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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농성장 아래 모래와 자갈 농성장 테이블 아래
천막농성장 아래 모래와 자갈농성장 테이블 아래 ⓒ 박은영
 
"몽돌이 있다는 건 강이 흐른다는 거거든."

세종보 농성장을 찾은 이가 테이블 아래 돌을 들어 보이며 하는 말이다. 천막농성장 아래로 흘렀을 금강과 어쩌면 있었을 물떼새 알들을 상상하며 10일 차 아침을 맞이했다. 물떼새 둥지들이 밤새 잘 있었나 살펴보면서도 출산 자리가 어느 정도 은밀하고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이런 행동이 물떼새에게는 불편한 일은 아닐지 걱정이다. 

세종보를 개방하면서 상류에 아름다운 하중도가 만들어졌다. 하중도 좌우에는 다양한 깊이의 물길이 만들어져 잉어, 강준치를 비롯해서 쉬리, 미호종개, 흰수마자도 살고 있다. 보 수문을 닫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환경부에 '보 개방 모니터링' 데이터로 남아있다. 세종보 수문이 열려있어야만 하는 과학적 근거들이다.  

보 해체 용역까지 마쳤지만… 환경부 이행하지 않아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 강 자연성 회복 삭제한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 환경,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이 보 처리방안, 강 자연성 회복 삭제한 국가물관리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하는 모습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 강 자연성 회복 삭제한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환경,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이 보 처리방안, 강 자연성 회복 삭제한 국가물관리위원회 규탄 기자회견 하는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2021년 1월 18일, 4년간 논의됐던 금강 영산강의 보 처리방안이 확정됐다.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해체 등의 결정 사항이다. 그해 4월부터 환경부는 '금영 보 처리방안 이행을 위한 세부계획 수립 용역'을 발주했고, 한국수자원공사가 용역을 진행했다. 2021년 11월, 수자원공사는 '세종보 2024년 6월에 해체 가능' 등 시기가 명시된 중간보고를 발표했고, 5개월 뒤인 2022년 4월 용역을 마쳤다.

하지만 환경부는 4개월이 지나도록 용역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수정 보완'을 명분으로 6월 결과 발표를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부 한화진 장관이 취임했고 6월이 지나도 결과 발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과를 공개하라 요구했지만 철저히 묵살당했고 심지어 유선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다. 공문도 넣었고, 민원도 제기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아무 답변이 없었다.

결국 10개월이 지난 2023년 4월 1일, 환경부가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거기엔 중간보고에 명시했던 착공 가능 시기는 삭제됐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한화진 장관은 '보 활용 계획'을 발표했다. 취임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4대강 관련해 가장 논의가 진전된 보 처리방안을, 용역까지 마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 갑자기 정책을 뒤집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간 진행했던 거버넌스,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과학적 데이터, 경제성 평가 등 이 모든 것들을 허사로 돌렸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이고, 직권남용이다.

더 적법한 데이터 마련하라는데… 하루 만에 보 처리방안 취소한 환경부 
 
국가물관리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환경운동가들 졸속으로 열린 국가물관리기본계획 1차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활동가들
국가물관리기본계획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환경운동가들졸속으로 열린 국가물관리기본계획 1차 공청회에서 항의하는 활동가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2023년 7월, 이재오씨가 대표로 있는 4대강국민연합이 제기한 4대강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4대강 관련 5번째 감사였고, 보 처리방안 마련 과정에 있어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환경부에 '보 처리방안에 있어 더 적합한 데이터를 마련해 보완하라'라는 주문이 있었다. 매년 수환경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해 왔던 환경부의 데이터를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 종료 이후 20일 이내에 환경부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화진 장관은 감사 결과 발표 바로 다음날 '보 처리방안 취소'를 국가물관리위에 요청했다. 그리고 15일 뒤, 심의 의결까지 만 4년이 걸린 보 처리방안을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취소했다. 이후 40여 일 만에 10년 단위로 세워지는 물 분야 최상위 계획인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 '자연성 회복'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말로 바꿔치기 했다. 부록으로 만들어졌던 '우리 강 자연성 회복 구상'은 전부 삭제했다.  

 환경단체들은 졸속으로 진행된 공청회에 항의하며 기자회견도 하고, 면담도 요청하고 "한화진 장관은 사퇴하라"고 외치는 집회도 했다. 공청회에서 항의하다 연행되어 유치장에도 갔고, 고발도 됐다. 그러나 지금 환경부는 '보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안하무인 행정을 자행하고 있다. 세종보 재가동은 4대강 사업으로의 회귀다. 단순한 물정책을 넘어 강에 휘두르는 윤석열 정부의 폭력이다. 
 
시민이 그린 흰목물떼새 지난 6일 열린 온생명 어울림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그린 흰목물떼새
시민이 그린 흰목물떼새지난 6일 열린 온생명 어울림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이 그린 흰목물떼새 ⓒ 임도훈
 
"이 천막을 물떼새 둥지라 생각해주십시오. 이 둥지를 함께 지켜주십시오."

임도훈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가 9일 진행된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촉구하는 거리미사에서 한 말이다. 이날 세종보가 지척인 자갈밭에 30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 금강의 안녕을 기원했다.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0일이 되었다. 우리 강을 난도질하는 이 무도한 정권에 맞선 그야말로 '배수의 진'이다. 뒷걸음질 칠 수 없다.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우리 강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모래와 자갈이 있는 강 모래와 자갈이 있는 강에 생명이 이어진다
모래와 자갈이 있는 강모래와 자갈이 있는 강에 생명이 이어진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미사를 마친 뒤 자갈밭을 걸었다. 건너편 하중도에서 들려오는 물떼새 소리가 청량하다. 지금 한창 번식 철이다. 강물은 빠르게 흘러간다. 아직은 세종보가 전면 개방돼 있기 때문이다. 발에 밟히는 몽돌은 온통 회색 옷을 뒤집어 썼다. 세종보 재가동을 위한 보수공사를 하면서 잠시 정체됐던 구간인데, 그새 펄이 쌓였다는 흔적이다.     

예전처럼 맨질맨질하고 알록달록한 몽돌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금강#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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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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