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관련 일본 전쟁범죄기업의 배상책임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며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3월 내놓은 '제3자 변제'가 법원의 제동에 이어, 한일 양국 기업 기부 동참 거부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는 시민단체 논평이 나왔다.
피해자 의사에 반한 제3자 변제는 적법하지 않다는 법원 결정이 잇따라 나오면서 동력 대부분을 잃은 상황에서,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제3자 변제 실무를 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배상금으로 쓸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첫 실토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양금덕(광주광역시·93)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를 돕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9일 "(제3자변제 실무를 맡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배상금) 재원이 턱없이 부족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실토가 언론보도를 통해 나왔다"고 밝혔다.
이날 시민모임은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 인터뷰를 담은 지난 27일자 <중앙일보> 보도 관련 성명을 내고 "(배상금 재원 부족은) 사법정의를 거스른 데 따른 당연한 귀결"라며 이같이 밝혔다.
'제3자변제 실행' 정부 재단 이사장 "120억 필요한 데, 남은 돈 3억 뿐"
시민모임은 "승소 확정자(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려면 최소 120억 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현재 재단에 남은 돈은 3억 원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한다"며 "재단 이사장이 나서 우리 기업에 기부 동참을 호소하고 있지만, (기부에 참여할 정도로) 우리 기업들이 천치 바보들이란 말인가"라고 했다.
"'반헌법적 제3자변제'에 우리 기업들이 동참? 바보인가?"
"유일 해법은 전범기업 사죄와 배상뿐... 윤석열 정부, 심판 받을 것"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는 이미 파산선고를 맞았다"고 강조했다.
시민모임은 "강제동원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법원 판결대로 일본 피고 기업이 사죄하고 배상명령을 이행하는 것뿐"이라며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이제 남은 것은 역사의 호된 심판뿐"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강제동원 관련 제3자 변제 방침을 소위 해법이라며 발표했다. 전범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끼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행을 일본이 거부하자, 전범기업 대신 한일 양국 기업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정부 표현으로는 판결금)과 이자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보다 엄밀히는 전범기업의 배상 거부에 따라 피해자 측이 전범기업 측 한국 자산(상표권 등)을 압류하고 강제매각하려는 법적 절차에 돌입하자 일본이 엄포를 놓았고,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제3자 변제를 외교적 해법이라며 발표했다.
정부 설득에도 양금덕 할머니 등 일부 피해자들이 정부안 수용을 줄기차게 거부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 사죄와 전범기업 배상금 지급을 요구했다.
정부는 제3자 변제 수용을 거부한 피해자들의 채권(전범기업에 대한 위자료 채권)을 소멸시키기 위해 전국 법원에 '공탁'을 시도했지만, 12건 예외 없이 '불수리' 처분됐다.
앞서 법원은 "제3자 변제는 전범기업 면책 행위" "손해배상제도 취지 부정"
정부는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이마저도 법원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심리한 법원 재판부는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에 대해 "손해배상제도의 취지나 기능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 "(정신적 손해 배상인) 위자료의 경우 제재적 기능이 완전히 몰각(무시)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또한 "가해자(전범기업)는 아무런 금전 손실 행위 없이 사실상 채무면제나 면책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라고 제3자변제를 강행하는 정부를 질타하기도 했다.
법원의 제동에 이어, 제3자변제를 실행할 재원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재단 이사장의 실토가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나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재차 제3자변제 방침 철회 및 전범기업 사죄, 배상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2023년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추가로 늘어난 9개 사건, 52명(피해자 기준)의 승소 확정자들에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려면 최소 120억 원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 피해자가 모두 제3자 변제를 수용하더라도 심 이사장 발언대로라면 현재 재단에 남은 돈은 3억 원에 불과해 소위 '판결금' 지급은 불가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