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기 좋은 날이 계속된다. 옷이 얇아지면서 허벅지에 붙은 살들로 바지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치마를 입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인정하고 운동해서 살을 뺄 때다.
이번주부터 런데이(달리기 운동) 어플을 깔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30분씩 두 번 달렸는데, 뭔가 한 것 같다. 뿌듯하다. 내친김에 헬스장에 갔다. 어제 오르막을 뛰어서 뭉친 다리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남자들이 부러워할 몸이네요"
헬스장에 갈 때마다 인바디를 체크한다.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근육량의 변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몸무게는 운동을 하나 안 하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체지방률과 근육량은 주식차트처럼 오르락 내리락이다.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 헬스장에서 인바디를 쟀을 때 근육형 과체중 1단계가 나왔다. PT를 받으며 힘들게 운동하자 근육형 과체중 2단계가 되었다. 식이요법을 병행하지 않아서 몸무게는 그대로였는데, 근육량이 늘었다. 이때 만났던 사람들에게 살 빠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근력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잘 붙었다. PT선생님은 '남자들이 부러워할 몸'이라고 했다. 나는 여잔데, 야리야리하고 싶어서 헬스를 시작했는데, 근육 빵빵한 힘센 언니로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었다. 살을 빼고 싶으면 '천국의 계단' 운동을 30분씩 하라고 하는데 그건 도저히 못 하겠다. 아무 의미 없이 걷거나 오르는 건 재미가 없었다.
하체가 튼튼한데 하체운동만 해서 내 하체는 이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을 늠름함을 자랑한다. 원래 튼튼했던 다리가 울퉁불퉁한 게 꼭 축구선수 같다. 남편의 종아리는 점점 얇아지고, 성난 근육을 가진 내 다리는 점점 튼튼해진다. 가끔 내 다리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종아리가 얇은 사람들이 내 다리를 보며 하는 소리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건강한 것도 좋지만 지금 당장 예쁜 옷을 입고 싶다고 대답했다. 뭘 모르는 소리 한다고 언니들은 말한다. 얼마나 나이가 들어야 내 다리가 빛을 발할까.
그래도 근육형 과체중인 건 좋았다. 헬스장에서 20Kg짜리 원판을 번쩍 들어서 봉에 끼우고 운동하는 것도 좋다. 평소에는 과하게 넘쳤던 힘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헬스라는 운동이 좋았다.
어느새 사라진 근육들
좋은 것과는 별도로 운동을 가지 못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오늘 오래간만에 헬스장에 갔다. 운동 전에 인바디를 쟀다.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 근육형 과체중 2단계였던 내가 경도비만으로 나왔다. 종합 평점이 91점에서 74점으로 내려갔다. 처음 보는 숫자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지? 눈을 의심하며 결과지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근육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반면 체지방률이 늘었다. 복부비만율이 0.75에서 0.98로 늘었다. 요즘 배가 좀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장지방량도 늘어서 균형형에서 경계형으로 막대기가 쭉 뻗어 있었다.
맥주가 문제였다.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개를 7000원에 팔아서 좋아라 하며 12개를 사 왔다. 저녁 할 때마다 한 두 개씩 맥주를 마셨다. 범인은 맥주가 틀림없었다. 한순간의 갈증 해소를 위해 내 근육을 내팽개치고 있었다.
앞으로 날은 점점 더워질 것이다. 더울 때 숨찰 때 맥주만큼 좋은 건 없다. 술을 끊으면 될 것 아니냐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순간의 쾌락일지언정 유일한 낙으로 남은 맥주를 차마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열심히 운동하겠다고.
일단 일주일에 한 번으로 맥주 마시는 걸 줄인다. 당장 오늘 모임까지는 마시고 내일부터 실행한다. 헬스장에서 요령 피우지 않고 근력운동을 열심히 한다. 주 3회 런데이어플과 함께 달리기를 한다. 집 나간 근육이 돌아올 때까지 근육형 과체중이 찍힐 때까지 쭉 지속한다.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내내 이 생각만 했다. 근육형 과체중에서 경도비만으로. 헐. 이럴 수가. 방심은 금물. 제목과 글을 생각하며 운동하다 보니 집에 올 시간이었다. 헬스장에 간 덕분에 글감이 하나 생겼다. 상태점검도 하고 경각심도 갖고, 방심했던 몸뚱이도 돌볼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헬스장에 가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