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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스승의 날이다. 나는 2009년부터 일본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데 일본에는 한국처럼 스승의 날은 없다. 대신 근래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교사의 날인 10월 5일을 `교사의 날`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세계 교사의 날인 10월 5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본은 세계 교사의 날인 10월 5일을 기념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 freepik
 
스승의 날이 될 때마다 나는 대학원 시절의 은사를 떠올리고는 한다. 나는 2011년 미학미술사학 전공으로 일본의 한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나의 담당 교수는 철학과 예술학을 전공한 Y라는 분이었다. 수십 권의 책을 출간하고, 일본 미학회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실력파 교수였다.

그런 Y 교수의 연구실은 괴짜들이 모이기로 유명했다. 학생들 앞에서 잘난척하지 않고,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존중해 주시는 교수님의 존재가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가장 큰 이유였다.

연구실에는 나를 포함 외국인 유학생들도 여럿 있었는데, 교수님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며 늘 우리를 치켜세우셨다. 행여나 유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불합리한 대우라도 받을 때면 침묵하는 법 없이, 목소리를 높여 싸워주셨다. 

당시 나는 고학생으로 학업과 함께 복수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다. 자는 시간을 쪼개 책상 앞에 앉아봐도 외국어로 전공 서적들을 읽어 나가는 것은 늘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연구실 발표 시간. 나의 발표는 늘 허점 투성이었다. 그래도 교수님은 질책 대신 추천도서 리스트를 작성해 주시거나 전시회 티켓을 슬쩍 건네주시고는 하셨다. 그런 교수님의 뒷모습은 백마디 말보다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당시 나는 유학생 비자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비자 갱신을 깜빡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 체재하는 외국인들은 재류카드라는 신분증을 발급받게 되는데, 날짜를 확인해 보니 만기일이 며칠이나 지나 있었다. 뒤늦게 입국관리소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나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있었다.
 
 재류카드의 샘플. 일본에 있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이런 재류카드를 가지고 있다.
재류카드의 샘플. 일본에 있는 외국인들은 누구나 이런 재류카드를 가지고 있다. ⓒ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
 
입국관리소의 직원은 나에게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늘 강압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관리소 직원의 말투는 어느 때보다 더 차가웠다. 졸지에 나는 일본 경찰의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잘못하면 이대로 한국으로 추방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학생이네? 비자 갱신하는 걸 깜빡했나 봐?"
"네... 정신이 없어서 기간이 지난 걸 잊고 있었어요."

"신분보증을 해 줄 만한 일본인은 있나?"
"아니요..."


소속 학교가 분명하니, 경찰은 일단 학교에 연락을 해 보겠다고 말했다. 누구와 한참을 통화한 후, 경찰은 앞으로는 제때 비자를 갱신하라는 말로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었다. 담당 교수와 통화를 했고, 본인이 책임을 지고 신분 보증을 하겠으니 나를 집으로 보내주라고 말했다는 부연 설명이 따랐다. 

다음 날, 교수실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서웠지?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비자 날짜를 잘 체크해 둬. 이제 내가 신분 보증인이니까, 학교 안이든 밖이든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고." 

어이없는 실수로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은 창피한 일이었지만, 신분 보증인을 자처하고 나선 교수님의 마음이 참 고맙고 든든했다. 

그 해 연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과 함께 연하장을 써서 교수님께 보냈다. 며칠 후, 교수님으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는데, 엽서에는 비뚤비뚤한 한글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올해도 잘 부탁해. 또 만나자라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은사님께 받았던 연하장.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은사님께 받았던 연하장.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 박은영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지금도 그 엽서를 버리지 못하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한국어 인사말을 찾아 한 자 한 자 그려나갔을 교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져 온다.

그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모든 것이 서툰 외국인에 불과했던 나에게 교수님이 보여 준 것은 국적과 배경을 초월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든 내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교수님 같은 어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런 어른을 만나는 것은 또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일본 생활 15년간, 크고 작은 차별과 혐오를 겪으면서도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삶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교수님과 같은 좋은 어른이 이곳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나의 옛 스승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해본다. 지금은 거리가 멀어져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뵐 때는 꽃집에 들러 카네이션 몇 송이라도 사서 찾아가리라.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한 마디 남겨보고 싶다.

"교수님 감사했어요. 저도 교수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실 거죠?"

#스승의날#나의은사#좋은어른#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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