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마트가 개업했다. 주차장까지 갖춘 제법 큰 마트다. 개업 전부터 현수막을 걸고 요란하게 광고를 하더니 오픈 첫날에는 동네 전체가 시끌 할 정도였다. 마이크를 들고 행사 소식을 알리는 직원과 소문을 듣고 찾아 온 차량 행렬로 하루 종일 경적소리가 울렸다. 행사가 많은 5월을 지나느라 지갑이 얄팍해진 터라 개업한 마트 행사 소식이 반갑긴 나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네 마트에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주로 온라인에서 장을 봤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장보기를 시작했지만 그 편리함을 알게 된 후로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동네 마트에 길 필요가 없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터치 몇 번만 하면 다음날 새벽 집 앞에 물건이 배송되니 말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매일 밤 장을 봤고 집 앞에는 배송 상자가 늘 쌓여 있었다.
그랬던 내가 온라인 장보기를 줄이게 된 이유는 구독료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고정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심산으로 지출내역을 검토하던 중 생각 보다 많은 금액이 구독료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 달에 몇 천원 정도로 부담가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각종 플랫폼 구독료를 모아보니 적지 않은 돈이었다. OTT서비스, 음원사이트, 독서플랫폼 등 모든 멤버십을 탈퇴했다.
멤버십을 탈퇴하고나니 배송비가 부담이었다. 무료배송을 위해 최소 금액을 맞춰야하다보니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것저것 사느라 금액은 꽤 채웠는데도 밥상에는 여전히 올릴 반찬이 마땅치 않았다. 금액을 채우느라 대부분 가공식품, 냉동식품, 간식거리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동네 마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편리한 점이 많았다. 가장 좋은 점은 제철식품 특히 과일과 채소가 입구에 진열되어 있기 때문에 신선식품의 구입빈도가 늘었다.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장을 볼 때는 신선식품을 구매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제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후기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 경우 제품의 상태가 때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았다.
아침식사로 먹으려고 주문한 바나나가 너무 날 것으로 배달되어 먹지 못한 적도 있었고, 추운 날씨에 상추를 주문했다가 얼어서 배송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에서는 냉동식품이나 간편식품 위주로 구매를 하게 되었고 상차림도 그에 맞게 달라졌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따로 검색을 하지 않아도 그 시기에 가장 맛있고 신선하고 저렴한 식재료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장을 볼 때 더 다양한 상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에 훨씬 다양한 제품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러 검색하지 않으면 접근성이 떨어진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앱에서 추천해주거나 메인에 있는 제품 위주로 구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발품을 파느냐에 따라 더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있다. 알뜰코너를 이용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요즘에는 동네마트에서도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를 고려해 각종 신선조리식품을 판매하기도 하고 아예 반찬가게가 함께 입점해 있는 경우도 있어 편리하다. 배송서비스를 이용하면 무겁게 짐을 나를 필요도 없다. 온라인 쇼핑에 비해 쓰레기도 훨씬 적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경우 그동안 주말 영업이 제한되었지만 관련 제도가 해제되면서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다보니 이제 채소, 과일, 정육, 생선 등 신선식품은 주로 가까운 동네마트를 이용하고 휴지, 세제 같이 대용량 생필품이나 쌀, 잡곡처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제품만 온라인 마켓을 이용하게 되었다. 구독료를 지불할 필요도 없고 배송비를 부담하지 않으려고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살 일도 없어 식비도 줄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계 실질소득은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지속되는 고물가의 여파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이번 주에는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는건 어떨까?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얻은 간식처럼 의외의 좋은 물건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