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인구 고령화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일본, 캐나다, 미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르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7.2%)로 진입한 이후 2018년에 고령 사회(14.3%)로 진입했고 2025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율이 20.6%로 증가하여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이처럼 빠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유난히 길었던 베이비붐(Baby boom, 출생률의 급상승기) 기간과 빠르게 시작된 저출산의 고착화에 기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베이비붐 기간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10년 정도 지속된 데 비해 우리나라는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약 20년 동안 연간 약 90에서 100만 명씩 태어났다. 이후 출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약 80만 명이 태어났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출생률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해 1990년 1.57명, 2010년 1.23명, 2023년에는 0.72명으로 연간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23만 명대로 떨어졌다.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의 부족과 생산성 저하를 가져와 경제 성장이 둔화되며, 노인 계층에 대한 부양비 상승과 의료 및 복지 서비스의 증가 등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회적인 우려가 많다. 우리나라의 인구 고령화는 지속적인 청년 인구의 유출이 일어나는 농어촌 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지역들의 축소뿐만 아니라 소멸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고령 사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한 것일까
인구통계를 기반으로 미래 트랜드를 연구하는 미국의 미래학자 브래들리 셔먼( Bradley Schurman)은 그의 책 <슈퍼 에이지 이펙트>(The super age: Decoding out demographic destiny, 2022)에서 인간 수명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인류가 이제껏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사회가 창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났다는 건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년기가 확장된다'는 뜻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뿐만 아니라 인간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더욱 오랜 시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항노화 연구의 선구자인 하버드대 의대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A. Sinclair)는 노화를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간주하고 80대 나이에도 40~50대처럼 생활할 수 있는 세상이 곧 열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더 젊고, 더 건강한 시니어들이 우리나라에도 등장하고 있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태어나서 자란 베이비붐 세대로 '도전하는 젊은 노인'(YOLD, Young Old) 혹은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로 묘사된다. 이들은 50~74세 연령대로, 다른 연령대 대비 순자산의 규모가 탄탄하고 인구 수도 많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 가구의 평균 자산은 6억 452만 원, 60세 이상은 5억 4836만 원으로 MZ세대로 분류되는 20~30대(3억 3615만원)의 약 2배에 달한다. 5060세대의 인구 수는 전체 인구의 31.81%에 달한다(2023년 12월 31일 기준). 이 가운데 50대는 16.94%로 연령대별 구성 비율이 가장 높다.
시니어인사이트랩에서 2021년 실시한 액티브 시니어들의 라이프스타일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액티브 시니어는 학력 수준이 높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비 활동, 사회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낮은 경제력, 소극적인 사회참여도와 가족 의존적으로 묘사되었던 과거의 시니어들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나의 뜻대로 결정하고 행동함
- 가족들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 돈을 투자하는 데 아끼지 않음
-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임
- 제품 구입시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고 제품을 통해 얻는 경험 가치를 중요시함
- 건강을 위해 꾸준하게 운동하고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음
- 사람들과의 관계 및 소통을 중요시 하고, 개인 SNS 계정을 통해 글과 사진을 올리고 소통함
- 봉사활동, 환경보호, 기부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 있음
- 미래·노후를 위해 투자하고 있으며 여유롭고 행복한 노후를 계획함
액티브 시니어들을 브래들리 셔먼은 판매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밀레니얼 세대 고객'이라고 묘사했는데, 위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은 밀레니얼 세대와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세대별 온라인 행태 변화와 시사점>(2021)과 LG 경영연구원의 <향후 30년간 확대될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파워>(2023) 보고서를 살펴보면, 50~60대의 인당 평균 소비는 젊은 소비 계층인 20~30대의 85%로 크게 뒤지지 않았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MZ세대들보다 시니어 계층이 오히려 더 빠르게 소비를 늘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2030 젊은 세대 중심의 배달앱과 OTT 서비스(over the top media service) 분야에서도 5060세대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2019년 대비 2020년의 배달앱 서비스 결제 규모가 50대에서는 163%, 60대에서는 142%가 증가했고, OTT 서비스 결제규모도 181%, 166% 증가했다.
'나이답게' 살아가기보다 '나다운' 삶을 추구하며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귀농이나 산촌 생활을 체험하는 '지역살이' 혹은 '로컬투어' 등과 같은 체험형 여행에 관심이 많다. 여행가를 양성하고 성숙한 여행문화를 만들고자 시작된 '여행대학'에 '시니어 꿈꾸는 여행자' 과정이 2018년 서울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대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까지 확대됐다.
지역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농어촌 지역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새로운 인구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2023년부터 도입한 '생활인구'가 대표적이다. 생활인구란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생활인구보다 넓은 개념으로 특정 지역에 관심을 갖고 관계를 유지하는 외지인을 의미하는 '관계인구'도 있다.
다카하시 히로유키는 <도시와 지방을 섞다: 타베루 통신>(2016)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지방과 관계를 맺는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는 도시 거주자들이 많다고 강조하면서 교류인구와 정주인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인구를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퍼 에이지 시대에 맞추어 지역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 액티브 시니어들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농어촌 지역과 관계를 맺어 지역에 일정 기간 체류하거나 정기적인 방문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지역을 응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입학생이 부족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지역의 대학에 액티브 시니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평생학습이나 실용적인 기타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더 큰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지역 청년들을 붙잡을 것이 아니라 서울을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싶어 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