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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닌텐도가 생겼다. 토요일 자기 전으로 기억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빗소리에 기대어 푹 자기 딱 좋은 날이라 생각했다.

습관을 따라 페이스북을 확인했다. 쓴 지 얼마 안 된 따근따근한 글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페메 확인 부탁드려요.'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스팸인가 싶었다. 싱거운 내용이겠지 하고 오랜만에 메시지 요청함을 들어가보았다(언제부터인가 페친이 아닌 사람이 보낸 메시지는 이곳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 신청을 한 사람들의 메시지도 페친이 아니면 이렇게 되어서 확인을 못할 때도 많았다).

"안녕하세요,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어린이날 순댓국 집에 가신 이야기 읽다가 아드님이 닌텐도가 갖고 싶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사실 제가 사놓고 초반에만 몇 번 사용한 닌텐도 스위치라는 게임기가 있는데, 괜찮으시면 아드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어차피 저는 안 쓰고 있고 해서요."

내 기사를 읽었나 보다(관련 기사 : 어린이날 아들의 말 "아빠 우리도 부자야").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이게 현실인가 싶었다. 월요일에 택배로 붙여주신다는 친절함과 호의에 깊은 감사를 표현했다. 마침 옆에는 아이가 새근새근 자고 있는데 요녀석 이걸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려보니 행복한 미소가 슬며시 번졌다.

일요일 오전에 연락이 왔다. 우리집 근처로 지나갈 일이 있어서 괜찮으시면 갔다 드리고 싶다고 했다. 저녁에 시간이 될 것 같다며 약속을 잡았고 나는 오랜만에 손을 꼽아 그 시간을 기다렸다.

문득, 섬뜩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이렇게 우리집 앞으로 와서 나를 납치하거나 나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페북 타임라인을 쭉 살펴보니 아무리 봐도 전혀 그럴 분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흉흉해진 지 오래니 사람에 대한 이런 경계는 살아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닌텐도 스위치
닌텐도 스위치 ⓒ 김정주(본인)
 
약속 시간이 되었다. 쇼핑백에 한 가득 닌텐도 스위치, 링피트, 조이스틱, 게임팩을 담아오셔서 따스한 미소와 함께 깃털처럼 가볍게 건내주셨다. 나도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혹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계시냐고 물었고 그렇다 하셔서 내 책 두권을 드릴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 집 바로 옆 동네에 살고 계시는 분이셨다. 평소 페북에서 내가 인지할 만큼의 교류가 전혀 없으신 분이셨는데 어떻게 이런 호의를 허락하실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당근에 팔아도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을텐데,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고작 글 한 편을 보고 이렇게 해주시다니.

집에 가서 아이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고 짜잔하고 닌텐도를 전달했다. 지면에서 거의 10cm 정도를 방방 뛰며 아드레날린을 과하게 방출했다.

"아빠, 올해는 사주기 힘들다고 했잖아, 갑자기 부자가 된 거야? 어떻게 산 거야?"

나는 마침 '기적'이 일어나서, 라며 간략히 답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람 사이에 '흐름'이 꽉 막힌 시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흐르는 존재들이 버젓이 살아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오래된 말에 기대어 말해보자면, 흐를줄 아는 존재들은 그 자체로 쉬이 기적을 만든다.

고요한 밤중에 닌텐도를 바라보며 나는 액체가 되고 싶었다. 나도 다만 흐르고 싶었다. 인류애가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가는 이 시점에, 사람이 기적이라는, 그 기적 따위를 조금만 더 붙들고 믿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기적이 되어주셔서.

#닌텐도#닌텐도스위치#육아#이래도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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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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