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가 지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하다 아픈 여자들> 독후감 공모전에서 당선된 총 다섯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학교, 병원, 콜센터, 배달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말하는 일하다 아팠던 혹은 지금도 아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
노동조합에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의 달'을 맞아 추천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내는 공모전을 한다길래 찾아보니 <일하다 아픈 여자들>이었다. "이거 남 얘기가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흔히 '여초' 직업이라고 말하는 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20년을 일하셨고 은퇴 후에는 주간보호센터에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계신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여성의 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남자들의 뒤에서 그들을 챙겨주고 서포트 해주는 일들, 서비스직, 가사 노동이나 돌봄 노동 같은 거 말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성별분업이 개인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머니와 나 역시 역량과 기질에 맞춰서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노동을 하는 여성들의 등장
1부에서는 저자들이 만난 여성 노동자들이 보거나 직접 겪은 산업재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비행기 승무원, 학교급식 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여성 노동자'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직업군부터 형틀 목수, 조선소 밀폐 구역 감시 업무자, 자동차 부품 제조 노동자, 배달 라이더와 같이 '여성 노동'으로 연상시키지 못했거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직업까지 다양한 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두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애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환경이 '비장애 성인 남성'을 표준의 몸으로 삼고 있으며 표준이 아닌 몸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다칠 수밖에 없는지를 고발한다.
나 역시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의 사례에 몰입하며 읽어 나갔다. 2부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재해 보상 제도와 젠더 공백의 문제를 사례와 통계를 통해 보여주는데 읽기가 힘들었다. 등장하는 사례가 너무나 다양하기도 했지만, 산업재해 법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가 가득했다. 산재법이야말로 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제도인데도 전문가가 도와주지 않거나 노동조합이 없으면 '노동자 개인이 혼자 힘으로 산재보험 처리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책 한 권으로 내 세상이 넓어졌음을 느꼈다. 나는 직원이 2000명이 넘고, 노동조합이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럼에도 아플 때 쉬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상사에게 말하기도 힘들고 동료 직원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과연 아플 때 아무 걱정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하는 일이 아니면 생계가 어렵고, 당장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일하다 다쳤다고, 아프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할까? 아니 용기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도 저마다 두렵고 걱정되고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픔을 드러내고 산재 신청을 하고, 모든 절차를 밟아 산재 승인을 받아낸 것은 분명 절박한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서' '이 고통이 나의 동료와 후배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어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한 번도 그것을 산재로 말해보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팔꿈치 염좌로 꽤 고생하셨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팔에 매달리거나 자주 안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보호자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해봤고 환자를 옮기다 디스크가 터진 동료도 보았다. 10년 가까이 3교대 근무를 하다 갑작스럽게 암을 선고받고 병원을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것을 '산재'라고 말해보지 못했다. 그냥 일하다 보면 으레겪는, 계속 일하려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그런 일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정점을 지나고 더 이상 감염자가 치명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을 무렵, 병원에는 증상이 보여도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으려는 간호사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일할 사람 없는데 괜히 확진 판정 받으면 다른 사람이 근무 다 들어와야 한다. 괜히 일 키우지말고 약 먹고 조용히 일해라'라고 누가 벽에 써 붙여놓은 거 같았다.
무엇이 우리를 자발적인 노예로 만드는 것일까? 하루에 8시간, 일주일에 40시간, 최대 52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 4시간 일하면 30분을 쉬게 해야 한다는 규칙들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당연한 규칙도 지켜지지 않는 곳이 여전히 많다. 책에서는 '아프면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전에 일하는 사람들이 아프거나 다치지 않게 노동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현실에선 우스갯소리로 들린다는 게 절망스럽기만 하다.
낮아지는 출생률은 걱정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이 유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고치려 하지 않는 나라. 주 4일제 공약이 아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건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차별과 혐오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상한 시대이다.
나는 이 혐오의 시대에 어떻게 지치지 않고 평등을 말해야 할지, 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노동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길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많아진 사람들이 움직이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다들 닳지 않기를, 잠시 지쳐 더뎌지더라도 묵묵히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기를, 그리하다 보면 일하다 아픈 사람이 사라지는 세상도 오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가현씨는 의료연대본부 충북대병원분회 조합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