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부여-익산을 잇는 서부내륙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인 충남 홍성군 장곡면 천태리 주민들은 요즘 고민이 많다.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혹시라도 폭우로 공사 현장에서 산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또 집중호우가 발생하면 마을의 농지가 침수되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 5월 11일에 이어 19일 서부내륙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천태리를 다시 찾았다. 주민들의 '민원성 제보'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천태리의 천태산은 과거 일제강점기 때부터 무연탄을 캐던 탄광의 갱도 지역이다. 그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천태산의 지반이 연약해서 산을 파헤칠 경우 붕괴사고가 우려된다며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에는 천태산에 중턱에 건설 중이던 고속도로 옹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문제는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 중인 천태산 바로 아래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민가가 있다는 점이다. 천태리 주민들은 자칫 산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날은 일요일인데도 포클레인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업체 측 안전에 문제 없다지만... 주민들은 산사태·침수 우려
천태리가 고향인 김오경씨는 이날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고향집 뒤편 천태산에서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흙을 파헤쳐 놓아서 여름철 집중호우가 오면 산사태가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도로공사를 맡고 있는 업체 측에 안전 대책을 문의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의 고향집 뒤편은 도로 공사로 파헤쳐진 상태다. 마을 앞 도로 쪽에서 바라보면 흙더미가 당장이라도 민가를 덮칠 듯이 위태롭게 보였다. 김씨가 지목한 산사태 위험 지역은 지난해 도로 옹벽이 무너졌던 곳과도 가깝다.
건설업체 측은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 업체 측 관계자는 "현재 산의 경사면을 깎고 있다. 흙이 나오는 대로 외부로 반출하고 있다. 6월 우기 전에는 공사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가로 흙이 쏟아지지 않도록) 억제 말뚝이라는 철골 구조물로 막아 놓았다. 흙더미와 철골 구조물 사이에 10여 미터 정도의 여유가 있다"라고 부연했다.
마을 주민들의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도로 공사로 천태산이 절단되면서 여름 장마가 오면 마을 앞 농지가 침수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천태리 주민 A씨는 기자에게 지난해 7월 마을 앞 도랑에 물이 가득한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는 "천태산을 다 깎아 놓아서 빗물이 산에 스미지 못하고 배수로를 타고 곧장 마을 쪽으로 내려온다. 작년에 비가 조금 왔는데도 도랑에 물이 넘칠 뻔했다. 자칫 마을 밭과 논이 모두 침수될 뻔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폭우가 내려 고속도로 공사 현장 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한꺼번에 마을 쪽으로 내려 올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도랑이 너무 좁다. 고속도로 공사를 하기 전에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문제의 도랑 옆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B씨도 "고속도로 공사를 한다고 산을 다 깎아 놓는 바람에 비가 오면 지금도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엄청나다"라며 "예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분산이 돼서 천천히 내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도랑 하나로 물이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딸기를 심은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있다. 도랑에 물이 넘치면 마을에서도 우리 집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라고 호소했다.
주민들이 지목한 '도랑'은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 홍성지사 관계자는 "당장 (도랑) 개선 공사를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라며 "(만약) 수리시설 개보수 작업이 진행 되어야 한다면 별도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단 주민들을 만나 현장을 확인해 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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