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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시민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 모니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정권 심판의 민심은 무서웠다. 4·10 총선 결과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는 108석을 얻었고 야권은 192석을 석권했다. 민주화 이후 없었던 정권 5년 내내 여소야대의 정국이 실현된 것이다.

사실 선거 과정을 돌이켜보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긍정적인 쪽으로 이슈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의 공천은 '비명횡사'라는 말과 함께 비판의 도가니에 올랐고 연합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도 일부 후보들을 향한 비판 여론에 서둘러 후보를 교체했다. '2찍 발언' 등 이재명 대표의 설화와 일부 후보들의 막말 및 부동산 논란도 있었다. 2월까지만 해도 여권이 과반수를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났다.

곤경에 처한 민주당을 도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민생토론회라는 구실 아래 주요 선거 접전지에서 해당 지역에 대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던 윤 대통령은 비록 관권선거라는 비판은 받았지만 이외에는 별다른 이슈를 만들지 않으며 자신을 향한 비판 여론을 알고 있는 듯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여당 의회 장악 두렵게 만든 이종섭·황상무 사건

그랬던 윤 대통령은 3월이 되자 선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던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출국 금지 상태에도 주호주 대사로 임명돼 출국을 앞둔 것이 시작이었다. 사실상 도피성 출국인 만큼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고 야권 역시 공세에 나섰다.

그런 가운데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며 1988년 오홍근 기자가 군에 비판적인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정보사령부 군인들에게 회칼 테러를 당한 것을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실이 언론에 적대적인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시민사회수석이 대놓고 특정 언론을 거론하며 테러를 언급했다는 것에 국민은 기함했다.

안하무인이 극에 달한 정부를 향해 비판 여론은 날로 거세졌다. 야권 역시 때를 놓치지 않고 공세에 나섰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 전 장관을 향해서는 즉시 귀국을 요구했고 황 수석에 대해서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대통령실은 이 전 장관의 귀국은 부적절하고 황 수석의 자진사퇴론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며 한 위원장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계속되는 비판 여론에 이 전 장관은 얼마 안 가 귀국했고 결국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대사직을 사퇴했다. 황 수석 또한 자진사퇴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다 해결됐다"고 말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달랐다. 과연 대통령실이 선거가 코앞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이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여권이 의회 권력까지 장악한다면 대통령실을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걸 국민 모두가 느낀 것이다.

대파로 결정타 날린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 윤 대통령이 결정타를 날렸다. 바로 '대파 875원' 발언이다. 고물가로 신음하는 와중에 민생과 떨어져도 너무나도 동떨어진 이 발언은 지금껏 윤 대통령이 주관했던 '민생'토론회가 관권선거의 일환이었음을 자백하는 꼴이었고, 정부가 국민의 살림살이에 관심이 없고 무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렇게 대파는 이번 총선의 명실상부한 아이콘이 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대파의 투표장 반입을 금지하자 사람들은 대파 키링을 만들어 투표장에 나섰다. 외신은 앞다투어 한국의 총선을 대파가 휩쓸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옹호하고자 한 여당 후보는 "875원은 한 단이 아닌 한 뿌리 가격"이라고 말했다. 해당 후보는 막말 논란을 빚은 야당 후보에게 패했다. 결국 대중에게 있어서 두 후보의 막말 중 더 분노를 일으킨 건 다름 아닌 '대파 한 뿌리'였던 셈이다.

윤 대통령이 여권에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갈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선거를 불과 9일 앞두고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가 2천 명이라는 증원 숫자를 너무 고집한다는 비판이 여권에서도 나온 만큼 많은 이들이 정부가 의료계와 타협을 시도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전망과 달리 윤 대통령은 50분이 넘는 담화의 대부분을 2천 명이라는 정부 계획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제대로 된 논리와 근거도 없다"며 비판했고 결국 의대 증원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강대강 대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국민의 목숨이 달려 있음에도 타협과 대화 대신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2천 명을 고집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분노와 실망 그리고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곧바로 투표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번 총선에서 야권 승리의 일등공신은 사실상 윤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1일 윤 대통령은 "총선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 쇄신의 출발은 다름 아닌 '본인부터 변하는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윤석열#22대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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