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이케아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 바로 나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좀 멀기도 하고 딱히 당기지도 않아서였다. 그랬던 내가 며칠 전 드디어 이케아에 다녀왔다.
결혼한 지 10년도 지났는데 이제야 이케아 매장에 발을 내딛게 되다니. 처음으로 이케아 쇼룸을 둘러보게 된 나는 그야말로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 어떤 특이점에 도달했다.
내 안에 나도 알지 못했던, 무의식 속 집 꾸미기에 대한 꽤 거대한 욕망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거실이나 주방 공간 그리고 방을 그럴싸하게 꾸미고 사는 삶은 이번 생에는 없을 거라며 포기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딱히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이 없었다. 나의 사랑하는 집이 아닌,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집이라고만 여겨왔다. 언젠가 떠날 것이고 되도록이면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바라는, 그래서 꾸며줄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집.
꺼져가는 소파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열 평이 채 되지 않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길어야 2년 정도 살겠지 싶었다. 그런데 벌써 전세 계약을 3번이나 갱신했으니 생각보다 오래 거주 중이다. 아내와 단 둘이 두 식구가 산다지만, 비좁고 불편하다.
전에 살았던 경기도 외곽의 집에 비하면 평수가 정확히 반토막 났다. 이사 오면서 어지간한 짐은 다 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넣다 보니 꽉꽉 차 있다. 필요한 것만 남긴다고 남겼음에도 나의 집에 여백의 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집과 짐을 절반이나 줄이고 이사 온 뒤 정확히 2년이 지나서 코로나가 터졌다. 서울의 집값은 정확히 2배가 뛰었다. 조금이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 마음먹었던 다짐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사는커녕 임대인이 요구하는 보증금 인상분을 마련하기에도 벅찼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사하는 것을 포기했다. 돈을 한 뼘 모으면, 집값은 두세 걸음쯤 달아나고 있었다. 2년 주기로 돌아오는 갱신 때가 되면 제발 집주인이 연장해 주길 기도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집을 가질 수 없으니 가꾸기라도 해야겠다라고.
그동안은 집을 꾸미는 것에 무척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반으로 줄인 살림이지만 여전히 많아서 꾸며봤자 티가 날까 싶었다. 뭐 하나 들여놓을라치면 테트리스 하듯 빈 공간을 찾아 집안 살림들을 요리조리 움직여야 하는 건 필수. 구입할 물건이 커질수록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가구나 가전제품처럼 부피가 큰 것들은 거의 폐급이 될 때까지 사용하게 됐다. 대단한 절약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무척이나 귀찮고 번거로웠으니까. 게다가 우리 집은 엘베 없는 빌라다. 계단으로 힘들게 물건을 옮기거나 아니면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고 사다리차를 불러야 한다.
이랬던 나에게 피할 수 없는 계기를 만들어 준 건 소파였다. 결혼할 때 10만 원 주고 샀던 2인용 미니 소파. 말이 2인용이지 체구가 미들급 이상이라면 1인용으로 써도 무방한 소파다. 10년 넘게 사용하고 있으니 쿠션이 꺼질 대로 꺼져 가운데 부분은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는데 조금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파왔다. 소파 역시 나를 향해 제발 부탁이니 이제 그만 날 죽여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앉는 나나, 안는 너나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구나.
소파를 보내주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3D설계도를 들여다보듯 면밀히 관찰했다. 말했듯이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소파를 없애고 바닥 생활을 해볼까 고민도 해보았다. 영혼의 안식처를 절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2인용 소파를 미친 듯이 검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우리 집에 딱 맞을 것 같은 소파는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대한 작은 소파를 찾아 돌고 돌다가 다다른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이케아였다.
난생 처음 이케아
아내는 월차를 냈고, 그렇게 우리는 이케아에 갔다. 결혼 후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우리와는 영영 인연이 닿지 않을 거라 여겼던 그곳에 말이다. 쇼룸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분명 소파를 보러 간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아내와 나는 쇼룸 구석구석 아주 면밀히 많은 물건들을 보고 만지고 있었다. 소파 코너로 바로 직진해도 되었지만, 굳이 그렇게 훑어본다. 자취하는 사람이나 신혼부부들이 왜들 그렇게 이케아를 선호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대단히 화려한 건 아님에도 물건마다 묘하게 북유럽풍 감성이 배어 있었다. 5번째 쇼룸을 둘러볼 때쯤에는 이미 그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이케아로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집이 좁아서 꾸미기를 포기했던 나.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이것저것 열심히 카트에 담았다. 카트에 넘칠 정도로 물건이 꽉 차있는 걸 보니 꼭 우리 집 같기도 하다. 집에 애정이 없었던 건 좁아서가 아니었다. 감성이 메말랐던 것이다.
감성이 한껏 차오르니 지갑은 가벼워지고 차 트렁크는 한가득이다. 어차피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물 건너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집을 가질 수 없다면, 이렇게 꾸미고 가꾸기라도 해야겠다. 어제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