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은 28일 "'저출생 위기 극복' 하려면 정·난관복원시술비 지원이 아닌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성명> '저출생 위기 극복' 하려면 정·난관복원시술비 지원이 아닌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
어제(5월 27일) 서울시는 추경을 발표하면서 '저출생 위기 극복' 대책으로 임신과 출산을 희망하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정·난관복원 시술비 지원사업안을 내놓았다. 정·난관복원 시술비 부담 때문에 한국사회가 저출산 위기에 직면해 있는가? 저출산의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해 없이, 생식기능 지원의 경제적 문제로 협소하게 인식하고 있는 서울시의 발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서울시의 정·난관수술비를 지원하면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는, 수많은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여 비출산을 선택한 시민들의 다양한 삶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증명이자, 개개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게 결정되어야 할 출산과 양육이라는 인생사를 생식기능 위주로 단순화시켜 사고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미 최근 몇 년간 성남, 경북, 광양, 대구, 김해, 부산 등 각 지자체는 결혼과 출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미혼남녀 만남 사업 추진에 많은 예산을 투여해왔고, 최근에는 그 흐름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대구광역시는 '저출생'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남성 시민들에게 정자분석기를 무료로 배포하는 사업을 하기도 하였다. 청년들을 전통적 가족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정책, 출산을 조건으로 한 현금성 지원정책, 정책 목표와 기대효과가 무엇인지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생식기능 지원 사업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정작 한국사회 현 구성원들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인권을 보장받으며 지속가능한 사회, 누구든 배제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살 만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정책적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 현상은 한국사회 복합적 위기의 사회적 결과이다. 현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에 비해 지체된 이성애·가부장제 중심의 전통적 가족제도와 규범, 임금 및 가사·돌봄노동에서의 성별불평등, 성별·임금·연령·장애여부·지역 등 수많은 사회적 요인에 따른 불평등과 차별, 배제와 혐오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특성, 결혼과 출산관련 청년들의 인식에 있어서의 성별격차 등의 저출산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원인을 명확히 직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저출산 위기'는 정·난관복원시술비를 지원하고 청년들을 결혼시키는 정책이 아니라, 한국사회 구조적인 젠더불평등을 해소하고, 성평등한 관점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책을 만들고 이행해 나갈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저출산 문제를 '인구 문제'로 치환하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출산'과 '양육'의 도구로만 바라보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저출산의 구조적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있어서 성평등 관점이 필수적이다. 성평등 정책 없이 저출산 극복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책 입안자들은 다시 한 번 명심하길 바란다.
2024년 5월 28일. 한국여성단체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