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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에 들어선 내가 최근 가방을 바꿔 들어도 빼먹지 않고 챙겨 넣는 물건이 있다. 바로 호신용 스프레이이다. 업무로 일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일부러 마련한 것이다. 

아직 사용한 적은 없었지만 혹시나 싶어 늘 가방 한편에, 언제든 꺼내기 쉬운 곳에 넣고 다닌다. 사실 위급 상황이 오면 스프레이를 꺼내서 작동시킨다는 그 과정 자체가 여의치 않을 줄 알면서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 

지방에 사는 친언니는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면 거의 매번 아들이 마중을 나온단다. 대구에서 내려 다시 차를 갈아타고 가야 하는 지방 소도시에 사는 언니, 늦은 밤 홀로 집으로 가는 길이 아들 입장에서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하다. 

일상 범죄 두려움 가장 높은 60대 이상 여성 

지난 19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재단은 '서울시민의 범죄 두려움 현황 및 영향 요인' 정책 리뷰 보고서를 최근 펴냈다(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를 기초로 만 20세 이상 서울시민 3천7명의 답변 내용을 재분석했단다).

전체 범죄 건수는 2020년 29만 6천178건에서 2022년 27만 9천507건으로, 5대 범죄(살인·강도·절도·폭력·성폭력)는 2020년 9만 2천679건에서 2022년 9만 339건. 서울시 범죄 발생 건수는 각기 감소세였는데,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점이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수치로 측정해 본 결과가 놀라웠다. 일단 범죄로부터 얼마나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를 1∼5점 척도(매우 안전하다∼매우 안전하지 않다)로 매겼을 때 점수는 2020년 3.13점에서 2022년 3.17로 소폭 상승했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범죄 두려움을 1∼10점 척도(매우 안전하다∼매우 불안하다)로 측정했을 때 여성(6.38점)이 남성(5.40점) 보다 높게 측정되었으며, 그중에서도 60대 이상이 6.96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 사회 60대 이상의 여성이 범죄에 있어 스스로 가장 취약한 존재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측이 분석조사한 성별 및 연령별 일상범죄 두려움 정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측이 분석조사한 성별 및 연령별 일상범죄 두려움 정도
ⓒ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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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시절 주변 어른들로부터 걱정스러운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로부터 몇 십 년 지나 흰 머리를 이고 다니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밤길을 조심한다. 나는, 우리는 밤길이 두렵다.  

나이듦과 노화는 여성을 더 무력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어떨지를 체험해 볼 때, 신체의 두 다리에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두 눈에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안경을 씌우곤 한다. 다리는 무겁고, 시각과 청각은 점차 흐려진다. 굳이 특정한 질병이 없다 해도, 나이가 들수록 내 육체를 더는 스스로 쉽게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그렇다. 앉았다 일어설 때면 자기도 모르게 '끙' 하며 힘을 주어야만 일어나는 게 가능해지는 나이에 당연히 사람은 위축되기 쉽다. 기린이나 얼룩말 같은 초식 동물들은 서서 잠깐 조는 것이 '숙면'의 전부일 정도로 편하게 잘 자지도 못한단다. 인간종의 세계에서 한 인간의 노화, 더구나 여성의 노화는 피라미드 최하단에 스스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침 지난 2021년 8월 SNS에서 본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여기엔 늦은 밤 10대 학생 여러 명이 '담배 사 줄 거야, 안 사줄 거야'라며 60대 여성의 머리와 어깨 등을 툭툭 치며 욕설을 퍼붓는 영상이 퍼졌다. 여주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나이 든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나이 든 여성이 처한 각박한 삶의 조건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말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생계 유지 등을 이유로 폐지를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4만2천명에 이르며 한 달에 16만원을 손에 쥐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말 '2023년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생계 유지 등을 이유로 폐지를 줍는 65세 이상 노인은 4만2천명에 이르며 한 달에 16만원을 손에 쥐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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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조건도 여의치 않다. 2017년 기준 전체 17.7%에 해당하는 노인 1인가구 중 72.8%는 여성노인 1인가구다. 초고령 노인의 비중도 여성노인 1인가구에서 높게 나타났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여성노인과 고령 여성 1인가구의 빈곤수준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남성노인보다 돌봄공백에 노출될 가능성이 컸다. 

젊은 층이 스스로 취업 등의 이유로 '독립'을 한 반면, 나이가 들어서 1인 가구가 된 경우는 '이혼, 사별, 자녀들의 독립' 등 이유로 홀로 살아가게 된 경우가 많단다. 즉 나이가 들어서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은 그간 '사회적 관계'에서 분리되어 고립 처지에 놓인다. 나도 그렇지만 혼자서  그 시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자신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온전히 한 개인의 짐으로 얹힌다.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플랜 75>는 이런 노년 여성 1인 가구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까운 미래의 일본.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75세 이상 국민의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78세의 미치(주인공)는 호텔 메이드로 일하며 혼자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도 해고 통보를 받고, 살던 집도 비워줘야 하는 형편에 처하고 만다.  

일흔 중반이 되었어도 일도 있고, 집도 있던 미치가 하루 아침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는 모습은 '의탁할 누군가'가 없는 노년의 처지가 얼마나 벼랑 끝인가를 실감나게 한다. 영화에서 말하듯 여성 노인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여성이 나이들어 간다는 것, 그것도 '혼자' 나이든다는 건 약자가 되기 쉽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 <플랜 75> 중 한 장면.(화면갈무리)
 영화 <플랜 75> 중 한 장면.(화면갈무리)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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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으로 가면 갈수록 처지는 더욱 열악해진다. 2021년 8월 전남의 한 농촌에 살던 90대 여성은 인근 마을 60대 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이웃 주민 중에선 '머리맡에 칼과 낫을 두고 잔다'는 사람도 있다는 보도를 봤다.

60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3442건의 노인 성범죄가 발생했다. 심지어 '고령자일수록 사건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쉽사리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유튜브에서 본, 귀농해 집을 짓는 여성이 철저하게 대비한 것은 바로 '방범 시스템'이었다. 홀로 사는 친구의 매일 밤 중요한 의례는 집 문과 창문이 잘 닫혔는지를 몇 번이나 거듭 확인하는 것이란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급격하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이제 한 사람의 노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바꿔도 되지 않을까.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약자가 되어가는 여성 노인에 대한 체계적인 도움과 대응이 필요한 때다.
 

태그:#여성노인,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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