별명은 예전부터 호빵맨이었어요."
"호빵맨? 닮았다. 많이 닮으셨어요."
"딱이네. 딱이야."


모두 하나같이 작은 웃음을 터트릴 만큼 교장 선생님은 정말 호빵맨처럼 생겼다. 청년도 아닌 사람이 양 볼에 항시 띤 홍조도 그렇고, 살찐 체형이 아닌데도 절대 갸름하지 않은 얼굴형도 그렇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작명의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호빵맨은 자신의 얼굴을 뜯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죠. 정말 멋진 친구입니다. 호빵맨은 세균맨과 항상 싸우지만 그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행동과 존재를 분리하는 캐릭터이지요. 자신을 공격하는 존재이고 다툼의 상대이지만 호빵맨은 세균맨이라는 존재를 존중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교훈을 호빵맨이 먼저 실천하고 있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특히 열두 번도 바뀐다는 청소년들을 대하는 우리로서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연이어 들어 본 다른 선생님들의 별명 또한 재미 속에 숨겨진 의미가 많았다. 큰 원을 그려 앉은 우리의 안에 점차 따뜻한 햇살이 드리우는 듯했다. 일상에서는 알지 못했던 내면을 발견하기도 했고, 혹은 평소 모습이 별명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상황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인상 깊었던 별명을 몇 개만 나열하자면 아래와 같다.
 
연두: 숲이나 나무, 풀들을 보면 보는 그 자체가 행복하고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동을 받아서.
양파소녀: 까도 까도 매력이 넘치는 소녀같은 사람. 나를 알려고 하면 까봐야 한다. 가장 안쪽에 중심, 힘이 있다. 죽지 않고 팔팔 살 수 있는 힘이 거기에 있다.
하하: 우리 인생이 웃을 일이 있어서 웃겠느냐.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긴다. 일본어로 엄마를 '하하'라고도 하고. 어찌 '하'의 한자를 따기도 했다.
바다사자: 아주 오래된 별명. 강치를 바다사자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도에서 멸종한 강치. 독도 생각을 할 때마다 강치 생각이 난다. 내 모습과 비스무리하기도 하고..

큰 변화를 예고하다

한바탕 웃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다 보니 금세 모든 이의 별명을 나누었다. 이제 주된 안건 협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2025학년도부터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하는 학년이 입학하기 때문에 새로운 지침에 따른 교육과정을 짜야 한다. 더 복잡한 것은 1학년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을, 2학년과 3학년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중첩되어 돌아가는 것은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있는 익숙한 일이기도 하다. 보통 수업시수가 많이 달라지는 등의 영향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에 있을 변화는 대변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만큼 커다랗다. 일명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가장 잘 요약한 표현은 바로 '대학교처럼'이라는 말이다. 학생들은 학교가 제공하는 필수 과목을 들으면서 또한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해서 듣는다. 개인별로 시간표가 달라질 수 있으며 공강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상상처럼 학교를 운영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교사 수도, 교내 공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졸업을 위해서 들어야 할 학점의 수가 정해져 있으며 미이수 등으로 인해 학점을 채우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다. 현재까지는 수업일수만 채우면 진급할 수 있었지만 고교학점제 체제에서는 각 과목별로 필수 이수 조건을 채워야 이수할 수 있다. 언뜻 들어도 고등학교 현장이 매우 달라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 학교(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본격적인 학기제로의 전환'이었다. 쉽게 말하면 한 과목을 한 학기에 마쳐야 하고, 한 번 들은 과목은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지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다.

우리 학교는 지금까지 국어, 영어, 수학을 한 학년에 한두 시간만 배치해왔다. 예를 들어 국어는 총 세 시간을 배우는데 3개 학년에 걸쳐 한 시간씩 공부했다. 대신 낭독이나 문화예술 같은 대안교육 전문교과를 더 배운다.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낮추고 공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방편임과 동시에 보다 실제적인 지식을 체득시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2025년 신입생부터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한국사, 과학을 무조건 한 학기에 3시간씩 들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2, 3학년 때 다양한 선택과목을 신청하기 위해 1학년 때 모두 들어야 하기도 하고, 학기제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 한 학기에 한 과목을 모두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협의회를 위한 준비 모임 수석교사, 교무부장, 학년부장이 함께 모여 바뀌는 교육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협의회를 위한 준비 모임수석교사, 교무부장, 학년부장이 함께 모여 바뀌는 교육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 안사을
 
다른 교사들에게 이러한 조건들과 우리 학교에서의 적용점, 변화가 예상되는 점 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5명의 부장 교사가 먼저 모여 공부했다. 가능한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와 3학년 부장 선생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동료 교사들의 표정은 시쳇말로 '멘붕'이었다.

특히 우리 학교가 자랑으로 삼는 '인턴십을 통한 배움' 교과와 '통합 기행' 교과는 3년 6학기에 걸쳐 반복, 발전되는 교과인데다가 2022 개정 교육과정 내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과목이기에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서 교과목으로 인정받아야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최소 3년은 걸릴 것이다.

유일한 대안은 교육부가 고시한 교과들 중에서 비슷한 과목 6개를 찾아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어찌어찌 구성한다 해도 우리가 그동안 쌓아왔던 정체성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설명 3학년 부장교사가 편제의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명3학년 부장교사가 편제의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안사을
 
"우리의 1학년 과정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치유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국영수사과, 한국사를 한 학기에 18시간을 배치하라니요."

바람에 이어 새벽별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는 일반고와 다르잖아요. 우리의 특성과 사정을 생각하지도 않고, 어떻게 전국의 인문계 고등학교들과 같은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짜라고 하는 거죠? 인문계 학교는 목표가 입시라서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아니잖아요."

연수와 토론의 종료로 목표한 시각이 넘도록 교사들의 열띤 발언이 지속됐다. 특히 '호빵맨' 교장 선생님은 우리가 반드시 교육부와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전국에 다섯 개밖에 없는 공립형 대안 고등학교의 특성을 아직 고려하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온 것이니 우리의 견해를 전달할 필요도 있다고.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말아야 할 것

지금까지 교육과정의 개정은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특히 고교학점제는 학교의 자율성은 물론이고 학생 개인의 선택권과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을 명실상부한 목적으로 한다. 정말 놀랍게도 고교학점제는 대입 몰입 교육을 막고자 설계한 제도이다.

하지만 학력 위주의 사회 풍토가 변하지 않는 이상 입시 위주의 교육방식은 바뀔 수 없고, 오히려 고교학점제는 '입시 맞춤형 교과 선택'의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일반계 고등학교들이 그러한 노선을 선택했다. 심지어 대안교육을 실시하는 특성화 학교에서도 그런 모습이 꽤 보인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발빠르게 대처하고 기민하게 맞춰나가야 뒤처지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보다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고민 없이 무턱대고 변화를 수긍하기만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변화를 제시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변화가 원래의 목적을 잃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고민해보아야 한다. 시작은 숭고하였으나 기형적인 사회의 구조로 인해, 결국 과거의 불균형을 재생산해낸 정책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긴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격주로 2시간씩 전 교원이 모여 어떻게 하면 최대한 교육과정 개정을 연착륙시킬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댈 것이다.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대부분 열의를 띤 교사들이지만 생각과 철학이 한 갈래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사명은, 모두 옳지만 서로 다른 수많은 생각과 방향을 한데로 모으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결코 변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한 학생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다. 또한 우리가 가르치는 것들이 한 인격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믿음이다. 이 두 가지를 굳건히 세운 채 단위학교가 꾸준히 만들어나가고 있는 학교 특색 사업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규칙과 제한은 일종의 틀이다. 그 틀을 채우는 시작점은 반드시 단위학교 교사들이 세운 교육철학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교육부와 교육청이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일방적으로 규칙과 한계를 하달하기보다는 각 학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단위학교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짤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언론창>에도 실립니다.


#고교학점제#2022개정교육과정#대안교육#미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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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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