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사건' 1회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에 다녀온 박종화 <뉴스타파> PD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후기를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의 게재 요청에 박 PD가 글을 다시 정리해 보내와 싣습니다.[편집자말] |
지난 금요일(19일), 동료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불려갔다. 보도영상을 편집하는 편집기자와 보도영상을 찍는 촬영기자인 나의 동료들을 법원 증인석에 세운 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다.
지난해 9월부터 <뉴스타파>는 무려 '대선 여론 조작'이라는 혐의로 압수수색 등 수사를 받는 중이다. 이번엔 법정까지 불려가 증인신문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아무 죄도 없고 할 말도 없는 동료들이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자, 검찰은 동료들을 억지로 불러내기 위해 법원까지 활용해 신문했다. 일명 '공판 기일 전 증인신문'이다. 법원을 활용해 검찰이 증인을 신문하는 방식은 과거
일부 위헌 판결도 있고, 이런 식의 수사는 이례적이라고 한다.
문제는 검찰 수사 장소로 법원이 활용되다 보니 기자들이 방청석에 몰려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공개 재판처럼 검찰 수사가 생중계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검사석에는 빨간넥타이와 초록넥타이를 맨 남성 검사 둘과 비교적 젊어보이는 여성 검사, 이렇게 세 명이 들어왔다.
지난해 9월 <뉴스타파> 사무실 압수수색 때 일면식이 있는 검사들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검사와 수사관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려 생김새는 볼 수 없었다. 반면 나의 동료 편집기자(증인1)와 촬영기자(증인2)는 10여 명의 기자들 앞에서 얼굴은 물론 주민등록번호 열세 자리와 집주소가 몇 호인 것까지 모조리 읊어야 했다.
오전 10시, 먼저 편집기자가 증인석에 섰다. "거짓말을 했을 때는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한다"는 증인선서를 시작으로 검찰의 신문이 시작됐다. 검사들은 편집기자에게 할 질문을 137개 준비해 왔다. "편집에 사용한 빽(back) 이미지에서 아랫 부분은 왜 잘랐나" "빽(back) 이미지가 아래에서 위로 흘러가듯 편집했는데 아랫 부분도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니냐" "뉴스타파 사무실 압수수색 할 때 왜 촬영해서 정당한 압수수색을 방해했냐" "압수수색 때 증인도 피켓('지키자 뉴스타파' '언론자유 수호!')을 들었냐?" 등의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판사도 웃음을 터뜨리고 때로는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숙여 표정을 숨겼다.
'빨간넥타이 검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런데 검사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어 보였다. 원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대답이 안 나왔는지 빨간넥타이 검사는 한참을 "바꿔서 물어보겠다. 추가로 물어보겠다"면서 타이밍을 잡았다. 그러다 '지난해 압수수색 해 간 피의자의 핸드폰에서 나온 문자 내용'이라며 마이크를 삐딱하게 잡은 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검사는 편집기자에게 "2022년 3월 6일 보도([김만배 음성파일]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 직후 피의자(한상진)가 지인에게 '예쁜 짓 했네'라는 메시지를 받고 '윤석열 잡아야죠. 한 건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있는데, 증인에게도 '우리 한 건 했어'라는 취지로 말한 적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메시지 내용을 읽을 때 검사의 연기는 생동감이 넘쳤다.
검사를 포함해 법정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검사의 질문은 절대 편집기자가 알 수 없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모두 알았을 것이다. 검사가 증인을 신문하기 위해 묻는 게 아니라 방청석에 앉은 기자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검찰은 흥분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당겨가며 기자들이 당장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는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다. 격앙된 검사의 목소리와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가 중첩되며 오케스트라처럼 '비바치시모(Vivacissimo , 화려하고 아주 빠르게)' 됐다.
검사들이 70번째 질문을 했을 즈음, 한 번도 없었을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편집기자는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다. "잠시 참아달라"는 판사의 요청도 있었지만 다행히 쉬는 시간이 생겼다. 그동안 무척 열받은 나는 검사석에서 느리게 일어나고 있는 빨간넥타이 검사에게 "기자들한테 들으라는 듯이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물었다. 그 검사는 "언론이…" 뭐라 하다가 나가려던 길을 돌아 내가 갈 수 없는 길로 나가버렸다.
'코미디' 펼쳐진 법정, 그러나 언론 지면은...
의도가 빤히 보이고 또 방송제작 과정을 잘 모르는 검사들의 신문은 전체적으로 코미디였다. 솔직히 현장의 기자들이 검찰의 우스운 질문들을 코웃음 치며 봤으니, 이 코미디 신문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쏟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먼저 이상한 제목의 <연합뉴스>의 1보가 나왔다. <뉴스타파 기자들 "尹 잡아야죠" "아깝네">라는 제하에 '뉴스타파 구성원들이 보도를 전후해 윤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가 조직적으로 뭘 어쩌려 했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어서 복붙한듯 매우 비슷한 제목과 내용으로 KBS의 기사가 이어졌다.
방청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1보를 쓴 연합뉴스 기자에게 물었다. "기사 제목이 이게 뭐냐. 우리가 뭘 했다는 거냐." 기자는 "내가 (제목을) 쓴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이렇게 불러줬고"라며 빨간넥타이 검사의 워딩을 타이핑 한 걸 보여줬다. 그러다 제목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수정하겠다고 했고 '들'이라는 한 글자가 빠졌다. 연이어 다른 기사들도 제목이 수정됐다.
그렇지만 검찰의 언론플레이에 포인트가 맞춰진 기사는 거의 없었고 빨간넥타이 검사가 연기하며 읊은 내용이 대부분의 기사로 나갔다. 심지어 빨간넥타이가 말로 읊은 문자 내용이 CG(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돼 방송되기도 했다.
'한 건 했습니다' 문자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음날 피의자인 한상진 기자를 통해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검찰이 말한 '예쁜 짓 했네 - 한 건 했습니다' 문자 대화는 사실이 아니었다.
검찰이 압수해 갔던 한 기자의 핸드폰에 해당 문자가 남아 있었다. "한 건 했습니다"라는 말이 검사 입에서 나와 의아했던 한상진 기자는 검찰에서 돌려받은 휴대전화를 샅샅이 뒤져, 재판장에서 검사가 했던 '한 건 했습니다'는 말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에도 검찰이 읊었던 '한 건 했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다른 이들과의 대화도 찾았지만 없었다고 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한 건 했습니다'는 말은 오직 검사의 입을 통해서만 나온 것이었다.
내가 만약 이런 사실을 지난 19일 증인 신문 당시에 알았다면, 검사에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방청석의 기자들에게도 '검사의 말은 거짓'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사실 확인을 안 한 채 검사들이 불러준 문자 내용을 기사로 작성한 기자들은 검사 말만 믿은 것이 죄라면 죄다.
확인해보니, 재판이 끝난 후에 모 언론사 한 군데에서 관련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청해 오긴 한 모양이다. 수십 개의 기사 중, 단 한 군데의 언론만 확인을 요청했고, 나머지는 검사의 말을 의심없이 따라 쓴 것이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빨간넥타이 검사는 왜 사실이 아닌 내용을 각색까지 해가며 법정에서 말했을까. 이 부분은 얼마 뒤에 있을 또다른 나의 동료 증인 신문 때 만나 언론인으로서 직접 물어볼 계획이다.
"합당한 질의만 하면 좋겠다"는 말... 세 검사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편집기자에 대한 재신문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외쳤다. 검사들에게 한 말이지만 이날 법정 안에 있던 모두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한 말씀만 드리면요. 질문하실 때 언론을 상대로 기자들한테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질의하지 마시고, 합당한 (질의), 하셔야 되는 질의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사님들. 그리고 (이 사건이) 이 많은 기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언론 역사에 남을 거라는 점도 인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세 검사는 듣는 척도 안 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증인신문은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때쯤 끝났다. 초반에는 한없이 느리게 가지치기 질의를 하던 검찰은 '원하던' 내용을 언론에게 제대로 흘리고, '원했던' 기사가 나온 후에는 빠르게 신문을 마무리했다. 먼저 시작한 편집기자에 대한 신문에 소요된 시간은 3시간 50분이었는데, 검찰발 기사들이 쏟아지고 나서 진행된 촬영기자 신문은 1시간 30분만에 끝났다.
법원에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거의 하루종일 법정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본 나는 굉장히 분노하고 긴장하고 허탈해 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탈진한 듯 쓰러져버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종화씨는 <뉴스타파> PD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