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처벌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답답해"
30일 부산지법 254호 법정을 빠져나오던 고 문중원 경마기수의 아버지인 문군옥(77)씨는 한숨부터 푹푹 내쉬었다. 한참 동안 재판을 기다렸지만, 당장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자 세상을 떠난 아들 생각에 문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방청석에 앉아 재판 과정을 지켜본 그는 "사람이 죽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했다.
이날 법원에서는 형사2-1부 심리로 업무방해 혐의를 받는 한국마사회 관계자 항소심 공판 기일이 진행됐다. 검찰은 2019년 조교사 선발계획안이 담긴 워크숍 문건 등을 놓고 증인 신문을 이어갔다. 피고인들과 관련성을 확인해 혐의 입증을 하겠단 취지였지만, 결국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검찰은 내부 문건을 더 살펴보겠다고 밝혔고, 재판부와 피고인측도 이에 동의하면서 다음 일정은 7월 4일로 정해졌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지난 4월 4일 이후 약 60여 일 만이다. 2022년 6월 2심이 시작된 뒤 벌써 두 해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앞서 2021년 11월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1단독은 조교사 선발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마사회 부산경남본부 전 경마처장 A씨 등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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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A씨가 개업 심사에 지원한 B씨 등 2명의 자료를 미리 검토하는 등 처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1~2년 각각 구형했지만, 1심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번 사건은 상급심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문 기수 유가족은 "고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구조적 비리를 밝힐 기회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내왔다. 5년 전인 2018년 문 기수는 "더럽고 치사해서 더는 못하겠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그는 조교사 면허를 따고도 5년간 마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사태로 경마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갑질 구조, 조교사 개업 비리 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대책위를 꾸린 유족·노동시민사회는 99일간의 거리투쟁 끝에 어렵사리 재발방지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사건은 아직 종료된 게 아니었다. 40살밖에 안 된 아들을 먼저 땅에 묻은 뒤에도 부친인 문씨는 여전히 법정을 찾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재판 결과를 확인하겠단 것이다. 1심 소식에 오열했지만, 남은 2심에 기대를 건다. 그는 "아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라며 사법부를 향해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았다.
다음은 문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오늘 며칠째 1인시위인가?
"어제와 오늘 이틀째이다. 10시 법정에 들어가려고 제주에서 미리 부산으로 와서 피켓을 들었다. 그 전엔 공공운수노조와 부산경남 경마공원지부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이어왔고, 바통을 넘겨받았다."
- 항소심 재판만 벌써 2년째다.
"1심 재판이 무죄로 나왔지만, 검찰이 다시 항소하고 지난 2022년부터 2심이 시작됐다. 그러나 아직 하세월이다. 네 번 정도 공판 기일이 있었다. 지난번과 이번 재판 사이 시간이 무려 8개월이다. 그래서 좀 답답하다."
- 긴 시간 아들 관련 재판을 지켜보는 심경이 어떤가?
"뭐라 말해야 할까. 증거불충분으로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그것도 화가 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길어지는지 이해가 어렵다. 아들이 죽은 이후 4년간 관련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나. 사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아들은 2019년 부산경남 경마공원에서 겪은 갑질과 부조리를 유서로 고발하고 숨졌다. 이후 긴 싸움 끝에 마사회가 관련자인 A씨 등의 수사를 의뢰해 재판까지 이르렀다. 나의 바람은 검찰이 말한 대로 죄가 밝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아들이 부당하다고 했던 조교사 개업심사가 폐지됐지만, 처벌 등 마침표가 필요하다. "
-그게 아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뜻이라고 보나?
"경마기수에서 조교사 면허를 따고도 마장을 배정받지 못해 벼랑 끝으로 몰렸다. 대기하고 순서가 되면 되겠지 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결국 이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던졌다. 아들이 다시 살아올 수는 없겠지만, 이번 재판에서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사태의 반복을 막지 않겠나. 그래야 아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지 않을 것이다.