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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사월이 건네준 오월, 싱그런 푸름을 안고 찾아온 계절의 여왕은 그 왕관을 두 신인작가에게 내주었다.

한 사람은 '시집'으로, 또 한 사람은 '에세이집'으로 자신들의 첫 작품을 출간하게 된 것이다. 겉보기에 너무도 다른 두 여인이 시와 에세이라는 장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며 독자 앞에 글 쓰는 작가로 새롭게 선보였다. 군산 말랭이 마을 작은 책방 '봄날의 산책'에서 출간식이 열린 건 각각 지난 25일(정미란 작가), 28일(강리원 작가)의 일이다. 
 
보라빛을 좋아하는 시인의 고요함을 닮은 예쁜 출간회
▲ 강리원 시인 출간회 보라빛을 좋아하는 시인의 고요함을 닮은 예쁜 출간회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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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를 출간한 강리원 시인(70세)은 등단한 지 20년 만에 개인 첫 시집을 냈다. 생일이 들어있는 오월의 어느 날, 고희를 맞는 자신에게 존재의 가치를 고요히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가져온 원고 120여 편 중, 95편의 시를 담은 시집에는 특별한 장르의 시가 있다. 소위 '하이쿠(단시)'라 불리는 시 30편이 들어있다. 

지역 여러 시인들의 시집을 보았지만, '하이쿠(5∙7∙5) 리듬'을 담은 시집이 없었기에 내가 출판하고 '봄날산책시선 02'를 달아서 세상에 선보이고 싶었다. 시집출간을 위해서 강 시인과 여러 번 미팅을 하면서 시인의 시 세상, 그 소녀적 감성을 만날 독자들의 평온하고 잔잔한 미소를 미리 예감했다.

하이분(하이쿠와 상황설명이 곁들인 양식) 한 소절을 들어보자.

나물 캐면서
어쩐지 마음 가는
풀꽃만 보네


"꽃샘추위에 찬바람이 제법 살갗을 파고드는 이른 봄날입니다. 햇빛이 좋아서 저녁 국거리로 나물 몇 가지 캐려 바구니 들고 들판에 앉았는데 나물은 보이지 않고 이름 모를 풀꽃만 애잔히 피어 있습니다. 그 모습 한참 바라보다 멀리 있는 딸아이 생각에 그만 눈시울 붉히고 말았네요. 덕분에 오늘 저녁은 집에서 기른 콩나물로 말갛게 끓인 콩나물국이 되었습니다."
 

칠순 시인의 외로움과 그리움

강리원 시인의 시집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
 강리원 시인의 시집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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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회에서도 부끄럼 많은 소녀처럼, 오로지 부족한 글을 시라고 펴낸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씀하시는 강 시인은 이날 찾아오신 분들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했다. 현재 시낭송전문가와, 시극배우로서 활동하시는 이면에 이처럼 수줍고 겁이 많은 내면의 섬세함이 있을 줄이야. 

그녀의 시를 단 한 줄로 표현한다면 '세월의 무게에 깊어지는 그리움'이라고 말하면서, 칠순의 그녀가 그리워하는 '엄마'와 '사람'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한번 느낀 시간이었다. 

강 시인의 시집 제목 시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를 전한다. 

사과나무꽃 향기를 보다 - 강리원 

빛깔 다른 이야기꽃 
자분자분 피어나는 창가에 
봄볕도 나란히 앉네 

함박 터진 웃음 
유리창 넘어 
초록 잎에 꽃물 들이고 
하늘까지 뻗은 
꽃 빛, 눈부셔 
비켜 앉은 그림자 
나지막한 창문 기웃대네 

한 뼘 유리 벽 아래 핀 사과나무꽃 
그 향기, 못내 궁금하네 

 
디자이너 아드님이 그려준 책 커버가 눈부시다.
▲ 정미란작가의 첫 에세이  디자이너 아드님이 그려준 책 커버가 눈부시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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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여인, 정미란의 <Essay In May>는 평생을 영어교육자로서 살아온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보통 60대의 글이라고 보기에는 좀 다른 통통 튀는 화법과 직설적이면서 유쾌한 상황설명이 특별한 점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그녀는 지역에서 알려진 도시적인 차가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정말로 틀이 무너지는 유쾌함과 발랄함으로 무장된 세련된 여성이었다. 어려서부터 영어와의 세상에 익숙해서 그런지, 지역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픈 평범한 동료들에게 수다로서 간접경험을 시켜주기도 하는 그녀였다.

다른 이들은 그런 외형적인 성격 속에 감춰진 그녀의 또 다른 내면세계를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에 대하여 여러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소재와 문체로서 색깔이 강한 에세이를 출간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친한 언니의 맛있는 수다를 직접 듣는 듯해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라고 전했다. 추천사를 써준 전재복 수필가의 말이다. 

"그녀의 글쓰기는 샘솟는 우물물 같았다. 때로는 조롱박에, 가끔은 커다란 양동이에 어떤 때는 급한 대로 물방울 뚝뚝 떨어지는 두레박 채로 들고 와서는 우리를 한통속이 되게 했다. 그녀의 글은 우선 움츠리거나 예쁘게 포장하려 애쓰지 않아서 편하게 읽힌다. 조금 머뭇거려질 법도 한 자신의 아픔이나 흉허물마저도 어찌나 솔직하게 풀어내는지, 가벼운 욕설마저도 그녀가 그려내면 유쾌한 웃음이 된다." 

하지만 글을 책으로 묶는 과정 중, 뜻밖에 어머니와의 이별을 겪었고, 홀로 남은 아버지를 지키며 아픔과 시름도 있었다고 한다. 마음속 외로움을 글로 달래는 법을 알게 됐다고, 스스로 글쓰기 새싹이라고 말하면서 글 쓰는 일에 겸손할 줄 아는 정미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글 속의 나는 무한 자유의 주인공이며 언제 어디라도 날아가는 피터 팬 같은 영원한 아이가 된다. 내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새로운 사랑에 가슴 절절히 슬퍼하며 불꽃같은 시인이 되기도 한다. 불멸의 세계가 있다면 글 속의 내가 바로 영원한 존재가 되어 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과 공감하며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 아닐까! 글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나만의 무한 에너지를 느끼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 이 즐거운 취미로 나는 행복하다." ('내 마음속 갈망의 해결사, 글쓰기' 중에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오월, 말랭이 마을 '봄날의 산책'에서 만난 두 여인들의 지고한 글 사랑 덕에 이 소식을 전하는 내 마음도 푸르러지는 것 같다.
 
지인인 테너 이진배님의 축하공연으로 더 즐거웠던 출간회 현장 모습.
▲ 정미란작가 출간회 지인인 테너 이진배님의 축하공연으로 더 즐거웠던 출간회 현장 모습.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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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말랭이, #봄날의산책출판사, #강리원시인, #정미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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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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