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빗는 것도 목욕하는 것도 싫어하는 소녀 줄리. 엄마 아빠는 선머슴처럼 행동한다며 줄리를 야단친다. 어느 날 줄리는 공원에서 한 소년을 만난다...(이 어린이 책은) 세상이 정한 방식과 편견에 맞서 자신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남들과 다른 점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에게 살포시 건네고 싶다.(동아일보 2019년 7월 20일자 기사)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동아일보>가 2019년에 보도한 어린이 책 <줄리의 그림자> 추천 기사 내용이다. 이 책은 2020년 도서단체로부터도 '아침독서 초등학생 추천도서'로 뽑혔다.
기관 상 받고 보수신문이 추천한 책들을 왜?
그런데 8일, 국회 교육위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보면 이 지역 초중고는 최근 1년간 도서관에서 이 <줄리의 그림자>란 책을 비롯해 모두 2528권의 어린이·청소년 성교육 도서를 무더기로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폐기된 책 가운데 상당수는 국내외 기관 수상작인데다 보수신문도 추천한 도서여서 폐기 이유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이번에 4개 초등학교에서 1권씩 모두 4권이 폐기된 <줄리의 그림자>는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브뤼엘이 쓴 유명 창작 동화다. 이 책이 나오자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잇달아 추천 기사를 썼다.
이번에 2개 학교에서 1권씩 모두 2권이 폐기된 <여자 사전>이란 책도 노르웨이가 선정한 성교육 필독서인데 이 나라 문화부 논픽션 부문 당선작이다. 현재 한국 등 전 세계 17개국에 수출됐다.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은 이 책을 2021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뽑았다.
이 밖에도 이번에 폐기된 <성교육 상식사전>, <소녀소년 평등 탐구생활>, <양성평등 이야기>, <성 평등하다는 것>,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 <소녀들을 위한 내 몸 안내서>, <난 어떻게 태어났을까> 등의 도서는 '세종도서' 우수도서로 뽑히거나 국어교사, 사서교사, 독서교육관심 교사들이 활동하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이 뽑은 추천도서로 선정된 책이며 한국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세계일보 등이 추천한 책들도 상당수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줄리의 그림자> 등 상당수의 책은 우익 학부모단체 등이 학교에 문서를 보내는 방식으로 폐기를 요구해온 도서들이다. 이들은 "동성애 조장 내용, 적나라한 삽화 등으로 아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실제로 최근 <줄리의 그림자> 등 24권의 도서를 폐기한 경기 S초 관계자는 교육언론[창]에 "단체들이 책 목록을 작성해 폐기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내와서 학교운영위를 거쳐 폐기한 것"이라면서 "우리도 폐기된 책 가운데는 학생들이 읽어볼만한 책이 있을 것이라고 봤지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폐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동성애 조장, 폐기해야"... "학생 창발성 죽이는 반교육 행태"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는 시민단체들이 유해도서 심의를 청구한 어린이·청소년 성교육 도서 68권 가운데 67권에 대해 "유해 도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했다. 하지만 경기도 초중고에서는 이 책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폐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월 이 지역 초중고에 공문을 보내 '성교육도서 처리 결과 도서목록'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학교도서관 관련 전국 305개 시민사회단체는 성명을 내고 "성교육 도서 폐기 목록을 보고하라는 것은 성교육 도서 검열"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덕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대표(서울 송곡관광고 사서교사)는 교육언론[창]에 "특정 종교이념을 가진 우익단체들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성교육 책들을 치우라고 압력을 넣은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며 이를 방치한 경기도교육청의 행동도 매우 비겁한 일"이라면서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유해하지 않다고 판단했는데도 압력을 지속하는 시민단체나 이에 굴복하는 교육기관의 모습은 학생들의 창발성을 죽이는 반교육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