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과정과 또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 - 윤재옥 국민의힘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여당 불참 속 '채 상병(채 해병) 특검법'이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국민의힘은 법안 통과 직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해병대원 순직사건 수사외압 의혹이 현 여권의 핵심을 찌르고 있는 만큼, 결국 보수진영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방탄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따른다. 이번에 통과된 특검법이 '윗선'의 개입 여부를 파헤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윤재옥 "국회의장-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대표 기만"
남아서 찬성 표를 던진 김웅 국회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입법폭주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손에는 "협치 아닌 독주 정치, 민주당을 규탄한다" "반민주적 반의회적 입법폭주 규탄한다"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이 들렸다. 여당 의원들은 "임기 말 협치 파괴, 국회의장 각성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야당과 의사 일정 변경 요구를 받아들인 김진표 국회의장을 맹비난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늘 입법 폭주한 채 상병 특검법은 여러분 아시다시피 아직까지 수사기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특검은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 결과가 미진하거나 또 공정하지 못하다는 국민적 평가기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국회는 이때까지 모든 특검법을 여야 합의 하에 처리해왔다"라며 "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들은 오늘 본회의 의사 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럼에도 오늘 처리하지 않을 것처럼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가 여당 원내대표를 기만했다"라며 "국회의장이 의사일정을 변경하더라도 양당에 숙의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민주당과 '짬짜미'해서 입법 폭주한 것은 정말 개탄스럽고 또 국민들과 함께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21대 국회 마지막에라도 국민께 희망을 드리고, 협치하고, 의회 정치를 복원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한 국민들의 희망에 침을 뱉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의회 폭거와 관련해 우리 당은 앞으로 21대 국회 마지막까지 모든 국회 의사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라고 못 박았다.
윤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거부권 건의 시점에 대해 "원내 의원들과 상의해보겠다"라고 밝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을 압도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국민의 67%가 특검에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에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매번 특검으로 처리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을 겨냥해 "애초에 이 법을 선거에 악용하기 위해서, 선거용 법을 만들어 정치공세를 해왔었고 마지막까지도 어쨌든 선거에 이겼다는 자신감으로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또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겠다는 그런 저의가 깔려 있는 법"이라고 맹비난했다.
홍익표 "국회 내 협상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시선·원칙·기준"
반면,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산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합의 처리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과 본회의에 부의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관한 특별법을 함께 언급하며 "세 법안 모두 사회적 참사와 진실 그리고 특히 젊은 세대들과 관련돼 있는 사건에 대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기성세대, 정치적 책임이 있는 국회가 신속히 해결해야 했었던 게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오늘 통과로 끝이 아니라 법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고, 법 확정 이후에도 실제 현장에서 기능할 수 있도록 민주당이 꼼꼼하게 체크하고, 이후 필요하면 관련 후속 조치에도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윤재옥 원내대표가 기본적으로 이 법을 반대한 게 아니라 일정을 늦춰달라는 입장이었는데, 국회의장의 일정과 국회의 남은 기간을 감안할 때 오늘이 지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정치는 때로는 국민이 원하는 것, 국민 눈높이가 원칙과 기준이 돼야 한다"며 "국회 내 협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시선, 국민의 원칙, 국민의 기준에 따라 국회가 일해야 한다"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해병대 장병 순직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함께,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수사 은폐와 왜곡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히라는 강한 국민적 요구가 있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 요구를 따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해 드리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는 이야기다.
수사 기간 1회 연장, 수사 대상에 '대통령실·국방부' 적시
채 상병 특검법의 정식명칭은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지난해 9월 7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박주민 원내수석부대표를 포함해 민주당 의원 24명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2023년 7월 사고가 발생 기준으로 10개월(288일), 발의 8개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올라탄 지 7개월 만에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날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법안 제안 설명에 따르면, "사망 사건 및 수사 외압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독립적 지위를 가진 특검 임명과 직무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한 법안"이다.
수사 대상은 "채 해병 사망사건 그 자체, 이와 관련된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 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 내 은폐·무마·회유 등 직무 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와 관련된 불법행위 그리고 수사 과정에서 이와 관련해 인지된 관련 사건들"로 규정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적시되며, 수사의 칼이 용산을 겨냥할 수 있도록 분명히 한 것이다.
특검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부터 4명을 추천받아 그중 2명을 원내교섭단체가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이중 1명을 특검으로 임명하도록 했다. 특검은 20일 준비기간 이후 70일 이내 수사를 완료하고, 1회에 한해 수사 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독소조항'이라며 반발했던 브리핑 관련 내용도 그대로 포함됐다. "수사대상 사건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이외의 수사 과정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재의요구권 만지작 거리는 용산... '방탄 거부권' 행사하나
공은 용산 대통령실로 넘어갔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 재의요구권을 윤석열 대통령이 재차 행사할지가 관심이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거부권을 자주 발동한 인물이지만, 국회의원 총선거 참패 직후인 데다가 특검에 대한 국민적 찬성 여론도 높다. 보수층 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만큼,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22대 국회에서도 상당한 격차의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되는 만큼, 윤 대통령이 다시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남은 임기 동안의 입법 과제는 물 건너 가는 셈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을 '방탄 국회'라고 몰아붙였던 여권 입장에서는, 현 정권 관련 의혹에 대해 '방탄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역 프레임에 걸릴 수도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는 채 상병 특검법 통과 직후 "엄중 대응"을 언급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으나, 거부권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진 않았다.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며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남겨두면서도, 실제 거부권을 행사했을 때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보며 신중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은 일제히 용산을 성토하고 나섰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실 개입 의혹만으로도 채 상병 특검법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생각도 하지 말고, 성실히 협조하시기 바란다"라고 일갈했다.
윤희숙 진보당 상임공동대표는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 윤 대통령도 수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라며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포기하고 특검법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총선의 민심"이라고 강조했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법안이 정부로 넘어가는 대로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공포해야 할 것"이라며 "거부권은 조자룡의 헌 칼이 아니다. 받아들이시라"라고 압박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거부한다"라는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